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사건□ 김명숙

2022-09-23 10:22:01

말똥이 구르는 것을 보고도 깔깔대던 시절과 “안녕”을 고한 지가 이슥하다. 대신 매사에 신중해지면서 작은 일에서도 감동이나 감수를 진하게 받군 하는데 이는 년륜이 짙어간 흔적이니 불가피한 일인 것 같다.

지난해 이맘때쯤 나는 처음으로 작가대표대회에 참석하게 되였다. 오랜 문인들에게는 흔히 차례지는 기회일지 몰라도 나이 50 고개를 넘어서야 문학인 행렬에 가담한 늦깎이가 대표로 뽑힐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마음은 전에 없이 설레였다. 2박3일 동안 다 함께 호텔에 묵으면서 나는 평소 많이 숭배하던 문인들과 적지 않은 교류를 가졌고 두터운 정분도 쌓았으며 우연하게 재미나는 에피소드도 엮게 되였다.

대회의 마지막 날, 오전 행사가 끝나자 우리는 드디여 불편한 한복을 벗어버리고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간 휴식을 취한 후 서둘러 회장으로 들어갈 때였다. 오후 첫 행사로 강단에 올라 청년문학상 작품평을 해야 할 H작가님의 신발뒤축을 누군가 실수로 밟아놓는 바람에 발 뒤부분을 감쌌던 가느다란 샌들끈이 그만 동강이 나고 말았다. 고급스럽고 품위 있던 신발이 졸지에 볼품없는 끌신으로 전락해버렸다. 고장난 신발은 수리부에 맡기면 얼마든지 흔적도 없이 깔금하게 원상복구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긴박한 시간이였다. 맨발로 강단에 오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끈 떨어진 신발을 질질 끌고 볼품사납게 나설 수도 없는 일이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다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였지만 누구도 신발을 여벌로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라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했다. 회의시간은 긴박하게 다가오고 H작가님의 안달아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나의 신발을 벗었다.

“우선 제 신발을 신고 들어가세요.”

“아니, 그럼 김선생은?”

“저한테 방법이 있으니 걱정 마시고 얼른 회의장으로 들어가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한테 별다른 방법이 있은 건 아니였다. 다만 큰 행사에서 연설을 해야 할 분이신지라 무조건 회의장에 들여보내야 한다는 일념 뿐이였다. 대회 시작이 곧 눈앞이라 H작가님은 무지 미안해하시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신발을 바꿔신고  회의장에 들어갔고 나는 H작가님의 끈 떨어진 신발을 끌고 호텔로 돌아왔다.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눈에 띄는 건 호텔에서 내여준 일회용 끌신 뿐이였다. 급한 김에 발을 밀어넣긴 했지만 도저히 회의장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나 혼자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닌지?  얼마나 기대하고 온 회의인데…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나만 락오자로 되는 것 같아  당황하기까지 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현장에 같이 있었던 일행 몇몇이 들어왔다. 여럿은 고장이 난 신발을 살펴보면서 손을 써보려고 했지만 전혀 대책이 서지 않았다. 바느실이나 하다못해 비닐끈이라도 있었으면 대충 손을 써보련만 호텔방이라 지푸라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훈춘 P선배가 갑자기 기적이라도 발견한 듯 손벽을 탁 쳤다.

“방법이 있어요. 코신!”

그리고는 부랴부랴 자기 짐을 풀더니 한복에 맞춰 신었던 코신을 꺼내놓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격에 맞든 안맞든 맨발바람으로 대회에 들어가기보다는 백배 나은 선택이였다. 나는 얼른 코신에 발을 밀어넣었다. 다행히 발에 꼭 맞았다. 마치 원래부터 내 신발이였던 것처럼.

“참, 희한하게도 잘 어울리네.”

훈춘 P선배의 말에 여럿은 동감이라는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톡 불거진 동글동글한 보라빛 코날은 내 웃몸에 걸친 가디건과 신통히도 색상이 어울렸다. 우리 일행은 드디여 어두운 턴넬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회의장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트에 올랐다. 다행이였다. 금방까지 불안하던 마음이 차츰 풀리면서 차분해졌다.

예전에 우리 민족 녀성들은 코신을 즐겨 신었고 평소에도 코신바람으로 동네나들이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전통복장인 한복에만 세트로 맞추는 것이 상식처럼 되였다. 그날 엘리베이트에는 우리 일행 뿐이 아니였기에 나는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였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대비하여 나는 선수를 쳤다.

“저의 코신 이쁘죠?”

여러 시선들이 내 신발에 쏠렸다. 엘리베이트 안은 삽시에 들끓었고 아주 짧은 순간이였지만 재미나는 화제들이 마구 쏟아졌다.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요. 참 멋쟁이네요.”

한 젊은 작가분의 ‘덕담’ 뒤에 년세가 지긋한 로작가님도 한몫 끼이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작은 보라빛 뿌리(보라색 코신)가 하얀 아지(하얀 바지)를 타고 올라 이쁜 보라꽃(보라색 가디건)을 활짝 피웠네. 하하…”

나이 지긋한 작가님의 기발한 상상에 다들 놀라워하며 탄복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가 둘로 나뉘고, 사물에는 안팎이 있듯이 오가는 대화들은 모두 일색만은 아니였다.

“코신에 바지라? 참, 전대미문의 사건이네.”

평소 인상이 퍼그나 인자하던 한 작가분의 말씀이였다. 표정으로 보나 어투를 보나 분명 우스개였는데 나는 갑자기 벌침에 톡 쏘인 기분이 들면서 졸지에 의상문화에 숙맥인 촌바우가 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나의 잠재의식 속에도 내 차림새가 떳떳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전대미문’이란 말에 순간적으로 겸연쩍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애써 스스로에게 긍지를 부여했다. 내 신발이 이번 대회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는가. 비록 격에 맞지 않은 ‘코신’이지만 맨발바람이였던 나를 대회에 참가하게 해준 축복의 신발이 아닌가.

그날 에피소드는 대회 페막과 함께 내 기억에서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였다. 마치 겨드랑이에 끼인 벼겨마냥 줄곧 나를 착잡하게 했다. 사실 그날은 평소 내가 숭배하던 유명인사들과 함께 하는 엄엄한 행사였기에 나로서는 여느때보다 고민하면서 옷과 신발을 선택했고 나름 빈틈없이 가꾸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양복에 코신’이라는 격에 맞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으니 혹 남의 웃음거리로 되지 않았을가 하는 불안감을 종시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얼굴은 내내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웃을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큰일 아닌 아주 사소한 일이다. 그냥 툭 털고 웃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잊혀지지 않을가? 왜서 기어이 글에 옮기려 할가? 거기에는 아마도 이런 아쉬움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큰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이 격에 맞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있다면 왜냐고 그 리유를 단 한번이라도 물어봐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설명할 기회라도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아마 나의 ‘전대미문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일을 하고도 웃음거리가 되여버린 듯한 기분은 오랜 시간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울러 어떤 상황에서든 자초지종을 묻지 않고 단정부터 짓는 것은 타인에게 아픔이나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깊이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모두가 문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도리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날 나에게 덕담을 해준 사람들은 과연 복장문화에 견식이 없어서였을가. 절대 아니다. 그들은 그날 긴박했던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신발을 내여주고 자신이 오히려 난감한 처지가 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아마 그날 나는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방에 혼자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슬프고 외로운 일이다. 아마 그런 일이 진짜로 있었더라면 나는 평생 그날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코신을 내여주어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준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 일을 겪은 후 나는 무슨 일에서나 급급히 판단하고 단정짓기를 거부했다. 혹 타인의 속사정을 바로 재지도 뚫지도 못한 채 거치른 언행으로 누군가에게 난처함이나 불편함을 가져다주지 않았는지? 계속 자신을 반문하군 했다. 늘 높은 곳만 바라보며 앞뒤를 견줄 새 없이 물덤벙술범덩 뛰여야 했던 시간들… 늦게나마 깨달았다. 가야 할 길이 급하고 힘들더라도 잠간잠간 주위를 돌아보면서 타인의 고충과 아픔을  헤아려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가를.

‘전대미문’의 사건은 사소한 일이지만 우리에게 진정 타인을 얼마나 리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장난으로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눈 뜨면 놀라운 변화를 보이는 세상에서 인간은 더불어 숙성되고 령리해지고 있다. 세상만물은 속성이 제마끔이니 생긴 그대로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해서 무턱대고 우쭐대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좀 모자라고 소외되는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가면서 마음이 큰 인간으로 성숙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코로나로 인하여 만남이 그립고 불편한 시기 가끔 혹은 요행 만나서 부질없이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기보다는 듣기 좋은 덕담으로 삶을 좀 더 편안하게 좀 더 평화롭게 그리고 더 윤택이 흐르게 할 수 없을가?

말 한마디가 천금을 산다고 어차피 관심을 쏟을 바엔 상대의 속사정을 잠간만이라도 들여다보고 헤아려본다면 두터운 면사포가 얄포름한 잠자리 날개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뱉어야 할 말이라면 잠간 심호흡을 하여 에너지와 조미료를 최대한 듬뿍 부어서 인정이 푹 배이도록 숙성시킨다면 주변은 하냥 봄날이고 세상은 더욱 살맛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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