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과 퍼덕이는 날개
령혼 깊이 감추고
세월의 언덕에 웅크리고 앉아
비상을 꿈꾸는 푸른 새
온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욕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출구
그 구멍 열쇠를 움켜잡고
오직 직진만을 꿈꾸는 너
가엽다 놓아주면 넌 들말이 되여
온 광야를 질주하면서
하늘에다도 집 짓고
이 세상 모든 걸 삼키려 하거늘
네 탐욕과 허욕 불사르고
막 터져나오려는 분출구를
하나 둘 적당히 뚫어놓으면
삶의 원동력 되여 활활 타오르는 너
널 꽉 붙잡고 야망의 끈 잡아당기다가
천길벼랑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만경창파에 빠지기도 하면서
허위허위 살아온 지난 세월
지천명을 넘기고서야
환희의 함성과 함께
뜨거운 눈물 삼키며
내 령혼과 손잡고 어서오라 손짓하는
너를 문득 보아버렸다
얼싸 달려가 포옹한다
욕망아
고맙다 친구야.
모 래
눈 시리도록 하얗게 펼쳐진
우도(牛岛) 서빈백사장에서
너를 한줌 쥐여보았다
그 고운 빛에 심장은 금방 멎는 듯
한알의 모래로 부서지기까지
아프게 흘렀을 억겁의 세월
내 손에서 흘러내리는
삶의 저 작은 은빛 알갱이들
거짓과 위선 모두 던져버린 너
네가 있어 백사장이 있고
백사장이 있어 우도는 더 아름답거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흔들림에도
네 삶은 더 파랗게 묻어나
작고도 동글동글하여 모날 줄 모르는 넌
세월의 한켠에 조용히 비켜서서
자신을 숨기고 작은 몸짓 작은 웃음으로
늘 푸른 바다만을 노래한다
오늘도 머나먼 고향에서 나는
일출과 함께 푸른 영각소리 길게 뽑으며
바다와 뜨겁게 손잡는 우도를 본다
환희에 떠는 네 작고
하얀 목소리도 함께 듣는다.
병과의 대화
전엔 널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
힘들 땐 마구 욕하기도 하고
널 쫓아내려고 갖은 방법 다 썼다
심지어 어떤 땐 널 씹을 수 있는
이발이라도 있었으면
와작와작 씹어버리고 싶었다
젊은 날의 그해 여름부터
내 안방에 둥지 틀고 앉아
사각사각 뼈 갉아먹는 네 소리 들으며
잔인하다 그토록 이 갈며 미워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소리가
안깐힘 쓰며 무너지려는 나를 받쳐주는
네 신음소리로 들려와 울컥 눈물 삼켰다
평생 달갑게 지팡이로 살아온 너
세상 모두가 나를 버린다 해도
너만은 내 손잡고
인생의 험한 고개 함께 넘어갈 터
평생의 길동무 영원한 벗 너에게
달려가 가만히 속삭인다
친구야 함께 가자.
굴뚝과 감기
고독 아픔 상처 스트레스가
쓰레기로 쌓여 숨 막히는 날이면
마음에 세워놓는 굴뚝 하나
락엽 종이 나무로 둔갑하여
몸 갉아먹으며 못살게 굴던 이들을
비자루로 쓸어내여 불 지피면
금방 하얀 머리 풀어 헤치고
급급히 굴뚝으로 빠져 달아난다
허나 뱀으로 둔갑하여
두 발톱 세우고
마음 안방에 들어와 척 똬리를 튼 감기
너무 무거워
비자루로 쓸어낼 수 없다
물렁물렁하여 불로도 태울 수 없다
꽉 박은 발톱은 더구나 뽑아낼 수 없다
굴뚝은 뱀의 몸에 입 대고
한모금 한모금 독즙을 빨아낸다
드디여 헐렁한 껍질만 남은 뱀은
끝내 불태워져 굴뚝으로 도망간다
굴뚝과 감기
만나면 두 눈 부릅뜨고 싸우는 두 친구
허나 찌든 령혼과 마음 서로 세척해주고
깨달음을 주는 고마운 두 친구.
무화과
못생긴 그 사나이가 있었다
늘 손발이 돼주고 등불이 돼주면서도
사랑한다 말 한번 못하고
속으로 속으로만 사랑을 피운 너
떠날 때에야 말없이 다가와
소중한 가슴 몰래 보여줬을 때
네 가슴 한가득 피여있는 예쁜 꽃을,
나만을 위해 핀 무화과를 보았다
젖은 사랑 날개는 흐느끼고 있었다
숨긴 사랑 꽃 피우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만 울었을 너
너를 잃고서야
네가 진정 내 사랑임을 알게 되였다
오늘도 나를 울리는 무화과
아까울사
놓쳐버린 내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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