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기억□ 김 정

2021-01-21 15:08:32

긴긴 밤이 지나고 동녘의 서광을 맞는 듯 하다. 주구장창 기약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학을 9월의 중간 문턱을 넘는 오늘에야 맞이했다. 산과 들에는 오곡백과 무르익고 풍년든 전야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수확의 계절에 나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캠퍼스에 들어섰다. 코로나 비상방역시기를 거쳐 일상방역시기에 들어선 오늘날 우리는 드디여 오매에도 그리던 캠퍼스에 다시 발길을 들여놓았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고풍스런 맛도, 현대적 미감도 풍기지 못하는 소박한 캠퍼스 정문이지만 오늘따라 정겹게만 느껴진다. 그 정문에 발을 들여놓은지 일년 반만에 코로나19사태로 정문에는 빗장이 걸리고 캠퍼스는 주인을 잃었다. 설마 설마했던 겨울방학이 밀리고 또 밀렸고 조마조마했던 이 마음의 탕개가 차츰차츰 풀리더니 오늘날에야 캠퍼스 정문이 빠끔히 열렸다. 정문안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학구적분위기가 다분히 풍기는 캠퍼스가 엿보인다. 쪽빛 하늘과 어루어진 저 정문 처마우의 청기와는 영원히 퇴색할 줄 모르는 희망마냥 우리를 부른다.

방역통제로 삼엄해진 정문을 지나 캠퍼스 비탈길을 오르노라면 정면으로 마주오는 종합청사가 사뭇 숙연한 감을 준다. 청사의 중앙 상단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노라면 저도 몰래 발걸음이 빨라진다. 코로나19의 세례 속에서도 꿋꿋히 와룡산 기슭을 지키고 청춘들의 안전한 귀환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캠퍼스가 아니였던가.

캠퍼스는 기억할 것이다. 청춘들이 없었던 그 쓸쓸하고 외롭던 나날들을. 그리고 오늘 자기에게 생기를 되찾아준 청춘들의 반가운 그 얼굴을. 계절이 몇번 바뀌였던가. 내가 너를 떠날 때는 박달나무도 얼어 터진다는 한겨울이였건만 다시 너를 만난 오늘은 벌써 서늘한 바람이 부는 천고마비의 가을이다. 잊혀진 캠퍼스에도 꽃피는 봄과 무성한 여름은 있었으니. 청춘들이 없는 곳에서 외롭게 핀 꽃들이 제아무리 고운들 누가 아름답다고 하겠으랴. 푸른 나무잎들이 무성한 아늑한 그늘을 만들었던들 누가 시원타 하였을가.

캠퍼스는 그동안 새학기의 개학시즌도 졸업시즌도 잃었었다. 그러나 캠퍼스는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이 없는 이 지역을 무시무시한 코로나 19바이러스 로부터 철저하게 격리해서 청정지역으로 다시 주인한테 돌아와야 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후배들과 동창들의 축복과 환희가 없는 올해 졸업식은 또 얼마나 조촐하고 쓸쓸했을가? 특별한 시기에 맞는 특별한 온라인 졸업식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울컥해났다. 4년간 정들었던 캠퍼스를 이렇게 떠나야 할 선배들의 마음이야 얼마나 섭섭했을가. 이 모든 순간들은 오직 캠퍼스가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5월의 화창한 봄날, 우리의 조문학부 청사 아래 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사과배꽃 아래에서 친구들과 사진 찍던 날이 엊그제와 같다.

“우리 해마다 여기와서 같은 자리, 같은 위치에서 사진 한장씩 찍어 추억을 만들자.”

굳게 다졌던 약속이 올해 봄에는 허무맹랑하게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이렇게 계절을 뛰여넘은 캠퍼스에서 다시 만났다. 비록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그 속에서 백옥같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친구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캠퍼스 안은 가을내음이 다분히 풍긴다. 서걱거리는 나무잎새로 노란 잎사귀가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이름모를 꽃들이 소슬한 추풍에 하느작거린다. 맑고 푸른 하늘에 천태만상으로 흘러가는 구름, 저 솜사탕 같은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 나만의 가을동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랜만에 들어서는 캠퍼스안에서 나는 들뜬 마음을 가까스로 눅잦힌다.

8개월 만에 기숙사로 들어가본다. 매캐한 곰팡이 냄새와 가슴 답답한 습기에 숨이 컥 막힌다. 커튼을 가르고 창문을 활짝 열고 눈부신 해살을 한가득 받아 들인다. 싱그러운 나무잎 냄새와 함께 주인을 잃었던 기숙사도 이젠 사람의 활기와 온기를 되찾았다. 그동안 나는 따스한 집안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나날을 보냈지만 페가처럼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던 기숙사는 얼마나 쓸쓸한 나날을 보냈을가. 그런 기숙사에도 이젠 오랜간만에 사람의 활기와 온기를 되찾는다. 4층에서 기숙사 앞마당 을 내려다보니 빨래줄에는 각양각색의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만국기마냥 서늘한 가을바람에 펄럭거리며 사람냄새를 물씬 풍긴다.

오후 수업시간이 되자 교실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오래만에 교실도 생기로 차넘친다. 눈빛으로 서로의 인사를 전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코로나 비상사태 속에서도  떳떳한 모습으로 서로를 잊지 않고 고무격려하면서 지내온 자욱이 력력하다. 교수님의 발걸음도 씩씩하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하다. 물만난 고기마냥, 관객을 마주한 가수마냥 교수님의 강의는 흥분과 활기로 차넘친다. 역시 오프라인 수업은 온라인 수업보다 실감이 나고 정서가 난다.

수업을 마치고 밖에 나와보니 해님이 벌써 서쪽기슭에 걸터앉아 캠퍼스에 빠알간 저녁노을을 뿌린다. 종합청사 앞을 지나노라니 한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여난 쌍둥이마냥 ‘박학(博学)’과 ‘독행(笃行)’이라고 쓴 커다란 돌비석이 길량켠에 가지런히 서있다. 깊은 학문의 뜻을 갖고 있는 ‘박학’비석과 학자의 정직함을 뜻하는 ‘독학’비석은 지식과 덕성을 나란히 하고 눈부신 석양 속에 캠퍼스의 중심도로에 비켜섰다. 이때까지 그토록 무심하게 보아왔던 두 비석이 코로나19비상사태를 겪고난 오늘따라 나에게 값진 충고를 해주는 듯 하다. 꿈이 아무리 커도 지식이 없으면 결코 이룰 수 없듯이 덕성을 떠난 지식은 빛을 잃은 등불과 같아 세상을 밝히지 못할 것이라고.

지난 세차례의 가을 태풍이 많은 비를 뿌리고 갔다. “가을비는 장인의 구레나룻 밑에서도 긋는다’는데 태풍이 몰고 온 올해 가을비는 장마비마냥 추적추적 지루하게도 내렸다. 태풍 때문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지만 캠퍼스만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양 여전히 고즈넉함과 숙연함감을 잃지 않고 있다.

오늘따라 저녁 노을이 유난히 아름답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비꼈으니 화창한 래일이 기대된다. 캠퍼스야, 지난 몇달동안의 외롭고 쓸쓸했던 기억은 지워버리고 아련히 젖어오는 추억의 화원에서 더욱 즐겁고 더욱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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