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혼□ 서광억

2020-12-25 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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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병마와 싸우던 로친과 사별한 뒤에 혼자 살아 가려니 너무도 적적하여 재혼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늙은이가 이렇게 말하면 웃을 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 없는 재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재혼했다 해도 사랑 없이 무슨 멋에 살아가겠는가! 늙으나 젊으나 사랑 없는 결혼생활은 재미 없을 것이다…

친척들 또는 지인들로부터 소개받은 로친네가 여럿 잘 된다. 그런데 그 거개가 나의 퇴직금을 바라보는 임자들이여서 밀막아 버렸다.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의 퇴직금을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혼처를 소개하는 족족 밀막던 나한테 ‘복덩이’가 굴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친구의 소개에 의하면 나보다 나이가 딱 십년 젊은 그녀는 2천원 좌우의 퇴직금도 받는다 하니 나의 퇴직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구나 하여 만나보겠다고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정작 만나보니 인물체격이나 나이나 나보다 퍼그나 우월한 그녀는 새 각시 같았는데 누구 말 마따나 첫눈에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런데 날벼락 같이 생뚱맞은 얘기가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자기의 생활형편을 이야기 하던 중에 상해에 있는, 아직 미혼인 외동아들이 어찌어찌하여 알거지로 되였는데 퇴직금이 나오는 족족 다달이 보내주어도 밑 굽 빠진 항아리라며 나의 동정을 바래서인지 눈물까지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깐 이 사람도 나의 퇴직금을 바라고…’

흠칫 놀라기까지 한 나는 만나자고 한 것이 후회막급이였다. 그렇다고 ‘선생님!’이란 체면에, 또 후날 소개해준 친구의 얼굴을 보더라도 애들처럼 마구 뿌리치고 달아날 순 없었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을 거라면서 아들더러 외국 가서 돈 벌게 하라는 둥, 당지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게 하라는 둥 하면서 위안이 아닌 위안을 하였다.

그러자 눈물을 훔치던 그녀는 갑자기 없었던 일처럼 웃음을 띄며 생뚱같이 물어왔다.

“정말! 선생님은 작품을 쓰신다면서요?”

“양, 드문드문…”

난 멋적은 대로 대수 응하였다.

“퇴직금도 많지. 선생님은 참 좋겠어요. 원고비도 많이 나오죠?”하며 그녀는 해바라기 꽃이 되여 날 쳐다보는 것이였다.

‘속심이 드러나는 군!’하는 느낌에 그녀를 다시 똑바로 볼 라니 마음에 쏙 들어오던 그녀가 별안간 여우 같아 보였다. 그래서 “원고비를 바라고 글 쓰는 줄 아우?”하며 한바탕 닦아세우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체면을 지키면서

“아니요, 술소비 돈이나…”하고 뒤말을 삼키였다. 그 다음, 어떻게 헤여질 가를 골똘히 궁리하던 나는 난생 해보지 못한 거짓말을 생동하게 꾸며대는 수밖에 없었다. 몸에 오랜 지병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가던 걸음에 이렇게 만났노라며…

그녀와 헤여지니 숨이 하- 나왔다. 그 다음 나의 눈앞에는 재혼했다가 헤여지는 로부부며, 혼인등록도 하지 않고 결합했다가 얼마 못 가서 헤여지는 부부며, 헤여지면서 재산분할로 아웅다웅하는 재혼부부들의 영상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직접 듣고 본 사실들이다. 그네들은 모두 사랑 없는 재혼을 한 사람들이였다…

그로부터 재혼과 영별하기로 마음먹으니 지인이나 친척들도 더는 참견하려 하지 않는데 아들며느리가 ‘문제’였다. ‘새엄마’를 고대하던 아들며느리는 내가 재혼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다짜고짜로 “그러면 우리 집으로 갑시다. 혼자 계시면 식사도 제대로 안 하셔서 걱정입니다”하며 다그치는 것이 였다.

“너네 집은 죽어도 안간다, 시내에 내가 혼자 살집이 있으면 몰라도.”라고 내가 고집을 부리자 나의 옹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들며느리는 20여 만원 돈을 들여 조양천 중심에 층집 한 채를 사놓고 이 아비를 이사시켰다. 시장 한 켠에 위치한데다가 70평방 되는 널찍한 집은 나 홀로 살기에는 과분하였다. 시장이 가까워서 뭘 사기에도 편리하고 3층이다나니 오르내리기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불을 지필 필요가 없는 아빠트인지라 먼지도 나지 않고 석탄을 퍼 나르는 불편이 없어서 너무 편리하였다. 옷이며 이부자리며 여러가지 가전가구들을 갖추며 뛰여 다니던 아들며느리는 한주일이 멀다 하게 음식을 날라오기를 계속하면서 또 무슨 ‘집지키미’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보건품이요 약품이요 하고 사오다 못해 날마다 전화문안 하는 것도 모자라서 나를 수시로 ‘감시’할 수 있는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였다. 이 아비가 앓아 눕지나 않았는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를 살펴본다는가! 만년에 아들며느리의 효성에 감복된 나머지 그들의 걱정거리로 된 것이 죄스러워 났다.

‘자식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나의 건강이다. 건강을 챙겨야 자식들의 걱정을 덜 수 있고, 또 나도 오래 살수 있다.’

이렇게 깨달은 나는 수십년 같이 해 온 술담배를 멀리 하고 새벽마다 조용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걷기운동을 시작하였다.

지난해 이른 가을 어느날 새벽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걷기운동을 하던 나는 ‘당신은 무슨 재미로 오래 살려고 이렇게 운동을 하는가? 무슨 재미로…’하고 무의식 중 자문하게 되였다. 그 다음 어렵잖게 ‘문학하는 재미로…’하고 자답한 나는 정신을 벌떡 차리게 되였다. 로친이 몹시 앓을 때부터 어찌구러 놓아버린 문학이 불쑥 생각났던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고 창작 하는 것은, 말하자면 문학은 나의 소시적 부터의 애호이자 사랑이였다.

‘문학을 까먹었기에 적적해서 재혼에 정신이 팔렸구나!’

비로소 얼마 전까지의 자기를 침통히 깨닫게 된 나의 심장은 높뛰기 시작하였다. 당장 집에 돌아가서 무엇이든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다음 놓았던 필을, 하마트면 녹 쓸 번한 필을 다시 잡을 걸 생각하니 그야말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심정이여서 숨결마저 벅차 올랐다.

구상을 무르 익혀 필을 잡으니 ‘내던 가대기’라 어렵잖게 밭이랑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지탑잡은 마음으로 단편소설 여러편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 작품들은 내가 ‘재혼’해서 낳은 ‘늦둥이 자식’들이라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늘그막에 안로인들은 혼자 살 수 있어도 바깥 로인들은 혼자 못산다”지만 나는 혼자서라도 재미있게 보람찬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날마다 문학과 ‘사랑’을 속삭이다나니 하루 해가 어느결에 저물어 가는 줄도 모른다. 책을 보고 문장을 쓰는 것이 고질로 된 나의 생활습관이다. 우스개 말이지만 이런 생활습관이 ‘정력’을 키워 나한테 ‘늦둥이’들을 선물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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