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연의 길□ 김 혁

2022-01-29 09:20:24

락연공원에 들어서면 교목과 관목이 어우러진 가운데 한락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88년 12월, 북경민족문화궁에서 한락연 탄생 90돐 유작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그 전시회장에 느닷없이 한 한국에서 온 귀빈이 나타났다. 고희를 바라보는 그 안로인은 바로 한락연과 전 부인 최신애 사이에서 태여난 장녀 한인숙이였다.

일찍 피난 도중에 어머니를 잃고 일가친지 하나 없이 중국에 두고 온 아버지를 그리며 외롭게 지내온 40여년,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외조카로부터 뜻밖에도 아버지 한락연의 유작전람이 북경에서 열리게 되며 생각지도 못했던 피줄을 나눈 이복동생들이 있다는 말에 북받쳐오르는 눈물이 한인숙의 옷깃을 적셨다.

하루빨리 이복동생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당시 중한 두 나라는 아직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서 어찌할 방도가 따로 없었다. 이를 알고 염보항의 아들이며 당시 중앙통전부 부장이였던 염명복이 관심와 방조의 손길을 주었다. 한인숙은 먼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중국대사관의 허가를 받은 후 중국으로 입경하였다.

1989년 5월 12일 오후 4시, 북경 비행장의 터미널에서 드디여 삼형제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은 형제도 없이 외로운 존재라고만 늘 생각해왔던 한인숙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미여지게 아프고 섭섭하고 아쉬웠다. 아버지가 이미 4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였다. 교차하는 만감을 억누르며 세 남매는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조선어, 한어 그리고 영어를 써가며 끝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빈에서 아버지를 잠간 만난 후, 최순애 모녀는 한국으로 나갔다. 서울, 원산, 청진 등지를 떠돌며 팍팍한 삶을 살다가 다시 고향 룡정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부쳐보낸 돈으로 세칸짜리 초가집을 사서는 학생들을 숙박시켜 나오는 수입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동안 줄곧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렸으나 종무소식이였다.

1937년 5월에 그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개인전 개최를 통해 려비를 벌고 나서 머지않아 곧 륙로를 통해 중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였다. 그 후 수십년을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1947년, 한인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자식들과 함께 함경도로 건너갔다. 애통한 것은 조선전쟁의 란장 속에서 한인숙은 어머니 최신애와 두 아들과 헤여지게 되였는데 그 이후로 영영 련락이 끊긴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 한락연의 두번째 부인 류옥하의 소생인 이복동생들은 아버지의 묘비를 세우면서 아량 깊은 어머니의 분부 대로 자신들의 이름 앞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언니이자 누나인 한인숙의 이름도 새겨넣었다. 이 모든 공덕은 류옥하 어머니의 넓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됐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룡정에 딸 하나가 있었다.”고 자식들에게 알려준 것이였다.

감개와 눈물을 머금고 한인숙과 이복동생들은 유작전시회에 참석했다.

전시회가 끝나자 한건립과 한건행은 한인숙을 배동하여 팔달령의 장성에 올랐다. 단 만리장성을 구경시키려 온 것만이 아니였다. 그들은 장성의 마지막 모퉁이에서 서녘을 향해 섰다. 바로 멀리 장성의 서쪽 끝인 가욕관을 바라고 섰다. 바로 그 부근에서 아버지 한락연이 조난당한 것이였다.

그들은 서역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드디여 1992년에 중한 수교가 이루어져 한락연의 자녀들은 서로 래왕하면서 두터운 정을 나누었다. 어머니 류옥하가 림종 때 남긴 “언젠가 동북의 언니를 찾으면 화목하게 잘 지내라.”는 유언을 이복동생들은 그대로 지키였다.

룡정이 낳은 고향의 인걸 한락연에 대한 평전을 기획하면서 필자는 한국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 있는 한인숙 녀사의 거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를 찾아 예산행을 서두르고 있었지만 평전 집필의 첫 딱지를 떼였던 2010년 9월경 필자는 애석하게도 91세 고령의 한인숙 녀사가 타계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였다.

조선족이 낳은 걸출한 화가 한락연에 대한 기림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일찍 2005년 심수에서 ‘석파천경-돈황의 발견과 20세기 중국미술사관, 미술언어의 발전 주제전시’를 개최, 한락연과 상서홍, 관산월, 장대천의 그림이 전시되였다.

2007년 3월에는 중국미술관과 오문기금회, 오문민정총서가 오문에서 공동으로 ‘열혈단심 회화의 혼-한락연예술전’을 개최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중국미술과과 심수 관산월 미술관이 심수에서 공동으로 ‘열혈단심 회화의 혼-한락연회화예술전’을 개최하였다.

2010년 8월, 룡정시당위와 시정부가 ‘한락연 기념 좌담회’를 조직,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리덕수가 직접 좌담회에 참석하였고 한락연의 자녀들도 좌담회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룡정시당위와 시정부는 ‘한락연연구회’를 설립하였다.

2010년 12월 8일 한락연연구회와 연변조선족자치주 부분적 청년작가와 학자, 언론기자들이 공동으로 ‘홍색화가 한락연 탄신 112돐 기념 좌담회’를 진행하였고 2011년 6월에는 중국 국가미술관에서 한락연회화전을 개최, 도합 133폭의 작품이 전시되였다.

2011년 7월 30일 룡정에서 제1차 ‘고위층 한락연 연구토론회’를 개최하였고 한락연 동상 제막식도 진행하였다. 2013년 7월1일 주당위, 주정부, 중국미술관에서 주최하고 주당위 선전부, 주문화국, 연변박물관에서 주관한 한락연 탄신 115돐 기념 한락연회화작품전시가 한락연연구회의 협조로 연변박물관 전시청에서 개막하였다.

2013년 12월에는 나의 조선족청소년인물전 《한락연의 이야기》가 출간되였다.

2017년 2월 21일, 중국조선민족사학회, 중국미술관, 북경시민족련의회, 연변주당위 선전부, 민족출판사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충혼예채(忠魂芸彩)’-《한락연을 추억하며》 출판좌담회가 북경 민족문화궁에서 진행되였다.

2018년 9월 26일, 주당위 선전부와 룡정시당위, 룡정시정부에서 공동으로 주관하고 룡정시당위 선전부, 룡정시당안국,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한락연연구전업위원회에서 주최한 한락연 탄신 120돐을 맞는 기념활동이 룡정시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중국미술관에서 편찬한 《한락연 탄신 120돐 중국미술관 소장 한락연 작품전 작품집》(2020년)이 문화예술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고향 룡정에서는 그의 그림전시회와 생애와 창작을 둘러싼 세미나가 이같이 다양하게 개최되는 한편 그의 이름을 본딴 공원이 조성되였다. 부지면적이 2천여평방메터 되는 공원에 들어서면 3층 높이의 루각이 우뚝 솟아있다. 루각은 한락연의 이름을 따서 락연정이다.

락연정 주변에는 정교하게 만든 6개의 경관등이 세워져있는데 경관등에는 리백, 두보, 백거이 등의 불후의 시편들이 새겨져있다.

락연공원에 들어서면 교목과 관목이 어우러진 가운데 한락연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단정한 양장차림, 도수안경 속에 예지로 빛나는 눈길, 환한 미소를 가진 화가의 반신 동상이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 전반 동방인민의 해방과 자유를 사명으로 간주하여 험준한 혁명투쟁의 길에 나섰던 혁명가 한락연, 고비사막에 방치되였던 세계문화의 보고를 눈동자처럼 아껴 보호하고 발굴했던 예술가 한락연, 그의 웅숭깊은 미소는 해볕 아래 진한 광택의 구리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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