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속 세상 엿보다-《타인의 삶》
휴머니즘은 살아있다□ 신연희

2021-08-25 15:38:50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독일민주공화국(이하 ‘동독’)은 국가보안부 비밀경찰(이하‘슈타지’)의 감시 하에 있었다. 이들은 정식 직원만 10만 명에 이르는 대형 조직을 갖췄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다. 사회주의의 적이자 국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해 1600만명의 동독 시민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목적이였다.

전체주의 하에서의 시민들은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감시와 미행, 도청은 일상이 됐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살았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삶을 빼앗겼다. 영화 《타인의 삶(窃听风暴)》의 배경이다.

비즐러는 ‘슈타지’의 대위이다. 그는 비인간적인 고문의 대가이자 당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신념을 고수하는 랭혈한이다. 그는 장관의 명령을 받은 친구이자 상사인 그루비츠의 명령으로 유명한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시, 도청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드라이만의 안해이자 배우인 크리스타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녀는 장관의 내연녀이기도 했다. 비즐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날 크리스타는 집으로 오는 길에 장관에게 붙잡혀 성을 상납하고 만다. 장관의 차에서 내리는 크리스타를 보고 비즐러는 이 사실을 드라이만이 알게 하기 위해 벨을 조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였음에도 드라이만은 그녀를 추궁할 수 없었다. 단지 떨고 있는 그녀를 꼭 끌어안아 줄 뿐이였다. 랭혈한 비즐러는 이 모습에 생전 겪어보지 못한 련민을 느낀다.

드라이만의 스승인 예르스카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을 때 그 충격을 피아노 연주로 삭히려 한다. 이 슬픈 피아노 소리를 듣고 비즐러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였다. 이후로 그는 차츰 변해간다. “인간적으로”어느 꼬마와의 대화를 엿들어보자. 그의 변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저씨,  ‘슈타지’맞죠?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슈타지’는 나쁜 사람이래요. 막 사람들도 잡아 간대요.”

“너네 아…(빠)니, 공 이름이 뭐냐?”

“아저씨 바보예요? 공에 무슨 이름을 붙여요?"

“….”

영화는 자칫 잘못하면 동독 전체주의의 상징인 ‘슈타지’를 옹호하고 있다고 비춰질 수도 있는 내용을 ‘슈타지’전체가 아닌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춰 잘 피해가고 있다. 그로인해 더욱 극대화되는 감동을 느낄 수 있고 화합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쉰들러 리스트》를 떠올려 보자.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이 운영하는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되여 온갖 비리를 서슴치 않게 저지른다. 유태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더니 유태인 회계사 스턴을 만나 눈을 뜬다. 온갖 비리를 유태인을 수용소로부터 구해내는 데 쓴 것이다. 나치 당원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춰질 수 있는 내용을,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잘 피해가면서 감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랭혈한 비즐러와 기회주의자 오스카 쉰들러가 변해가는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드라이만에게는 그를 포함한 반체제 예술가들에게도 스승과도 같은 존재인 예르스카가 있었다. 그는 연출금지를 당해 “밀가루 없는 방아간처럼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를 싫어했다. 그 또한 모두를 싫어했다. 진정한 반체제 예술가라면 자신처럼 연출금지를 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리유에서였다.

드라이만은 예르스카의 정신을 받들었지만 예술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는 반체제의 연극을 올리지 않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지만 외려 당당히 서양 서적을 읽으며 의심을 사기도 한다.

크리스타는 장관과의 내연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한 자신이 더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을 믿지 못하고 불법으로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기도 한다. 계속되는 장관과의 관계와 약물 복용으로 지칠 대로 지쳐가는 그녀, 드라이만은 그녀에게 장관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그와의 관계를 끊더라도 충분히 혼자 힘으로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예르스카와 같은 종말을 원치 않아요. 그리고 저도 원치 않고요. 그리고 그때문에 지금 전 나가는 거고요.”

그녀 앞에 나타난 비즐러, 오랜 시간 그들의 삶을 도청하면서 이미 상당히 동화된 상태였다. 그는 그녀에게 “전 당신의 관객이거든요. 당신의 최고의 예술가예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녀는 장관이 아닌 드라이만에게로 간다.

예술 자체에 대한 사랑을 견지하는 예술가와 예술의 목적을 탐구하는 예술가가 있다고 하면 크리스타는 전자에 속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침략 속에서도 각자의 신념에 맞게 행동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옳바르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시대를 원망했을 것이다. 예술가의 고뇌가 읽힌다.

휴머니즘은 살아 있다.

목숨이 오가는 서슬이 푸른 압재속에서도 휴머니즘을 견지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비즐러는 급기야 보고서를 조작하고 상관에게 거짓말을 일삼는다. 누군가가 닉명으로 반체제를 옹호하는 기사를 써서 동독을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그가 드라이만이라는 의심을 품은 상관이 드라이만의 집을 두번에 걸쳐 압수수색하자 중요 증거인 타자기를 빼돌리기도 한 것이였다. 대신 그의 경력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이 영화의 휴머니즘은 마지막에 그 결실을 맺는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비즐러는 “굴 같은 지하에서 편지들을 증기 다림질을 하는 일”을 그만두고 편지배달부로 일한다. 반면 드라이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들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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