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금□ 오경희

2020-08-14 09:03:37

배추속이 노오랗다.

소금은 배추잎 사이사이에 알맞춤하게 들어가 앉는다. 살림 맛을 알아가며 옹기와 항아리들을 사들여 놓던 그 시절, 큰 소래에 거칠게 누워있던 갓들도 소금 덕분에 노글노글 누그러들어 빨간 양념을 잘 받아먹던 생각이 난다.

소금을 먹은 풋고추와 영채도 누름돌에 눌리워 초록이 짙어갈 때면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녹아들어 맛을 내는 한봉지의 소금이 되여 나만의 짭짤한 간새로 배여들고 싶다.

요즘 사는 일에 좀 여유가 생기니 간이 알맞춤하게 밴, 좋고 맛있는 작품들을 창작하려고 분초를 다투어 독서도 하고 미술작품도 감상하며 감성을 늘이기 위해 나름 자연과도 많이 어울렸다. 그러던중 이전에 투고했던 원고와 편집원들의 손을 걸쳐 해빛을 본 작품들을 한편 한편 대조해보면서 참 많은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다. 지저분한 글을 깔끔하게 다듬어 내놓은 편집들의 사심 없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나며 음식의 맛을 돋구어주는 소금이 떠올랐다. 소금은 음식에 넣으면 형체가 사라지면서 재료의 맛을 내여준다. 그런 소금이 우리 편집들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은 감동의 난류가 굽이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즉시로 하던 일을 제쳐놓고 노트북에 마주앉았다. 30년을 나름 창작의 길을 걸었지만 오늘처럼 가슴이 뛰긴 처음이다.

예전에는 투고 전에 쓰윽 한번 읽어보며 좀 어설픈건 편집들이 알아서 고쳐주리라는 생각에 까근함이 없이 수정을 대충해서 보내군 하였다. 그런 문장들을 애써 완벽한 문장으로 만들어서 발표해준 편집들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의 글을 편집하면서 반복적으로 읽었을, 알심 들여 수정하였을 편집선생들의 로고를 이렇게 페부로 느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철저히 안 보이는데서 배추잎 한잎 한잎 사이를 들춰가며 절지 않은 부분을 찾아 저들만의 소금으로 재차 간을 맞추어 내놓은, 무난하게 읽히는 문장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영광과 업적을 드러내기보다 소금이 되여 문학에 섬겨지는 편집들의 희생정신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토대에서 한편의 글에서 적어도 서너곳을 고치고 철자, 띄여쓰기, 쉼표, 틀리게 자리한 어휘들을 바로잡으며 수정하였을 것이고 독자들의 리해가 쉽게 주어나 술어의 순서들을 조절해주었을 것이다. 나의 한편 한편의 글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들이 문장의 의미를 북돋아주면서 수정해내려간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오롯이 담아주면서도 내가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더 깊게, 더 따뜻이 가닿게끔, 살점처럼 소중한 자기 지식 보물창고에서 지식과 고운 어휘를 꺼내 저자 대신 써넣어주었다. 그들이 책임진 사업이라 하지만 그들의 헌신과 순발력 덕분으로 저자들의 문장이 돋보이고 반짝반짝 저자들의 이름이 빛나는 게 아닐가.

작품이 빛을 보고 작가가 영광을 지니며 독자가 기분 좋게 독서할 때 우리 편집들은 자신의 로고를 잊은 채 또 다른 원고들을 묵묵히 편집하며 다듬고 있으리라.

편집원들이야말로 자신들의 몸을 녹여 문장을 맛있게 담그는 소금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작가의 첫번째 독자로서 작품을 읽고 피드백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제고해주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아니하고 모든 영광의 색채는 작가들을 물들인다. 이런 면에서 편집들은 너무나 소금을 닮았다. 료리를 맛있게 해 식탁에 올리고는 사라지는 소금을…

“원고에 포함된 텍스트를 다듬고 문법과 맞춤법에 맞게 수정하는 일 외 글의 의미와 문맥, 작품 설정까지 고려하며 문장을 재구성까지” 하는 편집들이야말로 명실공히 문장의 맛을 돋구는 소금이다. 대공무사한 이 시대 무명영웅이다.

오죽하면 “창작은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다.”고 하겠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써라. 당신의 글에 그렇게 해줄 만한 가치가 있다면 나머지 세세한 부분은 편집부에서 해줄 것이다.”

얼마나 우리 작가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말인가?!

문장을 수정하고 책을 만들고 판매까지 독려하는 출판계의 ‘캡틴마블’에 가깝지만 정작 이름은 책 안쪽에 편집 아무개라는 세 글자가 전부이다. 작품을 더 나은 방향으로 모색하기 위하여 문장 한줄, 단어 하나를 허투루 보지 않고 고쳐주고 저자에게 문의, 조언, 부탁도 가끔씩 해주는 편집들의 짭짤한 간새는 저자들의 작품에 녹아 스며들어있다.

독자들은 흔히 글을 읽으며 저자는 기억하지만 편집은 누가 했는가를 기억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글이 발표되거나 책이 출간되면 작가는 사방에 알려지지만 밤잠을 설치며 지식을 장악하여 혼신의 정력을 다해 작품을 돋보이게 해준 편집들은 번역가들처럼 저자나 원작보다 앞에 나서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렬하게 일할 뿐이다. 지금은 자기표현의 시대라 하여 모두들 자기 것을 엄청 아꼈다가 내것으로 내세우는데 편집들은 남모르게 자기 모든 정력을 타인의 작품에 몰붓는다. 늦게나마 편집선생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편집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일하게 하려면 나부터 깔끔하게 다듬어 투고해야겠다. 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문화수준을 높혀 작품의 질을 높인 다음 투고해야 될 것 같다. 작가라면 내 작품에 알맞춤하게 간새를 넣어주는 편집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단어 하나, 철자 하나, 띄여쓰기라도 명심해 정확하게 쓰자. 내가 좀 노력하면 편집들이 글을 편집할 때 조금이라도 쉽게…

달갑게 소금이 되여 작가들의 마음에 녹아들어가려 하는 그들의 길에 하냥 아름다운 풀꽃들이 만발하길 바란다. 편집들이 작가에 대한 칭찬과 격려는 소금 속의 미네랄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의 고무격려를 받는 우리는 심령이 건강해지며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평범한 글도 훌륭한 편집이 옳바른 수정 의견을 제기하고 작가가 수렴하여 반복적인 수정을 거친다면 작품과 작가를 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편집이 그냥 한 작품에 퇴짜를 놓는다면 당연히 글 쓴 이는 신심을 잃게 된다. 반면 적극 인도해주고 양성해주면 작가는 승승장구할 것이다. 사회적 책임감, 작가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편집들의 어깨는 이렇듯 무겁다.

잘 편집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저자가 그 영광을 오롯이 누린다. 그럼에도 글과 창조적 아이디어, 책을 사랑하고 자기 사업을 사랑하는 편집들은 주목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오늘도 누군가의 작품에 녹아 스며들 것이다, 소금처럼. 지식과 서사의 매개자이자 재창조자인 편집들은…

편집들은 우리 작가들에게 세상과 더욱 깊게, 넓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열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소금이 김치맛을 결정하듯이 우리의 글도 편집들의 노력 여하에 의해 글맛이 결정되지 않을가. 금년 연변문학 제4기에 발표된 나의 수필 <아버지의 흙칼>을 읽어보면서 웃자란 가지들을 쳐버린 건 물론 그 구절에 딱 맞는, 내가 모르던 ‘애옥살림’이란 단어를 넣어주어 그 단락이 살아 숨 쉬게 만든 편집이 얼마나 고맙던지! 보자마자 ‘애옥살림’을 검색해 그 뜻을 살펴보니 그 자리에 딱 맞는 단어였다. 이렇듯 ‘소금’ 덕분에 그 문장은 한결 맛나게 완성될 수 있었다. ‘부뚜막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아무리 편집이 박식해도 사업에 열정이 없고 정이 없고 헌신정신이 없으면 남의 글에 자신의 지식을 내여줄 수 있을가? 요즘 원고와 발표된 작품을 대조해보면서 심심히 느꼈다. 편집들의 덕분에 허둥대던 언어도 간을 먹고 제자리를 찾았고 겉돌던 어휘도 조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틀린 철자, 띄여쓰기, 적당한 글 위치 등등 미처 만들지 못한 글의 양념을 편집들이 대신해 간새를 맞춰주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보충하고 간추리며 미숙한 글을 다듬는 그들의 생각 한줌은 료리할 때 넣는 소금간 맞추기이리라. 나에겐 간을 맞출 줄 모르던 습작기가 있었다. 갓 고중을 졸업하고 귀향하여 농촌에서 《연변일보》와 연변인민방송국에 통신보도를 썼던 1975년 즈음의 일로 기억된다. 열편을 투고해 한두편이 발표되여도 너무 좋았던 그때를 회억해보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편집 두분이 떠오른다. 연변일보사 농촌조 남인옥 선생과 정치조 주경화 선생이다.

부족한 나의 글에 꼭꼭 수정의견과 고무격려하는 메시지를 손편지로 회답해줘서 용기와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고마운 그 일이 수십년 잊혀지지 않아 지난번에 남인옥 선생의 련락번호를 수소문해서 전화 드렸더니 그렇게 반가워하며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양로원 문을 열지 않는다며 나중에 놀러오라고 하셨다.  심양으로 시집가는 나에게 주경화 편집은 “다른 성으로 가면 통신보도는 쓸 수 없지만 문예작품은 능히 쓸 수 있다면서 료녕성을 가도 문예원고는 계속 보내오.”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싶다. 정말 글을 쓰는 이에게 편집선생의 한마디는 무궁한 힘의 원천이다. 가끔은 글 쓰는 일이 힘들어서 필을 놓자고 생각하다가도 30년 인연으로 맺어온 편집선생들의 부추김과 사랑을 떠올려보면 차마 저버릴 수가 없다. 지금은 길림신문사로 조동한 원 연변문학 수필 편집 리편집의 나에 대한 각별한 사랑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이 내 글의 맛을 살리려 소금의 고마움과 감사함을 생각하면 힘이 나고, 그래서 지금까지 열심히 문학창작을 하고 있다. 이 자리까지 오는 과정에 나에게 자그마한 문학성취가 있다면 나의 글을 다듬어준 편집선생들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소금은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녹아서 료리의 맛을 내면 그 뿐이다. 비록 소금은 맛을 내기 위하여 녹지만 그 가치는 영원하다.

오늘도 나는 육체상, 정신상 모두 소금 덕분에 살아간다. 류시화의 시 <소금>을 한번 읊어본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우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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