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현재다□ 정호원

2020-08-06 15:24:25

비상시기 재택근무에 갑갑한지라 목왕지절을 앞질러 또 홀로 나섰다. 봄빛이 비낀 계곡 혹은 산정에 닿으면 짜장 춘삼월 반렬에 끼인 듯한 기분만큼 성수난게 또 있으랴싶다.

발밑에 밟히는 싸락눈 소리를 들으면서 북쪽 교외의 후미진 길목에 들어섰다. 리민촌에서 연하저수지 언제를 옆에 끼고 한참 더 북진하면 오른쪽에 험한 산세의 봉우리가 우중충하다. 기존의 등산코스를 버리고 이번엔 직방 뾰족산 지름길을 골랐다···

잔산단록(残山短麓)을 톺다가 손가락으로 응달의 눈무지를 허볐다. 식지 끝이 약간 시려났다. 그런대로 삭정이로 부식토를 뚜졌다. 꼬챙이가 이징가미로 된 셈이다. 무심한 짓거리였지만 어쩐지 그게 아니였다. 사금파리로 치른 소꿉놀이보다 왕창 짭짤한 꿀잼이 튕겨 나올 줄이야···

“엉, 아니 이거?!...”

급기야 그런대로 몇곳 더 허볐다. 속속들이 로출되는 잔풀들이 앙증스럽다. 2월에 이어 3월엔 새싹들이 더 야살궂게 출토를 서두르나보다. 점나도나물, 벌금자리, 광대나물, 씀바귀가 한뙈기의 채마밭을 방불케 독을 쓰니 말이다. 이제 4월로 찾아가는 시점의 길목에서 나싱개라는 냉이, 고수덩이가 합세하려니 그 기세야말로 소생만이 몰고 올 역풍이라겠다.

홀제 허릴 펴고 잠간 주변을 살폈다. 자귀나무가 밀집한 바위 아래 멀쩡하게 우거진 한련초가 나를 게염스럽게 굽어본다. 아마 낯선 초행객에 대한 신비감과 호기심에서일거다.

다시 허릴 굽혔다. 밑둥을 파보려 내처 일손을 놀린다. 한편 머리속으로 풋풋한 상상에 청록색 날개를 껴입힌다. 달래, 쑥, 두릅, 씀바귀, 돌나물… 지난해의 잔여가 아니라 기존의 편린들이 덩굴에, 흙 속에, 락엽에 매몰됐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때를 맞춰 선뜩한 회오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땀에 젖은 열기를 가셔준다. 거뿐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원초적인 식물은 모토를 버리지 않는구나! 가장 치렬한 생명 만이 가장 아집적인 애착으로 둥지를 깨물 수 있음에랴···)

저도 몰래 등에서 배낭을 내려 끌렀다. 갖고 온 광천수 병사리의 마개를 땄다.

“쭈르르… 쭈륵쭈륵…”

살얼음이 섞인 랭수가 푸성귀를 적신다. 우거지처럼 구겨든 이파리들에서 금시 이슬방울이 반짝거려 령롱한 빛을 반사한다. 겨우내 봄을 품으신 여리고 야린 잔여물들에 감로수를 부어준다는 정성에 혼신조차 말려든다. 경이롭게 발견된 정열의 근거지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난 상봉이 못내 희귀하기만 하다. 과연 우리는 떠나지도 않은 봄을 일방적으로 사라졌다니, 바뀌였다니 하면서 험담을 아끼지 않았으나 얼마나 우미혼암(愚迷昏暗)한 식상을 반복했을가?!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동토를 스스럼없이 짓밟아 유린하지 않았던가?!

후-부활의 천사가 군림한 들놀이에, 바캉스에, 관광길에 마냥 눈길을 끌게 하는게 다양한 형태들의 춘신 선구자임을 이단적으로 봐줘야겠다. 그들로는 우선 춘색을 짙게 보여줄 봄나물들이 선견자라겠다. 고스란히 도사리고 지키고 거느린 처사들이 너무 돋보인다. 자연으로서의 회귀본능이 아닌 생명본연의 실체로서의 그 자격을 충분히 통찰하고 긍정함이 요긴하다. 더는 봄이 갔다거나 봄을 잃었다고 순설을 허비할게 아니라 산책로에, 수목원에, 동유림에 력동적인 근본으로 깔축없이 보관되고 영존한다고 말이다. 눈앞에 밟혀오는 야산의 메뉴가 한결 신선하다. 보리싹, 개망초, 넘나물, 명아주, 꿩의다리, 다래나무, 물레나물, 참죽나무, 화살나무···그냥 보기엔 멋적다. 어쩐지 스치는 터치에라도 다시 묻히고픈 체감이다.

대한과 우수 사이의 절기가 립춘이다. 이때부터 봄이 왔다고 무작정 들레는게 통상적 관례이다. 게다가 대보름날이면 마치 봄이 신변에 이미 가깝게 다가선 듯 급기야 으아쌍을 댄다. 덩달아 갈망하던 봄을 재촉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는 것 역시 항간의 고로한 세시풍속이다. 기실 이렇게 계절에만 얽매여 봄을 판단하기엔 너무나 퇴락하고 보수적이다. 보다 넓은 관찰로 구십춘광의 긴 잉태와 영구적 당위성을 숭상해야 우주와 밀접하게 합일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인간기능의 새 출범이렷다.

봄은 또 태여난게 아니다. 경칩은 원초적인 파생을 펼쳐보일 따름이다.

봄이 희소한게 아니다. 환희는 지천으로 널부러져 마냥 풍부하다.

슬픈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 유구한 현상을 부인했고 또 보고도 무시한 청맹과니였다. 이렇게 청춘은 눈보라 속에서 조차 누구라도 어서 와 감상하랍시고 빔으로 챙겨놓았고 한편 고마운 상춘객에 의해 존재가치를 과시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로지(露地)에서 겨울을 보내 속이 들지 못한 배추로서의 봄동조차 미련을 참지 못하고 눈석임물에 뛰여든다고 착각해 본적 있는가?! 잎이 옆으로 퍼진 모양이 그 체격을 뽐내는가 하면 달고 씹히는 맛이 유난히 자극으로 절어든다.

가없이 짙푸른 광택을 머금은 방춘(芳春)이 물씬 풍긴다. 춘의가 그렇게 안겨올 수록 피부가 부풀린다. 귀하고 소중한 것 또는 흔하고 응당한 것은 눈에 쉽게 띠지 않는가보다. 대신 밉고 찌들고 볼품없는 똘마니들은 즉각 포착되여 빈축을 사는가보다. 존대에 오래 남고 추념에 길게 각인된 진실의 가치를 생급스럽게 인식하니 속이 든든해진다.

봄이 간게 아니였다. 결국 알고 보니 사처에 멈춘채 우릴 기다렸다. 겨울을 얼며 굶으며 참았던 지킴이라고 보아줄 때이다. 몽니쟁이로 토라져도 막무가내련만 게다가 소멸됐다고 넉두리까지 했으니 온통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 해물지심(害物之心)처럼 힐난했던 눈망울이 못내 얄밉다.

초피나무, 승아, 졸방제비꽃, 달맞이꽃, 머위, 박쥐나무, 남산제비꽃, 오갈피나무, 엄나무, 참나물, 참당귀, 잔대, 어저귀, 개불딱취, 미역취, 쑥부쟁이… 아직도 어느 광야 혹은 더기에서 묵묵히 산재된 봄의 식솔들을 살붙이 패밀리로 찾아 나서련다. 호비칼로 나물을 뽑든 호미로 땅을 살살 파헤치든 아무튼 거친 얼굴의 아낙네들을 연득없이 만나도 반가울 듯 하다. 파릇파릇 돋아난 햇나물을 캐는 임자들이 과연 언제 나타날가?! 채식이 인간을 돕고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한다면 그 풍경환경을 조성하고 담보하는 봄이야말로 부활 화신의 천사이다.

알싸한 고드름이 축등을 켜들었다. 이 비밀을 알고자 탐춘객으로 산지기로 자원봉사자로 됐나보다. 표본채집이 아닌 전수조사에 나섰음에랴. 그럼에도 천기루설처럼 조심스럽게 토설하는 바이다. 중국의 정력절륜의 녀걸 측전무후가 애용한 술이 무후주이다. 봄의 향기가 무후주로 나를 취하게 하는걸 어쩔 수 없다. 어느덧 나 역시 다시 고향 하오동에, 유현경 안식처에, 모토 금화원에 깃들었다. 잠종비적(潛蹤祕跡)의 투항이자 속량의 또 다른 체험이다.

  봄은 계셨다. 님은 현재다. 진행중의 만물은 말짱 아름답다. 안그러면 어떡하나? 순환의 서두에서 세월의 기승전결을 동시다발로 담당한 벼리를 잡고 있는 섬섬옥수인데… 더군다나 옥으로 핀 꽃은 불멸의 등불로 동심골목을 밝히고 불세출의 향기로 복욱하니 말이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