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잔의 멋□ 오경희

2022-09-23 10:22:01

맥주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은  새각시 시절이였다.

당시만 해도 맥주는 금전적인 부담 없이 마실 만한 술이 아니였다. 그때 나는 식당영업을 하긴 했어도 캔맥주나 병맥주를 마음대로 마실 상황까지는 아니였다. 하루 영업이 끝날 때는 보통 밤 9시였다. 하루 일을 끝마치고 남편과 함께 마시는 생맥주, 아, 첫모금을 넘기는 순간부터 황홀경에 빠졌다면 거짓말일가! 그렇게 맛을 들인 맥주는 내 인생에 녹아들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친구를 알게 된 듯한 좋은 느낌으로 나는 인생에 맥주를 맞아들였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목이 컬컬하다. 어디선가 향긋한 맥주의 향이 가을 빛을 타고 내게로 건너오고 있다. 힘든 하루 끝에 맥주 한잔에 명태 한 꼬리는 나에게 있어서 마약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가. 맥주 한잔과 안주를 탐하는 그 시간, 그 락이 삶의 멋이 아닐가.

이제 바야흐로 맥주의 계절이 오는 것 같다. 하늘도 높아지고 바람도 슬렁슬렁 불어오는 초가을, 그냥 별 안주도 필요 없고 마주앉을 친구가 오지 않아도 그저 그냥 마셔도 좋을 계절이 왔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나는 가을을 맥주의 계절이라 한다.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장소나 책이나 친구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계절과 컵이 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를 마친 뒤에 마시는 맥주는 어떤 맛인가. 맥주병 뚜껑을 따고 머그컵(나는 머그컵을 맥주잔으로 사용한다.)에 부을 때 나는 쪼로록 소리,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부풀어오르는 거품, 이것만으로도 하루의 행복은 충분히 채워진다. 맥주에는 머그컵이 제격이다. 커피처럼 밑접시 우에 무던히 올려져 거품 가득 솟아오른 머그컵은 바라만 봐도 예술이고 랑만이다.

컵을 들고 이쪽저쪽 오가며 마시는 움직임 또한 맥주를 마시는 멋이 아닐가. 목을 타고 흘러드는 맥주의 청량감으로 인해 마음이 탁 틔며 테블에 잔을 내려놓는 순간 가슴에 뭉쳐있던 감정은 꽃밭으로 펼쳐진다. 아, 이 찰나의 행복을 위해 하루의 일정을 종종거리며 뛰여다녔구나.

서재에서 시집 한권 뽑아든다. 어느새 단풍잎이 시집에 끼워져있었다. 나는 시 몇수를 읽다 말고 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밑 가로수의 진초록을 이윽토록 바라본다. 이제 한달 푼히 지나면 단풍으로 물들 나무 잎사귀들을 바라본다. 이대로 이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병에 있는 맥주를 마저 머그컵에 붓는다. 거품이 부풀어오른 머그컵을 앞에 두고 보내는 이 호젓한 시간, 며칠 전 ‘청도맥주’점에서 친구와 잔을 부딪치며 끝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답잖은 롱담도 스스럼없고 서로의 고민도 터놓던 정경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확실히 맥주는 나에게 삶의 에너지를 준다.

나에게 설레임을 주고 솔직함과 관대함을 주며 친구들과의 우의를 쌓는 데도 윤활제역할을 하는 맥주는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한편의 오렌지향 나는 산문 같은 맥주의 맛을 어느 누가 마다하랴!

마음 맞는 친구끼리 모여앉아 마시면 우의의 불꽃이 일기도 하고 타오르기도 하며 가끔은 화산이 되기도 하는 멋있는 맥주가 아닌가. 또 혼자 마시는 은신맥주는 어떤가. 똑같은 매일의 반복 속에서 오는 무료함에서 나를 구해주는 친구 역시 맥주 아니던가. 현재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시점에서 맥주의 지분이 점점 넓혀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맥주 한잔에 인생을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교감할 수 있어 좋다. 모인 장소에서 누가 뭘 마실가 하면 “맥주로 하지요.”라고 선뜻 말하는 내가 밉지 않다. 맥주의 고유의 맛을 음미하고 그 맛으로부터 느껴지는 인생의 저편을 알고 싶은 걸가. 한잔의 맥주로 표현되는 삶의 희열을 같이 맛보자는 것이리라.

어제밤, 우연히 길에서 친구를 만났다. 서로의 얼굴을 잠간 바라보며 미소를 띠우다 아예 ‘백양나무생맥주’가게로 향했다. 아직도 초저녁인양 시간을 잊은 북대야시장 상인들은 난전에 상품을 널어놓은 대로이고 그런 가게들 가운데 유난히 시끌벅적한 곳 바로 ‘백양나무생맥주’ 가게이다. 우리 둘은 제일 큰 컵의 맥주를 받아놓고 서로의 안부도 생략한 채 첫모금을 넘겼다. 우리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컵을 부딪쳤다. 말이 필요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마주앉은 우리 둘, 친구의 눈빛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작은 전률을 느끼는 이것이 맥주 한잔의 진미가 아니겠는가.

“너희들도 여기 왔네.”

며칠 전에 오해로 인해 위챗에서 서로 얼굴을 붉혔던 친구 란희였다. 나는 그에게 맥주 한컵을 권했다. 언쟁이 오갔던 사이라도 맥주 앞에선 리해하고 용서하고 싶은 걸가. 나도 그도… 맥주의 그 사랑의 맛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만드는 것이리라. 세상은 그래서 살 만하고 친구들이 멋져보이고 예뻐보이는 것이리라. 이것이 맥주의 맛이리라!

맥주의 맛은 정의 맛이고 평화의 맛이고 랑만의 맛이다. 맥주 한잔을 나누며 대화로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 어우러지면서 모든 것이 조화롭기를 바라며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모여 “위하여!”를 웨치며 컵을 부딪치는 그 경쾌한 ‘음’을 사랑한다.

그대여! 맥주를 마시며 은은한 거품 속에 퍼지는 감춰져있던 사랑의 실체를 본 적 있는가? 맥주의 톡 쏘는 쌉싸름한 맛이 동서고금에서 일상의 동반자가 되고 사랑의 마음을 여는 열쇠로 된 것을 아는가?

기원전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이 남긴 석판 ‘푸른 기념비’에는 맥주제조법이 기록돼있다. 맥주는 인류문명과 함께 해온 오랜 술임에 틀림없다. 사실 난 맥주맛 같은 건 잘 모른다. 그냥 맥주가 가지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 부으면 일어나는 거품의 이미지가 좋을 뿐이다.

소주처럼 혼자 마신다 해도 외롭지 않고 와인처럼 멋 부리는 것도 아니여서 맥주는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지금은 내 인생 맥주소비 황금기이다. 언제까지 마실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계속 좋아할지도 모르면서 그저 좋아할 수 있을 때 마시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좋은 일 생겨도 마시고 스트레스 생겨도 마시고 친구를 만나도 마시고 축하할 일이 있어도 마시고… 그렇게 맥주를 곁에 두고 살아감이 가슴 벅차다.

맥주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가만 나는 너무 맥주를 좋아한다. 종종 캔맥주 사러 일부러 슈퍼마트를 갈 때엔 그렇게 신명 날 수가 없다.

한없이 느긋한 밤이 오면 나는 맥주 한잔에 행복하다. 그 고요, 평안, 휴식을 주는 한잔의 맥주는 온전하게 나 자신에게 빠져들어가 삶을 구체화시켜서 좋고 자연의 리치에 따라 살아가리라는 가슴을 적셔주어 좋으며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안도감과 청량감을 공급해주어 참으로 좋다.

이 밤도 내가 좋아하는 산문을 골라보면서 캔맥주 하나를 따서 마신다. 래일은 주말이여서 외손자가 학교를 안 가니 늦잠을 자도 좋은 주말이라는 느긋함을 맥주와 함께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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