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역병이 전세계를 휩쓸어 잘 되던 옷가게가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이여서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때였다. 셋째 언니가 돌아오는 일요일 날 진달래꽃 구경 가자고 우리 최씨네 딸부자그룹채팅방에 올리길래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동의하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아홉시경에 우리 다섯 자매는 웃고 떠들며 진달래꽃 밭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이르니 떨기떨기 진분홍 꽃들이 봄바람에 하느작하느작 반겨 맞았고 은은한 진달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다섯째가 어느새 셀카봉을 꺼내들고 우리를 요래조래 지휘하며 여러가지 자세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이젠 자리를 찾아 앉자는 큰언니의 제안에 우리 다섯 자매는 조용한 곳을 찾아 앉았다.
셋째 언니는 푸짐하게 준비한 간식을 꺼내며 마치 자기가 만든 것처럼 자랑스럽게 하나하나 소개했다.
“아침을 대충 요기했을 것 같아 내 많이 준비했는데 요건 연변빈관 빵조합이요, 요건 꿀떡이요 그리고 요건 꽃떡이요, 요건 또 복무대로의 감주요. 그리고 이것들은 광활한 중국 땅에서 열리는 과일들이요...”
우리가 한창 음식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문자메시지 전송음이 울렸다.
다섯째가 일어나 핸드폰을 펼쳐보더니 중얼거렸다.
“몇년 전 묵은 노래를 보냈네.”
“다섯째야, 노래는 묵을수록 좋은 거 아니니? 하나 골라 띄우렴.”
큰언니가 조용하게 말했다.
“알았소. 여기 최경호가 부른 노래 <엄마 생각>이 있네.”
다섯째가 띄운 노래를 듣고 있던 큰언니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무더기로 핀 진달래꽃 앞에 가 섰다.
“다섯째야, 좀 흥겨운 노래를 찾아 띄울 거지 하필 제일 슬픈 노래를 띄울 건 뭐야? 저 봐라, 큰언니를. 나도 엄마 생각이 나네.”
둘째 언니가 중얼거리며 큰언니 곁으로 갔다. 우리도 말없이 일어나 큰언니 곁으로 다가갔다.
큰언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어릴 적 엄마는 해마다 우리를 데리고 마을 앞산에 진달래 보러 갔는데…”
큰언니의 말에 우리는 모두 추억에 잠겼다.
“엄마는 ‘진달래는 부지런해서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사람들에게 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파란 잎이 나기 전에 요 분홍꽃이 먼저 핀다’라고 알려줬소.”
둘째 언니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또 진달래는 저렇게 소나무처럼 크게 자라지 않아도 뿌리를 땅밑에 튼튼히 박고 해마다 꽃을 잔뜩 피운다 했소. 뭉쳐서 온 산을 덮는다 했소.”
셋째 언니의 말에 우리는 또 서로서로 쳐다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나도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엄마는 그래서 친척들과 사이 좋게 잘 지냈겠소. 찰떡을 치거나 두부를 앗으면 친척집들에 다 나눠주고. 그 덕에 우리 아버지 시름시름 앓으면서 무거운 일을 못할 때 친척들이 너도나도 달려와 많이 도와주었겠소.”
언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때 다섯째가 갑자기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오늘 엄마말이 나온 김에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게.”
다섯째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차분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반달 전에 큰숙모가 다리골절로 하남병원에 입원했을 때 코로나로 인한 비상시기여서 병원에 가 보지도 못했잖소. 일주일 전에 큰숙모 퇴원했다고 하니 보러 갔댔소.”
입 빠른 둘째 언니가 왜 알리지 않고 혼자 갔냐고 툭 쳤다. 다섯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들렸소. 어렸을 때 나는 언니들 옷을 물려 입느라고 새옷을 별로 못 입었소. 그런데 큰숙모가 딸의 옷을 살 때면 가끔 나에게도 새옷을 사다 줬소. 엄마가 내 결혼식 전에 갑자기 돌아갔을 때도 큰숙모가 내 첫날이불을 해줬소. 그래서 큰숙모가 무척 고맙고 잊혀지지 않소.”
“맞아. 너하고 사촌녀동생 춘희는 동갑이고 키도 비슷하게 자랐잖니?”
다섯째가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는 계속 말했다.
“큰숙모 보러 가면서 과일이랑, 숙모가 좋아하는 보신탕을 사갔더니 반가워하면서 말을 많이 했소. 내 두 손을 꼭 잡아쥐고 ‘너희 엄마 오래 살았어야 하는데… 막내딸까지 이렇게 잘사는 것도 보고 가야 했는데… 그리 고생했으니…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립데. 그러면서 우리 아바이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우리 가문의 특급비밀을 말해줬소.”
“무슨 비밀, 무슨 비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다그쳐 물었다.
다섯째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울먹거리며 말을 했다.
“언니들, 놀라지 마오. 우리 엄마 글쎄, 열세살에 팔려서 나이 열살이나 더 많고 다리를 저는 우리 아버지한테 시집 왔다오.”
“그런데 처음에는 애가 들어서지 않아서, 후에는 또 아버지가 장손인데 딸만 줄줄이 낳았다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구박을 영 많이 받았다오. 그래두 어린 우리 엄마 아무 티도 안 내고 우리 집에서 제일 일찍 일어나 물을 길어 하루 세끼 밥을 하고 저녁이면 온 집 식구 빨래를 혼자서 다하면서 제일 늦게 자며 살았다우. 우리 아버지 엄마가 불쌍해서 가만히 도와주려 하면 할머니가 어떻게 아는지 아버지를 호되게 꾸짖었다오. 그래서 우리 엄마 혼자서 벙어리처럼 일만 하면서 살았다오.
그리구 우리 다 알지 않소, 엄마가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도 혼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진짜야? 우리 엄마가 왜 팔려왔다니?”
성질 급한 둘째 언니가 용케도 참는다 했더니 다섯째에게 이렇게 따졌다.
“나두 숙모와 그렇게 물었소. 우리 엄마 어째서 팔려왔는지는 누구도 모른다오. 어떤 남자가 먼 친척이라면서 데리구 와 돈을 받아 가지고 갔다오. 식구들이 처음에 ‘너네 부모는 왜 너를 팔았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소리치며 울다가 기절까지 했다오. 그때 돈으로 비싸게 사왔는데 혹시라도 잘못 될가봐 그 후로 누구도 감히 묻지 못했다오. 큰숙모가 이젠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는데 딸들이 엄마 력사를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울며 말해줍데.”
모두들 너무 억이 막혀 서로 쳐다보면서 입만 쩝쩝 다셨다.
“그래서 우리한테 외가집이 없었겠소. 내 언젠가 한번 엄마와 우리 어째 외가집이 없는가 하니 ‘전염병에 걸려 다 돌아갔다’ 한마디만 합데.”
셋째 언니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맞다. 우리 외가집이 없어 방학이면 외가집에 가는 동네 애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큰언니가 좀 납득이 가는지 천천히 말을 떼더니 이어갔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누구와도 속 시원하게 말 한마디 못했으니 울 엄마 빨리 늙었지… 언젠가 엄마가 나를 보고 자기 나이 보다 많이 늙어보여서 영~ 속상하다 하더라.”
“아무리 팔려왔다 해도 왜 그렇게 할 말도 못하고 답답하게 살았다오?”
어릴 때부터 벙어리처럼 살아온 엄마가 야속해 가슴 한구석에 쌓인 불만이 저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튕겨나왔다.
다섯째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또 말을 시작했다.
“나도 생각나는 게 있소. 소학교 다닐 때 어느 날인가 엄마가 기름병사리를 들고 나갑데. 그런데 한참 후 빈손으로 들어와 가마목에 가만히 앉아있더니 아무 말도 없이 또 나갑데. 이상해서 살금살금 엄마를 따라 가봤더니 앞산의 진달래꽃 앞에 한참 서있더니 혼자말로 중얼거리는게 아니겠소.”
우리 네 자매는 “뭐라고 말하데?” 하며 다그쳐 물었다.
다섯째가 천천히 말했다.
“엄마 진달래꽃을 찬찬히 보면서 ‘나두 니처럼 고울 때가 있었는데, 나두 니처럼 고왔었는데…’ 이렇게 울먹거리며 말합데. ”
우리의 놀란 눈길에도 다섯째는 슬픈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또 진달래꽃을 요렇게 쓰다듬으면서 ‘고맙다, 오랜 세월 내 말을 다 들어주구, 너네 참으로 나한테 힘이 마이 댔다.’ 이렇게 말하며 풍덩 물앉아 흐느껴 웁데."
다섯째는 흑흑 느끼면서도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는데… 살아오면서 가끔 곰곰히 생각하고, 또 요새 큰숙모 말을 들은 후로 고생만 하고 일찍 돌아간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해 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오.”
가슴을 치며 오열하는 다섯째를 바라보며 우리 자매들 모두가 소리내여 울고 말았다. 슬픔 때문에 아무도 말을 못하고 있을 때 셋째 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 진짜 고달프고 비참하게 살았었구나. 그렇게 가냘픈 몸으로 모든 역경 말없이 이겨낸 우리 엄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오. 그리고 엄마와 비하면 지금 우리 겪고 있는 고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드오. 큰언니는 지금 형부가 편찮아 그렇지, 잔치하자마자 세간나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잘살았지 않소? 형부가 얼마나 큰언니를 이뻐했소? 그러니 계속해 형부를 잘 돌보오. 둘째 언니도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자면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아저씨와 같이 두 사람이 한사람만 돌보니 괜찮지 않을가? 넷째 너도 지금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잠시 잘 안되겠지만 몇년 전에 많이 벌어놨으니 사는 데는 큰 지장 없잖니? 막내 너는 둘째 공부 잘 안해도 걱정말아. 울 엄마 보아라, 딸 다섯이 어디 다 공부 잘했니? 우리 가운데서 공부하기 제일 싫어한 넷째가 장사를 시작해 잘살면서 엄마를 제일 많이 돕지 않았니. 여러분, 우리 다 시대를 잘 만나서 엄마처럼 집에서 일만 하며 사는 게 아이지 않수? 다~ 엄마보다는 씩씩하고 행복하게 잘살구 있지 않수?”
황혼의 나이를 불태워 곱게 늙겠다면서 여기저기 다니며 좋은 강의를 듣고 또 글쓰기를 시작한 셋째 언니를 주책머리 없다고 우리 자매들이 모일 때마다 실컷 놀려주었는데… 오늘 셋째 언니가 채머리를 떨며 입을 뿌죽이 내밀고 표현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지, 그렇지.” “맞다, 맞다” 라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셋째 언니를 툭 치면서
“언니, 우리를 요렇게 교육하자구 여기로 데리고 왔지?”라고 물었다.
“야! 그런게 아니다. 요즘 모두들 딸부자그룹채팅방에 잘 오르지 않으니 개인톡으로 한사람 한사람 문안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모두 어딘가 후줄근한 모습이더라. ‘모두 사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구나. 함께 어디 가서 확 날려버리자’고 생각하던 차 마침 진달래절이라구 홍보를 하길래 이렇게 조직했다. 우리는 양처럼 순하면서도 자식한테는 되게 엄격한 엄마의 감독하에 모두 바르게 잘 자라지 않았니? 모두 자식들을 잘 키워 대도시에 보냈구 걔네들도 모두 잘살구 있구. 난 그저 우리 자매들이 나이 예순이 넘어도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서로서로 돌보며 즐겁게 건강하게 살구, 좋은 경치 보면서 사진이랑 많이 찍자고 오자 했다.”
모두들 셋째 언니의 어깨를 톡톡 쳐주고 엄지를 내밀었다.
인정이 좀 모자란다는 말을 듣는 큰언니도 셋째 언니를 꼭 그러안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시작했다.
“오늘 셋째 덕분에 우리 참으로 좋은 모임 가졌구나. 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내 결혼식 전날 저녁에 엄마 나를 밖으로 불러내다 두 손을 꼭 잡고 눈물 머금고 부탁하더라. ‘넌 좋은 사회 만나 공부를 많이 했으니 절대로 엄마처럼 벙어리로 살지 말고 할 말 다하면서 씩씩하게 잘 살아라.’”
“엄마가 나한테는 ‘넌 똑똑하고 역빠르니 어디 가든 사업 잘하고 당원에도 들고 시부모 공대 잘하면서 잘 살아라.’ 이렇게 말합데.”
둘째언니가 큰언니를 빠금히 쳐다보며 말했다.
셋째 언니가 두 언니를 번갈아 보고 또 다섯째를 보더니 말했다.
"야, 울 엄마 보기보다 현명했네. 늘 웃고 떠들며 장난질하는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기만 한 것 같은데 오늘 보니 엄마가 딸들에게 제각기 다른 부탁을 했구만.”
다섯째가 화제를 돌리며 “와~ 오늘 사진들이 영~ 잘 나왔소. ‘사랑하는 가족’ 그룹채팅방에 올렸소.”하고 흥분되여 소리쳤다.
“우리는 좋은 시대를 만나서 이렇게 핸드폰으로 사진이랑 찍어 남길 수 있는데 우리 엄마는 고운 사진 한장 제대로 못 남기구...”
핸드폰 속의 사진을 보면서 큰언니가 안타까워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 말 들은 셋째 언니가 어르기라도 하듯 다급히 물었다.
“큰언니, 우리 다섯 가운데서 누가 제일 엄마를 많이 닮았소?”
“그래도 막내가 제일 많이 닮았다. ”
큰언니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그러면 우리 오늘 막내를 젊었을 때 엄마라 생각하고 사진 한장 곱게 찍어두는 게 어떻소?”하고 셋째언니가 제안을 했다. 우리 모두 박수를 치면서 좋다고 했다.
“큰언니, 우리 엄마 젊었을 때 어떤 옷을 입었소?”
다섯째가 물었다.
큰언니가 “흰 저고리, 까만 치마…”하고 떠듬거리며 말하는데 둘째 언니가 “그리고 쪽진 머리 했다.”하고 뒤질세라 말했다.
“머리는 쪽져얹을 수 있는데. 옷이 마땅치 않네.”
다섯째가 안타깝게 말했다.
나는 얼른 큰언니 목에 걸려있는 하얀 스카프를 가져다 다섯째의 어깨에 걸쳐 놓고 팔을 덮어주고 셋째 언니가 입고 있는 검정색코트를 벗겨 거꾸로 다섯째의 가슴에 둘러놓고 한켠으로 여며 놓았다. 그리고는 다섯째를 진달래가 무성한 꽃무지 뒤에 세워놓았다.
박수소리가 터졌다.
“와~ 진분홍 꽃 속에 흰 저고리, 까만 치마를 입고 머리를 쪽진 울 엄마, 너무 멋있다야.”
셋째 언니가 이렇게 읊조리니 큰언니가 소리쳤다.
“진달래 향기!”
둘째 언니도 뒤질세라 “엄마의 향기!”하고 뒤를 이었다. 나도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갔다.
“고향의 향기!”
셋째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영원한 향기!”하고 소리쳤다.
다섯째가 말했다.
“우리 언니들 시인 아닌 시인이네. 내 요즘 화술공부 좀 했으니 언니들 집체창작시를 제대로 읊을게.”
다섯째가 우리와 마주서서 폼을 잡고 차분한 소리로 시를 읊는 가운데 나의 귀전에는 “좋은 세상 만나 재간 많이 배웠으니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잘 살아라”던 엄마의 당부가 맴돌아쳐 회심의 미소와 함께 눈귀로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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