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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슬로를 엿본다

  • 2014-03-11 13:21:22

우리는 자기를 보존하는 견지에서라도 치타슬로의 운동으로부터 어떤 계발을 받아야 되지 않을가.아무튼 누군가가 이 전인미답의 신비한 사업에 도전한다면 필자는 열광하는 성원자로 되려 한다.

세간에서는 호의호식하며 잘 산다는 언설이 넘쳐난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육신의 어느 구석에도 간단없이 흘러드는 물과 공기에 유해물이 가득하고 먹거리에 독이 있고 토양도 오염되였다고 아우성이다.불가재생 자원의 소모에 가속이 붙고 돈이 된다면 전통과 문화 전부가 저쪽이란다.이상기후가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는데 <<아이는 버리고 태만 키우는>> 웃기는 작태들이 곤대짓하며 떵떵거리니 지긋한 포문(饱闻)에 귀가 뜨거워 요즘은 늘 치타슬로를 넘보게 된다.

치타슬로는 <<느리게 사는 도시>>라는 뜻으로서 영어에서 슬로시티라는 이딸리아어 표현이다. 여기 슬로시티는 <<전통과 문화를 보전하고 주민 중심의 생태주의를 견지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이다. 이는 1986년 패스트푸드(即席食)에 반기를 들고 첫걸음을 내디딘 슬로푸드(余裕食)의 철학을 지역 전체에 확대시킨 사회운동이다.

1999년 10월 이딸리아의 포시타노를 비롯한 네 개의 소도시의 시장들이 모여 현대적인 개발 대신 <<인간답게 사는 마을>>을 만들어 행복한 삶을 이뤄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란 의미를 부여한 <<치타슬로>>의 창립을 선언했다. 현재 16개 나라의 110여개 도시(혹은 지역)가 <<치타슬로 국제련맹>>의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 여기에 등록했는데 중국의 남경시고순현아계진도 포함됐다는 소문이다.

현대사회의 속도라는 가치관을 벗어나 느리게 사는 미학을 정착시키려는것이 바로 슬로시티의 발전리념이다. 그들은 오늘도 무한경쟁의 생산지상주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펼치고 있다.그들은 지역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토속적이며 독특한 맛과 멋을 자랑하는 음식의 진면목을 재조명하여 전래된 지역특성을 보존하며 전통적인 문화와 력사를 보전하고 발전시켜 후세에 전달하는것을 지고무상의 책무로 간주하고 있다.

치타슬로는 현대인이 추구하는 효률은 자연에 위반되며 생존균형을 위협하는 요소로서 치부한다. 더불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개연성을 가진 대규모적 경제활동과 사회적 통념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그 실현을 위하여 회원 도시는 인구 5만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의 가치기준이고 동양인의 관념에 반하는 마인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인증된 도시나 지역에서의 관광이나 산업은 특유의 브랜드로 인식되여 소득이 증대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다는 길보(吉报)가 전해오고 있다.

중국의 치타슬로가 성공모델이 될것인지 두고 볼일이다. 우선 유럽의 풍토에서 살아가는 <<신생아>>가 동양의 지리에서 보호벽이 세워질것인가가 의문스럽다. 이딸리아의 오르비에토는 900년 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로서 내부 전체에서 차량통제는 물론이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도 수백년전 마차길이 그대로 보호되여 있다. 그들은 또한 건물의 신축보다 기존건물의 보존에 상당히 집착한다. 우리가 이처럼 옛 모습을 지키려 한다면 제도적인 장치뿐만아닌 주민들이 용납할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좌우지간 불가재생 자원이 급감하고 자연과 전통이 파괴되고 인간이 이룩한 현대문명이 부메랑이 되여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현상이 가심화되며 염증(厌症)이 날로 심해진다. 어떤 리유를 들이대도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거나 력사를 외면하는 행동이 능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서 치타슬로가 내건 기치에 난해한 모순은 있더라도 귀가 솔깃하여 곁눈질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족사회가 위태롭다. 민족의 정체성과 기존의 환경 그리고 전통과 문화도 퇴색을 재촉하고 있다.이는 합법칙적 변화의 일면도 있지만 경제적락후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민족사회의 동시 발전을 외면한 원인도 있을것이다.우리는 자기를 보존하는 견지에서라도 치타슬로의 운동으로부터 어떤 계발을 받아야 되지 않을가.아무튼 누군가가 이 전인미답의 신비한 사업에 도전한다면 필자는 열광하는 성원자로 되려 한다.

과학적발전관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오늘이다.현대문명의 표지가 화려한 건물속에서 흥청망청 먹어대고 써대는것인지 다시 수지타산을 해보아야 한다. 행복한 생활이란 넘음이 넘치는 과소비일가 아니면 자원、환경과 전통을 애지중지하는 조금 빠듯한 살림일가? 이것을 덮어놓고 어느 어리석은 각주구검(刻舟求剑) 호고가(好古家)의 퇴행적 감정 기복이라고 몰아붙인다면 좀 억울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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