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소녀가 있었지요
춥고 가난했던 시절
그러나 꿈 많았던 시절의
소녀가 있었지요
삶은 너무나도 신비로운 거라고
봄을 알리는 진달래의 모습에도
감동을 느끼던 소녀
추위와 가난은
푸르싱싱한 그녀의 젊음을
이길 수가 없었지요
2
어느 새벽
고요속에 울려 퍼지던 푸른
종소리와 함께 소녀는 길을 떠났지요
삶이 그녀에게 선물한
한아름의 축복을 간직한 채
소녀는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지요
3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지요
어느 하루
그 옛날 소녀의 안부가 궁금하여
찾아 온 이가 있었지요
늘 기억 속에서 꽃잠을 자는
소녀가 그리워
세상 밖 세상에서 찾아 온 녀인
소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녀인
4
세상은 정말이지 크고 넓었지요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았지요
그 세상을 경험하는 사이
눈부신 봄날의 안개와
안개속에 꾼 악몽
언 땅에 스며든 장례가 소리 없이
다가 왔다 눈 녹듯 사라져 버렸지요
세상은 소녀의 순수했던 꿈과는 달랐지요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았지요
5
10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녀인과 함께 한 건
소녀에 대한 그리움 뿐 이였지요
허나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래일을 기약하는 법이 없었지요
작은 숲속 마을
고요속에 울려 퍼지던 종소리 여전한데
소녀는 보이지 않았지요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더 큰 세상 향해 길 떠난 소녀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지요
가을밤
밤 아닌 밤들을 지나
유혹의 빛들을 지나
가을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바람에 흐느끼는 단풍잎사이로
가을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안개의 숲을 지나
내 마음의 황야를 가로질러 끝내는
허공중에 날려 보낸 그리움의 새들…
사랑이란 이름으로 버려진 꿈길
내 삶의 가난한 저녁을 지나
가을밤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오늘밤은
천개의 등을 켜고
당신 오는 길 비춰 드리겠습니다
려행길
1
시베리아 한풍보다 매서운 눈초리를
가까운 인연들에게서 읽었지
풀 한포기 드문 오랑캐들의 고향
내가 이 땅의 이방인임을 깨닫게
하는 집을 그래서 나섰지
2
행운스럽게도
길 우의 바람과 해살
비옥한 풍광들은 나를 품어 주었지
순간처럼 스쳐 지나간 인연들은
내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따위
구차한 질문 같은건 하지 않았지
허나 세상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모습들, 저마다 지고 있는
무게 또한 그리도 닮아 있어
자주 주린 배를 달래고
서러움 견디며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 갔던
나는 가난한 려행자였지
3
어떤 밤은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별로 건너가
지울수 없는 상처를
별처럼 아름다운 화인(花印)을 찍기도 했었지
바람이 울부짖는 깜깜한 밤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여 겨우 반 목숨만
건지고 돌아 오기도 했었지
내 생애 한번 뿐이였던 봄날은
그리도 짧았었지
형체가 불분명한 안개속으로
사라져간 가슴 아픈 얼굴들도 있었지
믿고 의지하는 신과는 다른
목이 마른 강물에게
스러져 가는 잡초 앞에
머리 조아리고 세상이 외면하는
질문들을 묻고 또 물었지
4
긴 려정 내내 자주 꿈속에
운명을 달리 하고도
끈끈한 인연의 줄을 놓지 못하는
그들을 보기도 했었지
삭막하기만 한 내 삶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길 떠났으나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마저 모조리 내놓아야 했던
날들의 련속이였지
5
반평생의 려행길
그러나 그것이 내게 속한
청춘이였음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지
어쩌면 이제 다가오는 가을앞에
또다시 내게로 향한 미지의 길
길의 속삭임
길이 가리키는 곳
그것들에 귀 기울일 여유를
얻게 된 것도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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