불은 누가, 니가 조심해야지, 남자야!-재미나는 김정권의 <불조심>□ 우상렬

2020-07-31 08:57:52


김정권의 단편소설 <불조심>(연변일보 2020. 3. 20)은 피뜩 보면 그저 우리 시대 다반사로 만나게 되는 바람 피우는 마당에 적반하장-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식으로 허위적이고 철면피한 남자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간단치가 않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표현주의적인 상징수법으로 남자와 녀자의 정신세계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잘 풀이하고 있어 인상적이고 재미나다.

먼저 남자의 정신세계를 보자.

남자는 불(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항상 훨훨 타번진다. 그 불은 강렬하고 외향적이다. 녀자에게도 지피고 싶다. 그래서 항상 녀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도덕 내지 법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남자들은 ‘정신분렬’-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분렬을 가져온다. 의식세계에서는 사회도덕 내지 법을 받아들인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 속의 남자가 끊임없이 녀자에게 ‘불조심’을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무의식세계에서는 불의 욕망이 계속 타번지고 있다. 그래서 객관적 조건이나 계기가 이루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주동적으로 불질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녀자가 입원한 사이 외간녀자를 집에까지 끌어들여 바람을 피운 것은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남자들은 이런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라는 정신세계의 ‘분렬’ 속에서 그런 허위적이고 철면피한 속성을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의식세계에서 군자연하면서 녀자에게 ‘불조심’을 운운할 때가 현실에서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다음 녀자의 정신세계를 보자.

녀자는 불(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녀자는 랭정하다. 제일 좋은 불을 받아들여 가장 리상적인 후대번식을 하는 것이 최고 목적이다. 그래 일단 아이가 생기면 남자는 뒤전이고 아이가 먼저다. 녀성에게는 모성이 우선이고 전부이니깐. 이것이 녀자의 의식세계다. 이에 남자에 대한 생각은 무의식세계에 침전된다. 그런데 남자와 다른 점은 녀자의 외간남자 생각은 잘 타오르지 않는다. 물론 집안남자의 사랑을 잘 못 받는다는 소외감, 그리고 봄날 같이 싱숭생숭한 날, 여기에 ‘프로메터우스’ 같은  멋진 남자가 유혹할 때 자기도 모르게 혹은 피동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또 한번 ‘대형 사고’, 즉 ‘활짝 열린 창문으로 훈훈한 봄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와 록색의 카텐을 살짝살짝 흔들어놓’고 녀자가 ‘베스타’ 수를 놓을 때 ‘프로메터우스’의 출현으로 “그만 달려들어 쫓아가다 창문 밖으로 휙- 날아나갔다.”는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보다싶이 <불조심>은 이런 남자와 녀자의 복잡한 사랑학적인 정신세계를 진실하게 잘 반영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남자와 녀자의 사랑심리는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례컨대 남자가 외간녀자를 집안에까지 끌어들이는 필연적인 주동성을 보인다면 녀자는 ‘건망증’이나 “어마나!”, 그리고 ‘프로메터우스’의 공격하에 자기도 모르게 우연히 혹은 피동이나 강박적으로 그 ‘불(알)’에 로출될 뿐이다. 그리고 남자가 녀자에 대해 과장적인 적반하장, 즉 ‘문건락실’이나 ‘첫째도 불조심…’, ‘서면조항’ 강조는 남자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불조심>에서 남자의 이런 과장적인 적반하장은 결과적으로 지대한 자아풍자가 된다. 이런 풍자는 남자의 표리부동의 모순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녀자가 반격적으로 남자에게 일련의 ‘불조심’시키는 데서 나타난다. 이를테면 “불이야!”로 남자를 팬티바람으로 밖에 내쫓기, ‘콘돔목걸이 선물’하기, ‘팬티 앞에 빨간 색실’로 ‘불조심’ 수놓기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남자야말로 정신병자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바로 이런 풍자에서 “불은 누가, 니가 조심해야지-남자야!”, 녀자의 매서운 눈초리가 안겨온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것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베스타’에 불을 달아 남자의 자는 이불우에 던지는 공격적인 행동주의로 나아간다. 어쩌면 너 죽고 나 죽고 하는 이판사판! 녀자는 사랑에 온 목숨을 걸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소설은 성을 둘러싼 하나의 페미니즘소설로 볼 수 있다. 소설에서도 언급했지만 ‘미투’의 강한 목소리가 들린다.

<불조심>에서 녀자는 조용하고 차분하나 남자는 요란하고 들떠있다. 마치 남자가 주동권을 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소설이 전개될수록 녀자가 점점 주동권을 잡아간다. 남자가 녀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그런데 녀자는 남자를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이것도 가정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유지하려는 녀심의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그것은 녀자가 어쩌면 ‘남자는 다 그래!’의 남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조심>의 주인공은 막연히 남자와 녀자다. 구체적인 이름도 없다. 별로 개성적인 표현도 없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전형적인 모더니즘 표현주의 소설의 한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표현주의 소설은 많은 상징성을 구사함으로써 작품의 의미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남자와 녀자는 바로 하나의 전 인류적인 상징적 인물이다. 이를테면 각기 남자와 녀자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상징코드가 되겠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오, 남자는 저렇구나! 오, 녀자는 저렇구나!로 남자와 녀자의 정신세계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진짜 불이 난 상황을 얘기하는 듯한 첫 부분도 실은  진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불’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미지가 되겠다. 그것은 바로 남녀간 사랑의 불길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사랑의 불길은 부부간에 피여나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는 적어도 우의 정신분석학적인 정신세계 때문에 외도적인 사랑의 불길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불길을 엉뚱한 데 지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 있어서 기혼 남자와 녀자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런 엉뚱한 불길을 남자 혹은 녀자 누가 지폈든 우리는 같이 꺼야 한다. 그래야 현실적인 우리 사랑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첫 부분 실제적인 화재는 녀자가 지핀 엉뚱한 불길의 상징으로서 바로 부부간이 합심하여 끄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엉뚱한 불길을 가지고 자꾸 물고 늘어지면 부부 사이 의가 상하고 금이 가게 된다. 남자의 과장적인 적반하장의 결과가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남자의 엉뚱한 불길-외도를 알고도 녀자는 리해심과 아량으로 용서하고 따끔하게 ‘불조심’을 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리해할 수 있다. 너네, 잘난 남자들, 그렇게 되여먹었으니 별수 있나.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라! 한번은 있지, 두번은 없다! 녀심의 앙큼하면서도 매서운 메시지다.

<불조심>에서 술독 좌우명도 중요한 상징적 코드가 된다. 삐딱하게 기울어져있는 술독, 거기에 술이 차기 시작하면 바로 섰다가 술이 다 차면 다시 기우는 술독… 이것은 바로 정상과 일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 인간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인간은 항상 맑은 정신만으로 못 산다. 좀 흐리터분해지고 싶다. 그래서 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해서 내내 흐리터분해서는 안된다.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상과 일탈의 교향곡을 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정신이 건전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정신실존이다. 그러니 좌우명으로 삼을지어다!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이런 정신실존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남녀, 특히 남자의 외도에 대해서도 쉽사리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리해 만세, 리해심이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필치로 담담하게 서술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 녀자가 수놓는 ‘활화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들인 프로메디우스, 베스타 등도 나름 대로 묘한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불조심>은 짧은 단편소설이라는 편폭 속에 정신 분석학적인 인간의 정신세계 및 현실적인 인간실존 그리고 사랑학 등을 모더니즘 표현주의의 상징수법으로 잘 보여주어 우리 조선족 문단에 간만에 독특한 읽을거리를 제공하여 기껍다.

  김정권은 원래 극본으로 대성했지만 정년퇴직을 한 후부터는 수필, 시, 소설… 한마디로 종횡무진 문학의 전방위로 진출하고 있다. 나이와 달리 그의 사유는 아직 민첩하고 발랄하다. 그는 점입가경으로 많은 좋은 작품을 써내고 있다. 이번 <불조심>은 한 보기가 되겠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백세시대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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