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 서사□ 김경숙

2022-02-11 08:50:40

“점심에 거부기 먹이를 챙겨줬어?”

화가 난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자 휴대폰을 벽에 메치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미워도 한 이불을 덮고 산 지가 40년이 가까워오는데 아무리 미워도 안해가 아닌 거부기의 문안부터 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남편처럼 저렇게 거부기를 20년을 넘게 자식보다도 더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편에게는 집안에서 서렬도 거부기, 딸, 마누라 이런 순으로 정해져있다.

수족관에 남편이 사다 놓은 산 미꾸라지를 넣어주자 거부기는 엉금엉금 기여서 수족관으로 들어간다. 거부기의 먹이를 낙지나 문어를 주던 것이 3개월 전부터 남편은 거부기가 나이가 들어서 신선한 것을 먹어야 한다면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사다가  먹이고 있다.

수족관을 헤염쳐다니면서 먹이를 먹는 거부기를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청춘에 만나 이젠 머리에 백발이 서렸지만 그래도 부부인데 내가 직장암에 걸려 3년이 되는데 어떻게 밥 먹었냐는 문안 한마디 없이 거부기부터 챙긴단 말인가?

“그래, 많이 먹고 남편이랑 천년만년 살거라.”

나는 작은 어항에 담긴 미꾸라지를 몽땅 쏟아부었다. 갑자기 많아진 먹이에 거부기는 도리여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거부기를 외면하고 돌아섰지만 한번 쏟아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남편에게 거부기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면 직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냥 죽어버렸어야 하는데 구차한 목숨을 구해서 이렇게 비참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내가 더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침대에 누워서 혼자 오열을 하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남편이 흔들어 깨워서야 눈을 뜨니 어느새 방은 전등이 켜져있다.

“당신 얼른 이것 마셔. 식으면 못 마셔.”

눈도 바로 뜨지 못하는 내게 남편은 컵에 든 것을 내민다.

“이거 독이 든 거 아니야?”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아직도 남은 화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래. 독약이야. 처녀장가를 가야 하는 마지막 기회잖아?”

암진단을 받고 나서 남편은 수많은 비방들을 만들어서 주면서도 한번도 병에 효험이 좋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래. 내가 빨리 죽어야 처녀장가인지 귀신장가인지 가지.”

남편의 손에서 컵을 받아보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굽까지 보이게 마시고 나니 그제야 입안 가득 비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욱~”

오장이 다 뒤틀리는 느낌이다. 남편은 그런 내게 생수를 주고는 다시 대야를 내밀면서 입가심을 하라고 한다. 양치질을 몇번 하고 생수를 마셔도 구역질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좀더 누워있어. 거부기를 보고 올게.”

침실을 나가는 남편의 뒤모습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또 쏟아진다.

회갑도 지났으니 이젠 성 쌓고 남은 돌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가? 저런 인간을 남편이라고 믿고 수십년을 함께 살았다는 것이 억울하다.

“울어도 이쁘게 울라고 했지?”

언제 들어왔는지 남편이 지켜보고 있다.

오늘은 남편의 롱담도 내게는 썰렁하다.

“그래. 울어도 이쁜 년 찾아가.”

“응. 걱정마. 근데 이쁜 년이건 미운 년이건 밥부터 먹자.”

밥? 점심을 먹은 기억도 없지만 배는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천근같은 몸으로 주방에 나오니 식탁에는 저녁상이 갖춰져있다.

“이건 뭐야?”

“응. 보신탕. 거부기보신탕이야.”

남비의 두껑을 열려던 손이 멈춘다.

거부기보신탕?

“십년 넘는 거부기의 피가 몸에 좋다고 해서… 오늘에야 보신탕에 넣을 약재를 구했어.”

거부기? 피?

욱~

  나는 마침내 구토를 한다. 오장륙부가 아닌 령혼의 깊은 곳에서 살아 숨쉬던 내 마음의 오물들을 토해냈다. 그러는 내 머리속으로 거부기 한마리가 미꾸라지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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