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백 (외 3수) □ 백진숙

2022-09-08 21:07:42

추석날 빈의관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움켜잡았다

령혼의 빛이였고 탑이셨던 아버지

밀물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하얀 그리움


-나한테 그려봐


넓은 가슴 내밀며

날개 퍼득이며 달려와

다소곳이 내려앉는 하늘

그림처럼 펼쳐진 푸른 여백 한장


그 여백에 그리움 적어넣었다

추억 하나에 그리움 하나

추억 둘에 그리움 둘

추억 열에 그리움 백 천 만


허나 여백 한장에

뚝뚝 떨어지는 이 그리움을

어찌 다 그려넣을 수 있으랴

붓 들고 오열하는 나


여백아

추석이면 내 하얀 그리움을

너한테 걸어놓고 가슴깊이 아버지를

꺼이꺼이 울어본다.



추석달


아버지가 떠나가고 안 계시는 지금

아무리 쳐다보아도

반달 아니 이지러진 쪼각달로

떠있는 저 추석달


숨은 반달과 쪼각달은

아픔이요 그리움인가


이 아픔과 그리움 찢어

다시 널 빚는다면

달아

너 다시 둥근달로 돌아올 수 있느냐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 무엇으로 채우랴

아무리 둥글어도 내 맘속에 언제나

반달로 쪼각달로 남아있는 추석달아


눈물과 설음의 추석달

아픔과 그리움의 추석달이여.



항아리


베란다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엄마가 두고 간 금 간 항아리


된장 간장을 더는 담을 수 없게 되자

자식들이 보낸 편지 한장이라도 빠질세라

차곡차곡 보관하던 보물항아리


엄마가 보고 싶어 뚜껑을 열면

아 나만이 맡을 수 있는 엄마 냄새

그만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하나같이 그리움 토해내는

항아리 속 편지들

자기도 보고 싶다는 듯

우웅우웅 울음 토해내는 항아리


항아리 속에는

엄마의 말씀들이 가득차있다

엄마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의 사랑이 넘쳐난다

자식들 걱정에 마음 편한 날 없었던 엄마

온통 엄마 그림자 뿐이여서

두 눈 꼭 감아버린다


엄마의 세월이

주저리 주저리 풀어놓는 옛이야기

뚤렁뚤렁 눈물 떨구며

그 이야기들을 주어

세월의 숲에 고이 걸어놓는다.



형 제


오빠

형제들 모두가 쳐다보는 높은 별

기댈 수 있는 기둥


일찍 조식의 칠보시 읽어주며

형제는 수족 같으니

흩어지지 말고 하나로 되자

늘 얘기하던 오빠

부모님 한쪽 팔 되여

힘든 세월 용케도 넘어오더니


철없는 사춘기 때

아버지 따라 함께 넘어진 오빠

아버지는 다시 일어섰는데

오빠는 왜 일어 못 나고

그렇게 슬프게 살다가 가야만 했나


새가 된 오빠가 하늘 높이 올라가던 날

내 갈비뼈 하나가 툭

끊어져나가는 소리를 보았다


형제 하나하나가 모두 내 몸에 붙어있는

소중한 뼈들이고 아픈 살점임을

오빠를 잃고서야 알게 되였다


끊어진 갈비뼈 붙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 아픔

오늘도 내 가슴 허비는

  갈비뼈의 푸른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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