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념의 상징, 환각의 능동적 가시화—박장dd>을 어루만지며□ 김현순

2022-08-11 10:03:00

위챗시대의 거품에 떠있는 통속적 직설시와는 달리 은은한 선률의 흐름 속에서 꺼질 줄 모르는 별빛 같은 시 한수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드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확 끌어당기는 시가 있었으니 그 시가 바로 조선족 중견시인 박장길의 <풀>이였다.

박장길 시인은 초년부터 시의 꿈을 간직하고 평생을 시와 쓰름하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모질음 쓰는 정직한 시인이다.

살면서 부단히 자신의 화려한 과거에 대한 초탈의식으로 이차원(異次元)의 시세계를 열어온 박장길 시인은 환각의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  스토리와 화폭과 음색의 조화로써 복합상징의 정감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과 지구상 복잡한 생명체들이 우연히 생겨나서 진화를 거듭하며 종(種)을 산생시킨다는 설과 상관없이 세상은 그냥 존재 그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다.

인간이 미처 의식하지 못했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세상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분명 있다는 론쟁의 제반 분야마저 통털어 세상 구성의 기본요소는 단 한가지, 복합이라는 리치에 적용되고 있다.

복합구성의 기본법칙, 이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년~1995), 피에르 펠릭스 가타리(1930년~1992)가 <천개의 고원>에서 수목 이분법으로 주장하는 이좀의 원칙에도 언급돼 있다.

세상만물은 서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세상이라는 하나의 큰 그릇에 담겨 있으며 세상밖 또 수많은 세상들은 다른 큰 세상의 그릇에 담겨 있다. 이렇게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복합구성은 서로 유기적 조화를 이루면서 세상을 구축해 간다.

이러한 리치는 거시적인 면에로 무한대로 뻗어 나가지만 미시적인 면에로도 무한대로 연장선을 긋는다.

또 사람의 머리는 눈, 귀, 코, 입...으로 구성되며 몸뚱이는 오장륙부로 구성된다. 현미경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세포도 세포막, 세포질, 세포핵으로 구성된다.

더 세분하면 세분할수록 무한대의 그 조직구성은 수많은 물체로 복합구성을 이룬다는 것을 과학은 상식적으로 인간에게 답을 펼쳐보이고 있다.

독일태생으로서 미국의 리론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량자물리>에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물체이며 그 물체들은 저마끔 동떨어진 독립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들은 조화 속에서 하나의 정체를 이루며 그 정체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박장길 시인의 시는 바로 독자적 상태의 이미지들을 하나의 정감선에 의하여 선률의 흐름에 따라 질서를 이룩해낸 것이 특색이라고 할수 있다. 하기에 그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은 내공의 묘미에 감탄하게 되며 가슴에 맞혀오는 끈끈한 정서의 찬란함에 수긍이 가게 되는 것이다.


□ 박장길


흙속에서 나왔기에

흙냄새가 나서 좋다 그보다

죽은 사람과 살다가 와서

반가운 풀이다

아버지 명복하고 계시겠지


봄이면 아버지의 심부름 오는 풀

가을이면 나의 심부름 가는 풀

지금 이 시각도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으리


내가 잡고

사바세계를 건너가는 푸른 끈이

이승 저승 륜회하며

폭풍에도 끊어지지 않는 푸른 끈이


푸른 피줄로 뻗어 들어 와서

땅의 기운이 도는 온 몸을

살이 돋는 땅에 엎드려 등으로 본다

겨울을 지나며 허기져 목이 긴 새의 눈이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의 눈빛!


슬픔을 유산으로 남기시고

세상을 감아버린 아버지에게

전해다오 풀에 얼굴을 대고 속삭인다


있음이고 없음이며 또한

그것을 넘어서 있는 아버지의 죽음은 비싸다

목구멍을 울리며 우는 비둘기가

내 안에 날아 들어와 앉아있다


한수의 시에서의 빛나는 내함의 근원은 그것이 담고있는 사상에 있다. 그 사상은 리념을 통해 세상에 감동을 주며 표현의 독특한 기법에 의하여 아름다운 자극을 생성하게 된다.

박장길 시인의 대표작 <풀> 한수에 깃든 그 오묘함을 과연 어떠한 것일가.

이 시에서의 핵은 ‘아버지’에 있다. 아버지와 풀, 풀은 아버지이다. 풀처럼 소박하게 살다가 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넋은 풀의 냄새로 눈빛으로 또한 풀의 넋으로 세상과 공존하며 “내안에 날아 들어와”, “앉아있는”, “비둘기”로 “목구멍을 울린다.”

거룩한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사념(思念)에 대한 축도에 거폭의 정감세계를 담고 있는 내함의 경지가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멈추지 못하고 거듭 마음에 아로새기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내함이라도 그것에 대한 표현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로의 승화불능 내지 큰 손색을 주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예술은 표현의 예술이라 일컫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시인은 ‘언어연금술사’의 사명으로 언어의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새로운 가상세계을 꽃피워야 하는 것이다.

이 시의 내함이 담고 있는 사상은 주변에도 흔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내함의 사상을 언어를 통한 개성적 표현기법으로 이룩해내었기에 세상의 절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 이 시에서 이념의 직설이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시의 리념을 간추려 옮겨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흙냄새가 나서 좋다

반가운 풀이다

풀, 풀… 지금 이 시각도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으리


내가 잡고

가는 푸른 끈이

끊어지지 않는 푸른 끈이


온 몸을

등으로 본다

새의 눈이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의 눈빛!


세상을 감아버린 아버지에게

전해다오 풀에 얼굴을 대고 속삭인다


아버지의 죽음은 비싸다

비둘기가

내 안에 날아 들어와 앉아있다


여기서 시인은 어떻게 직설을 이미지로 표현했을가.

“흙냄새가 나서 좋다”는 지극히 생활용어적인 직설이지만 화자는 “흙속에서 나왔기에/ 흙냄새가 난다”라는 론리적 이미지표현으로 변신시켜 놓았다. 여기에서의 풀은 “흙속에서 나오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흙속에서 나왔기에”라는 논리적 표현으로 둔갑됐기에 그로부터 상징의 대문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과 살다가 와서” 라는 표현도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특효를 나타내고 있다.

풀, 풀은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즉 아버지와 나를 만나게 하는 중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풀이건만 화자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화자만의 정감팽창이 낳은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풀은 마치 심부름군처럼 나와 아버지 사이를 전전하며 계절노래를 파랗게 부르는 사신으로 돼있다.

“푸른 피줄로 뻗어 들어 와서/ …/ 땅에 엎드려 등으로 본다”는 표현은 가시화된 능동적 표현이다. 정적인 것을 능동적인 것으로 탈피시키는 것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어(Voltaire,1694.11.21-1778.05.3: 원명: 프랑스와 마리 아로애)의 ‘생명의 운동’ 법칙에 따른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구구절절 그냥 생활용 직설이 아닌, 환상과 환각에 립각한 해설식 표현은 상징의 높이와 깊이와 너비를 더해주고 있다.


새의 눈이

내려다보고 있는...


이런 직설의 표현을 화자는 다음과 같이 환각과 환상의 나래를 펼쳐 탈바꿈시키고 있다.


겨울을 지나며 허기져 목이 긴 새의 눈이

내려다보고 있는…


여기에서 새는 목이 긴 새이다. 왜 목이 길어졌는가. “겨울을 지나며 허기져” 있기 때문이다. 해설은 해설이되 그냥 직설의 해설이 아니라 환각적 해설인 것이다. 환각적 이미지로 해설을 시도했기에 당연 상징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상징의 심도와 높이와 너비와 역도는 화자가 이미지조합을 통하여 펼쳐 보이는 경지의 여하에 달려있게 된다.

“슬픔을 유산으로 남기시고/ 눈 감아버린 아버지”의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그것을 느껴보는 아들의 마음은 찢어지고 미어질 것이다. 그런 정감의 표현은 “풀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는” 화자의 가시화된 움직음으로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제 이 시에서 각이한 이미지들 련결고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어쩌는 풀이, 어쩌는 풀이, 어쩌는 끈이 어쩌는 끈이, 어쩌고 있다. 어쩌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결구는 필연코 쿵짝 쿵짝 쿵쿵짝짝, 쿵짜작 쿵짝...과 같은 리듬을 조성하여 선율의 흐름을 이룩해낸다. 하기에 독자들 가슴에 커다란 서정의 율동과 돌풍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더우기 이 시에서 딱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시행조직에서의 파격적 조합이라는 것이다. 시구에 담긴 내연은 변함없으나 그것의 외연적 구도를 달리 함에 따라 시각적 감흥이 새롭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통한 정서파동의 질서에 큰 변화가 일어나 뜻밖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가배로 생성시켜주는 것이다.


흙냄새가 나서 좋다 그보다

죽은 사람과 살다가 와서

반가운 풀이다


이 부분에서 첫행의 <그보다>는 관습적 상식으로는 다음과 같이 아래 행에 붙여져야 할 것이다.


흙냄새가 나서 좋다

그보다 죽은 사람과 살다가 와서

반가운 풀이다


하지만 화자는 굳이 <그보다>라는 대목을 첫행에 가져다 붙였다. 그럼으로 하여 이 시의 내함포착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나 독자들 가슴에 일어나는 정서의 멋과 맛은 판이하게 몇갑절의 자극을 불러일으키면서 오히려 좋은 효과를 놀랍게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란 같은 내함의 표현에서도 파격적 생신성을 기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그 생명력의 빛남을 오래오래 보전할수 있다.

오늘날 열린 글로벌시대는 다차원, 다원화시대이다.

시문학은 더는 낡은 터에서 이팝 먹던 의식으로 도식화된 서정의 모식에서 옷 갈아입기만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무조건 새롭게, 무조건 자극을, 그 작극은 무조건 아름답게 펼쳐야 할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사명은 부단히 언어를 통한 새로운 경지의 가상현실을 이미지로 세상에 펼쳐보여야 하는것이다.

  나날이 신생을 꿈꾸는 박장길 시인의 대표시 <풀>에 대하여 공감하면서 리념의 감각이미지 변형을 실행한 박장길 시인에게 허리 굽혀 박수갈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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