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에서 방천까지 우리 시가 간다(11)

2022-01-21 08:59:37

백년부락(외 3수)

□ 김일량


키 높은 파란 수양버들은

머리를 길게 풀어내리고

어제밤 숨겨둔 별빛무늬 반짝이는데

가을 해빛은 무슨 새 이야기 적었을가

버들잎을 번져보고 있다


흥겨운 농악무와 장고 소리는

쿵쿵 땅을 구르며

력사의 숨소리를 깨우고 있는 듯

멀리 둥그렇게 둘러선 병풍산 속에

장기쪽같이 낮다랗게 모여앉은

청기와 옛집 백년부락

조상들의 지혜로운 자취가

천년만년 수수께끼로 숨쉬고 있다.


방천 1

서산에 지는 해

예쁜 금붕어 같은

빨간 꼬리를

두만강 푸른 물 속에

뚝 잘라 놓고 간다


물고기들이

태양의 꼬리를 씹으며

우주의 금빛 향기로

새살을 올리는 밤은

너무나 황홀할 것이다.


방천 2

백두산 기슭에서

해발 5메터 방천으로

풀쩍 뛰여내린다

우리의 뻐스는

하얀 구름 속에서 수건을 뜯어내여

얼굴에 먼지를 닦으며

늦가을 단풍향기 바람을 뚫고

방천 분지에 발목을 박았다


고기잡이와 관광업으로

금덩이를 굴리고 있는 동네

지구의 시간이 머물다 가고

세상의 눈길이 모이고 있는 금삼각

태양이 이사짐 옮겨오고

달님이 신부방 짓고

별들이 밤마다

새 과목 배우러 온다…


일광산

틀어쥔 주먹 하나

해발 390메터 높이에

바위돌로 굳어졌다


아침이면 태양이

빨간 지문 찍고

구름이 수건을 쥐여짜서

깨끗이 닦아준다


산 아래는 큰 활 하나

누가 두고 갔을가

옛날 일광산을 허물러 왔던

괴물을 쏘던 활일가…


그늘 하폭 이고

산정으로 올랐다가

가슴에

태양 하나 안고 내린다.



백년의 약속(외 1수)

□ 배련희


해살이 취해 누운

버드나무 한그루 마주섰다

백년의 숨결 피줄로 느끼며

터실한 잔등 어루쓰는데

계절의 희로애락

주름 우에 조각한 나무


그 아래 종이 울린다

온전히 잃은 엄동에도

견디여 남을 만했다고

내 마음속에서도

종의 메아리 울려온다

상처로 비틀댄 세월 아름다웠다고


어느덧

봄흙 뚫은 싱그런 나무 한그루

마당에 서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로

삶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백년부락의 한그루 나무로.


백년의 꿈

마루에 걸터앉아

깔깔대며 쏟아지는 해살 지켜보다

둥근 세월 당겨 들어서니

가마목엔 따끈히 구운 인정

구석구석 향기로 퍼진다


별무리도 내려와 푸른 꿈 심었겠지

달도 가다 꿈으로 익었겠지

휜 등뼈로 삭혀온 인생

아름다운 전설로 시린 이곳


미소 짓는 할머니의 동년이

예서 잠자겠지

늦가을 내 맘속에

봄기운이 가득 찬다.



방천(외 1수)

□ 전병칠


긴- 태줄 물고

태아가  익어가고 있다


엄마의 복덩이!


발길질 툭-툭-

태양을 구른다.


빈수레

—백년부락의 빈수레에 부쳐


숨가삐 굴러온 세월

등허리 지지리 눌렀던

가난과 한숨

싣고 부리우기 몇번이던가


봄이면 두엄

여름이면 장군들 행상짐

가을이면 곡식낟가리

겨울이면 땔나무…


한때는 책보자기 멘 학생들

오구작작 학교에 실어가고

진달래 꽃대궐 만들어

신랑 신부 앉히기도 했지


절렁절렁 방울소리로

푸른 아침을 달달 볶던

어제의 풍요로움 묵묵히 삼키는

디아스포라의 그림자


오늘은 한마당 가득찬

농악의 장단을 싣고

어디를 가려고 하는 걸가

휘영휘영…



백년가옥(외 2수)

□ 김춘희


백년바람

천년추위에도

흔들리고 꺾이지 않는 하얀 넋

만년을 춤추고 억겁을 꿈꾼다

백년을 살았다고 열번을 변하랴

바위의 침묵, 지심 깊이 하얀 뿌리 내리며

파아란 숨결 꽃같이 뿜어 무지개 수놓는다

백년의 절개-고요한 몸부림

너는 생각하는 사나이-

수천만 발자취 한몸으로 자랑하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환호하고

고개 숙여 땅을 지킨다

캄캄칠야에도 해살처럼 바람 막으며

파란 눈동자 머리에 이고 옛이야기 주절인다

살아가야 하는 리유를 아는 너는

백년을 견뎌 숨쉬였으니

천년이고 만년이면 어떠랴

하늘을 우러러

너를 우러러

정처없이 지줄대며 날으는 새를 보며

또 한번 길을 묻는가

말이 없구나.


저기 바다가 보인다


룡호각 높이 서면

푸른 띠를 두른 듯

저기 아름다운 바다가 보인다

피줄 같은 숨결이 가늘게 출렁인다

멀어서 티끌 없는 하늘 끝이 지척처럼 보인다

정화하는 령혼의 소리가 하얀 목련처럼 들려온다

한줄기 흰빛이 유독 유표하게

희미한 옛 다리를 지나 바다로 향한다

굽이굽이 오랜 방황 끝에

가까운 곳으로의 가장 먼 려행을 떠난다

저기 바다가 보인다

알 수 없는 깊이를 노크하는 푸른빛

바다를 향한 한줄기 흰빛이 보인다.


두만강


방랑자의 려인숙

바람의 안식처

씨앗을 씨앗이게 하는 터전

사람을 사람답게 비추는 거울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

불러주고 다독여주는 소리.



가을 두만강역(외 1수)

□ 최옥란


알알이 영근 낟알

금빛 울음 토해내면

노을에 취한 두만강은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갈대 합창단 목청 돋구어

풍년을 노래하면

코스모스 군무단은 얼싸 좋다!

상모 돌린다


메뚜기 병창단 장고가락

섬섬옥수 뜯으면

참새마저 신명이 나

목 피대 세워 장새납 울린다.


일광산

일광산에 올랐다

산등성이 일어나 앉은 흰구름

묵시록을 읽고

산 아래 숨쉬는 두만강은

긴긴 력사의 이야기

도란도란 나누고 있었다


산은 붉은 꿈덩어리 가슴으로 받아

아침 빗장을 열었다


부채살처럼 펼쳐진 수려강산

새색시처럼 고옵게 차려입은 옷매무시

산국화가 수놓은 꽃무늬에

  시상이 흠뻑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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