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우에 꽃을 피웠다.
돌에 꽃이 피였다는 것이 아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속담은 그러지만 나는 속담을 현실로 바꾸는 그런 초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돌에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돌 우에 호접란을 붙여 키우고 그 호접란이 지금 꽃을 피운 것이다.
석부작을 만들기 전 먼저 선정한 것은 당연히 돌이였다. 돌은 산수경석으로, 그것도 쌍봉에 골짜기가 잘 패인 녀석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녀석은 강에 돌이 아닌 바다 돌, 해석이였다. 해석이니 염분을 바로 제거하지 않으면 식물이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돌을 맑은 물에 담그고 염분을 빼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번씩 2주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맑은 물을 갈아주었다. 2주가 지나자 돌을 꺼내여 베란다에 놓고 해빛에 일주일을 말렸다. 돌의 겉이 마르자 드라이기로 돌이 따끈따끈해 질 때까지 덥혀주고는 거기에 다시 애기들의 몸에 바르는 베이비 오일을 발라줬다. 오일을 바르고 닷새가 지나니 이번에는 다시 솥에 넣고 끓여서 베이비 오일을 모두 제거하고 다시 화장실로 직행했다.
돌은 다시 맑은 물에 담가지고 이틀에 한번씩 맑은 물을 바꾸고… 2주가 지나니 다시 해빛에 일주일을 말리고 드라이기로 굽고 애기들이 사용하는 베이비 오일을 바르고 또 삶고 화장실에 가고.
같은 방법이 아닌 같은 행위를 세번을 하니 3개월이나 지났지만 그대로 바로 식물을 붙일 수는 없었다. 해석이 속까지 마르자면 8개월은 말려야 한다는 것은 어설퍼도 수석인으로 살고 있으니 그만한 상식은 알고 있었다.
돌의 염분을 빼고 있는 동안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석부작을 만드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키우는 방식들을 공부해야 했다. 돌에 염분이 빠질 때쯤이 되니 눈과 귀 동냥으로 배웠으니 무당이라도 선무당이지만 그런대로 방석 깔고 푸닥거릴 정도의 흉내는 낼 자신이 생겼다.
석부작은 나무는 소나무가 보통이고 식물을 붙여도 원래 바위에서 잘 자라는 풍란이 다수였지만 나는 굳이 호접란을 선택했다.
호접란은 꽃대가 두개니 꽃대를 고정할 철사를 강력점착제로 돌에 고정하고 호접란을 돌 우에 붙여주었다. 호접란이 돌 우에 자리를 잘 잡아주고는 뿌리는 비단이끼를 사서 붙어주었다.
돌 우에 호접란을 붙였다고 매일 물만 주면 꽃을 피워주는 것은 아니였다. 화분이 아닌 돌 우에서 살아야 하는 호접란에게는 영양이 필요했다. 잎에 분사하는 영양제를 사서 이틀에 한번 잎에 분사해주고 뿌리에 주는 영양제는 사흘에 한번, 물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번 주는 것을 잊어도 잊어서도 안되는 일이였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아닌 세월이 흐르고 꽃대에서 꽃봉오리가 나오더니 어느 날 인가부터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을 한번 피우면 3개월을 피워주는 꽃이요, 일년생 식물이 아니라서 몇년이고 피워줄 꽃이니 기다림의 시간보다는 즐거움의 시간이 더 길다.
돌 우에서 이쁘게 웃어주는 꽃을 보고 있으려니 돌탑의 의미가 뭘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십대에서 오십대가 되던 날, 이제 문단에 입문하려는 초보들에게 나도 뭔가를 해줄게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단톡방을 만들어 몇 사람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었다. 그때 참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넌 그 지역에 탑이 될 것이다.”고 했었다. 그런데 내 말에 자기가 최고의 작가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보고 그냥 단톡방이란 것을 취소해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탑이란 돌 하나하나를 땅에서부터 열심히 쌓아가는 것이고 나도 탑이 아닌 그 탑을 만드는 것중에 하나의 돌멩이가 되여줄 수 있다는 의미였었다.
돌 우에 꽃 하나 피우려고 해도 그 긴 세월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데 정말 작가가 되는 것이 타인의 평가 한마디로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일가?
작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처음 글을 시작할 때 손에 책을 놓지 않고 단어 하나, 토 하나까지도 머리만이 아닌 가슴에까지 새겨가던 지난 세월이 떠오르면서 왠지 마음은 자꾸만 서글프고 씁쓸해지려고 하고 있다.
진정 탑의 의미는 돌 우에 꽃 한송이 피우는 것보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최고가 되여 빛을 뿌리는 것일가?
탑의 의미도 모르면서 탑을 두고 주절거린 내 자신이 더 초라해지고 있다. 이젠 탑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돌 우에 꽃을 피우면서 그 향을 가슴에 담으며 살아야 할 나이가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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