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 리홍숙

2022-11-17 09:41:37

추석련휴에 맞춰 숙소에 갔던 아들애가 집으로 돌아오자 간만에 한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집안은 금새 훈훈한 분위기다. 주방에서 정리를 하던 내 오른손에는 어느새 좀 전에 아들애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우며 쥐여준 추석카드 한장이 들려있다.

“뭔데?”

남편은 아들이 건넨 카드가 많이 궁금한 눈치다. 내 귀가에는 큰아들 녀석이 하던 부탁이 줄곧 메아리처럼 울린다.

“제가 롱구 치러 나간 다음에 보세요. 그리고 군이는 제가 알아서 다독일게요.”

추석카드라고 이쁘게 도안을 오려붙인 그 카드에는 비뚤비뚤 씌어진 글씨체와 함께 앙증맞은 월병과 스마일 이모티콘이 붙어있었다. 문득 얼마 전에 있었던 일들이 뇌리에 떠오르며 가슴에 고이 묻어두었던 장면들이 눈앞에 영화필림처럼 신속히 스쳐지났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아들애의 방에서 우당탕탕 무언가가 떨어지는 요란한 기척과 함께 말다툼을 하는 듯한 어지러운 소리들이 문틈을 통해 스며나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에 저도 몰래 손에 식은 땀이 잔뜩 고이고 땀 한줄기가 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디다 대고 큰소리야. 이 녀석이. 용돈 달라고 할 때는 아빠, 필요한 거 사달라고 졸라댈 땐 아빠라고 잘 부르더니 이제는 상관하지 말라고?”

위엄있는 몇마디 호통 이후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편이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씨엉씨엉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아들녀석의 방은 여느때보다 조용했다. 애들한테 큰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대는 법을 전혀 모르던 남편이였기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느라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침실 문을 열고 보니 남편은 겉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벌렁 몸을 내던진 채 천정만 멀뚱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한테 손댔어?”

“그래, 너무 버릇이 없어 손 좀 댔다. 왜? 애비로서 그 정도도 못해?”

“아니, 잘 타이르면 될 걸 어느 때라고 손을 대고 그래? 우리 그때랑 지금 애들이 다르다는 걸 몰라?”

“계속 봐줬더니만 이제는 대꾸를 하다못해 상관하지 말라는 건방진 말이나 하고 말이야.”

남편의 얼굴에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애들이 클 때는 옆에 자주 있어주지 못하고 이제 사춘기에 들어서니 애들한테 아빠의 권위를 주장하면 애들이 어떤 느낌이 들겠어...”

“나라고 아빠 자리를 비우고 싶어서 그랬겠어? 먹고 살기 위한 일이였잖아...”

“기다려주자는 말은 누가 했었지? 과격하게 나오면 튕겨나가기 마련이라는 걸 알면서도...”

천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편은 투정 비슷한 내 말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는지 낮은 목소리로 부탁을 해왔다.

“뺨을 때렸어. 한번 내려가 봐. 괜찮은지.”

글썽이는 듯한 그 눈빛을 외면한 채 나는 이내 등을 돌리고 방을 나와버렸다. 사실 남편의 그 마음을 리해하지 못한 건 절대 아니였다. 코로나로 인해 무역업 자체가 사정이 어려워진 지금 이 상황에 신경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다가 주위 가족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기에도 벅찼을 것이고, 또 아들 둘까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대화가 줄어들자 점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였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아들방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녀석은 이불을 덮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다미 방에 죽은듯이 엎드려 있었다.

“자니?”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아들의 곁에 걸터 앉아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들, 아빠랑 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였잖아. 별일이 아닌데 목소리 높일 필요는 없지 않았어?”

아들이 하는 말을 대충 들어보니 게임을 하고 있을 때 퇴근한 아빠가 마침 집에 들어섰고, 쉬는 날만 되면 인터넷에 빠져 허송세월하지 말고 게임을 그만하라는 아빠의 잔소리에 대꾸 한마디 했다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아빠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해서 하는 잔소리라고 리해를 하고 대꾸하기보다 대화로 잘 풀어나가면 좋았잖아 그치. 그리고 게임은 조금씩 줄이고 먼저 해야 할 공부를 해놓고 하는게 어떨가...”

아들은 아들대로 아무 대답이 없다. 자기도 사춘기를 누비고 있는, 수염 난 남자라고 고민거리가 생기자 남자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눈치였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느라 집을 나와 홀로 아파트 정원을 거닐었다. 바깥은 어느새 가을의 냄새로 가득차 있다. 올해는 누구나 할것 없이 그야말로 힘든 한해인가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애교가 많고 아빠 뒤꽁무니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따라다니던 아들들이 청춘기에 들어서자 대꾸도 곧 잘 했다. 부모님 세대와 생각이 틀리다고 어필하는 것은 물론, 지금 배우는 지식도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지식이라며 세대차이를 호소하기도 했다. 십년 전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가 나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이 연해도시에서 남방행을 했던 남편, 성장기의 아들에게는 늘 비여있었던 아빠 자리였다. 그 사이에 한달에 한번씩 남방과 해변도시 사이를 오고 가며 애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무등 애를 써왔지만 짧게 함께 하는 시간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사태가 터지기 전에 드디여 거액의 빚을 다 갚고 남편은 남방쪽 회사를 접고 집 가까이에 회사를 이전했다. 십년 만에 들어와보니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 키를 훌쩍 넘어 있을 정도로 몰라보게 성장을 해 전처럼 그렇게 살갑지도, 아빠를 따르지도 않았다. 그 나이에 의례히 그러하 듯 친구들과 더 가깝게 지냈고 속심말도 친구들과 털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쌓아왔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흔들림에 남편은 아마도 마음이 많이 서글펐던 모양이다.

거액의 빚을 갚아야 했던 그 지독히도 외롭고 힘든 날이 살같이 지나가버렸던 것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상에 섰을 때는 겸손하고 제일 밑바닥 위치에 머물렀을 때는 감사로 채우고 겨울이 되면 이듬해 다시 태여나기 위해 모든 것을 비우는 나무처럼 기대는 비워야겠지.

사춘기 때 어떻게 보냈던가? 내가 사춘기였을 때에는 누가 나의 예민한 부분을 눈치 채고 어떻게 하라고 코치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홀로 된 엄마는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늘 멀리 가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 작은 예민함과 심경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싸줄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들애의 사춘기는 어떤 칼라일가? 몇달 전 아이 둘이 사춘기에 진입했고 나이가 몇살 손우인 남편은 갱년기에 진입해서 그걸 상대하느라 혼자만 죽을 지경이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갱년기에 진입하기만 해봐.  “그 때 너희들 다 죽었어. 그냥. ” 그렇게 이를 갈고 윽윽 벼르면서 어려운 그 상황을 겨우겨우 견디고 있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무지 반갑게 맞이 해야겠지.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고 했어. 빨리 성장하기를 바라면서도 그 과정을 겪기를 마냥 두려워하며 아이들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욕심 너무 부리지 말자. 애들한테도 시간을 좀 줘야할거 아니야. 그치?”

그렇게 진실한 위로를 건넸으면서도 마음속은 안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아빠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남편의 그 고단한 삶의 무게가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으니까...

이 나이에 남자는 나귀라고 하더라. 생계유지를 위한 ‘벽돌’을 안으면 마누라를 안을 수 없고 마누라만 안고 돌면 먹고살 여유가 없고, 우로는 로쇠해지는 부모님에 아래로는 나날이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 주위에서 내미는 손길에 일일이 다 응답을 하느라고 우리 집에 이 ‘나귀’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을 것이다.

고기파티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건가 여러 생각들을 굴리며 도어락에 비번을 넣고 집 문어구에 들어서는 순간, 놀랍게도 그 시각 마침 아들애의 방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아까 아빠가 때린거 많이 아팠지?”

방금 전까지 내가 던지는 물음에도 별말이 없이 엎드려 있던 아들애가 남편이 던진 한마디에 그만 어린애처럼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제가 잘못했어요... 아빠, 대꾸한 거 용서해주세요...”

“아빠가 미안해. 사춘기 많이 힘들겠지만 같이 잘 넘어가보자. 아빠가 힘이 돼줄게. 아빠는 우리 아들이 잘할 수 있을거라 믿어.”

훨씬 나긋나긋해진 남편의 목소리에 십년 묵은 체증이 가신 듯이 속이 후련했다. 현장에 없었던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산가족이 상봉한 듯한 정경이라서 차마 눈 뜨고 못봐줄 정경이였을 걸 아마도. 부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하며 우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왔다.

“우리 아들이 이젠 정말 어른이 되였나봐. 기특한데. 나 눈물이 나려고 해.”

아들이 건네준 카드를 훑어 본 뒤 목이 멘 남편의 말에 사색에서 깨어나 조심스레 손에 들었던 카드를 펼쳐보았다. 아들애의 추석카드에는 가족을 위로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듬뿍 담겨져있었다.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16년간 저를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미완성품이기에 단점이 아주 많습니다. 전에는 도망쳤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완성품이 되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사랑합니다. 추석에 비싼 밥 먹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그 카드 외에도 금방 사춘기에 진입한 동생을 형인 자신이 알아서 잘 다독일테니 그냥 믿어주라는 기특한 부언도 들어있었다.

‘비싼 밥’이 고기던가? 암, 그렇구 말구. 고기킬러들이 그 식성이 어디 간다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1등 공신은 고기 인줄 내가 잘 알지요.

  오늘 저녁에는 삼겹살을 푹 삶아낸 뒤 보쌈김치에 야채까지 곁들여 가족들의 허기진 배를 두둑이 채워줘야지... 그리고 가족간의 포용과 뜨거운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었다고, 그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참 바람직한 과정이였다고, 그렇게 성장기록카드에 적어놓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나는 신나게 앞치마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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