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한줌씩
움켜쥐고 떨어지며
만물이 제자리로 향하는
가을이 또 삭발을 시작한다
세월이 남겨놓고 간
발자국을 주어들었다
지난 세월 끌어안고 둥글 말린
꿈의 껍질이여
땅을 말아 구르는 락엽에
나의 세월도 감겨
나의 앞을 굴러간다
손금만 굳어진 잎새
마지막 안깐힘 놓아버리고
내려온 한잎의 자존심이
가볍고 또 가볍다
바람이 락엽을 벗겨
가을이 뒹굴고 있다
가을을 거둔다
가을을 장례한다
지상의 허망을 깨닫고
세상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는다
한평생이 한토막의 꿈
타는 듯한 가을 냄새를 싣고
가슴 스치는 허허로운
바람이 소슬바람이
이마에 머문 해살을 지워버린다
가을이 쓸고 간 앙상한 가지
마른 바람소리 시리다
락엽을 몰고 가는 바람도
락엽 빛갈로 찢어져 조각났다
여름이 타버리고 떠나간
가지 끝에서 가을이 떨어지고
시린 하늘 마시며
허전허전한 걸음 가락을 잃었다
들판에서 종일
푸른 하늘을 퍼내리던 종달새가
하늘에 남긴 허공도
그 푸르던 혈기를 잃었다
바람의 바퀴를 돌리고 있는
한장의 나무잎처럼 지금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구르는 가을을 달리며
길을 당겨 멍석같이 말아
바퀴에 감는
저 차의 뒤바퀴가 고독하다.
네모난 그릇
ㅡ안도 영흥마을에서
산으로 사방에 울타리 두르고
그 산 뒤를 또 강물로 싸서
겹산수로 빚은 네모난 그릇
영원한 그릇에 담긴 흰 마을에
하루를 부리우고 이 몸 담겼다
어느새 맛있어지는 마음!
통풍, 승냥이에게 물렸다
엄지발가락마디를
꽉 물고
날카로운 이발 뼈속까지 박는다
굶주린 승냥이
꼬리까지 끼고 누워
죽을 맛을 즐긴다
타는 피빛 진통이
찌르릉 전기로 통하며
머리를 치고 올라와
죽지도 못한다
살지도 못한다
부르르 전률도 못하는 약자
피가 뛰는
극미한 진동에도
뼈를 긁는
이 승냥이를 잡을
총이, 인간에게 없단말인가!
엄마의 사랑은
나이가 들지 않아
아기는 엄마를 먹고
아기 속으로 들간 엄마는
아기에게 온 세상이다
팔만사천 땀구멍
다 열어 낳는 아기
목숨을 벌고 웃는 아기는
엄마의 자궁 속 우주에서
솟아난 금성이다
하루가 되면 하루 만큼
한달이 되면 한달 만큼
아기는 사랑스럽다
한달이 지난 뒤에는 또
한달이 지난 만큼 사랑스럽다
이것을 시름하고
저것을 걱정하며
근심이 마를새 없는 엄마는
녀성은 없고 모성만 있는
엄마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음식
매일 달라지기에
매일 봐도 즐거운 아기
통째로 귀엽귀만 하다
기지개 한번 켜고
불쑥 키가 크는
아기의 배고픔엔 죄가 없기에
욕망은 탓할 수 없다
아기의 손을 쥐여보면
가득 조여오는 생동 ㅡ
공중에 파종할 새들의 씨앗이
아기의 주먹 속에 들어있다
목숨 한송이 꿈 한채
뽀얀 봄을 차려놓고
맛있는 잠에 안겨 자라나는
아기의 머리맡에 찾아와
앉아있는 해빛은
아기의 손님이다
조그만 평화를 안고 아기는
조그맣게 잠들었지만
온 집안을 가만히 품고 있는
씨암탉같은 고요고요
평온한 쉼의 물결이 전해온다
해빛공양을 받고 있는
아기의 낮잠 같은 평화로 옷 입고
아기의 키만한 물음표에 빠진다
바람없는 바람에도
나붓기는 마음자락에
세태만상이 무겁다
언제까지나 어디까지나
륙천마디 어린
엄마의 사랑은 나이가 들지 않아
이 봄날, 하얀 겨울로 늙어도
자라고 있을 아기 ㅡ
쉼표처럼 곤히
잠을 잘 때에도
아기의 손을 쥐고
엄마의 시간을 다 내주는
엄마의 몸 속에는
엄마가 언녕 있었다
그 엄마를
아기가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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