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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극복의 의미

신연희

  • 2014-12-03 08:18:30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플랜클린 루즈벨트는 그의 인생의 최절정기에 척수성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많은 사람들의 장애극복의 큰 사표(师表)로 되였다. 지금도 그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따라가야 할 고지이고 목표이다.

“국제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에 즈음해 “장애를 극복했다”는 말의 의미가 구경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리해를 가져본다.

필자의 외삼촌은 50 평생 두발로 당당하게 땅을 밟아보지 못한 지체장애인이다.

얼마전에 외삼촌이 쓴 작품의 추천서를 잡지사의 아는 선배에게 부탁한적이 있다.그는 그 짧은 추천서에 아무개는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을 썼다는 식으로 적었다. 외삼촌은 내 작품이 장애와 관련된것도 아니고 장애가 문학하는데 별 상관이 있는것이 아니기에 그런 문구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말은 “장애에 이렇게 민감한걸 보니 아직도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다”는것이였다.

이에 외삼촌은 “나는 장애를 전혀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다. 앞으로도 극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단다.

그렇다. 외삼촌은 평생 혼자힘으로 서보지 못했다. 목발을 짚지 않고는 보행도 불가능하다. 그런 그가 장애를 극복했다면 두발로 서야 하고 걸을수 있고 뛰여다녀야 하는게 아닐가?

장애는 결코 극복되는것이 아니다. 장애인차별이 아직 만연한, 바뀌지 않는 사회환경에서 장애극복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가?

어느 장애인이 인간승리를 실현했다는 문구를 적잖게 접했다. 이는 장애가 있어도 열심히 하면 인생역전을 할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가 아니면 극복을 하지 못하는 대다수에게 이중억압을 줄가?

장애인에 대한 극복의 환상은 그래서 대다수 소외된 장애인을 무능한,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는 기준이 되고만다. 누구는 저렇게 훌륭히 장애를 극복했는데 너는 뭐하느냐는 식의 손가락질을 받게 만든다. 어느 누가 장애를 훌훌 털고 자유롭게 살고싶지 않겠는가. 어느 누가 장애인으로 이 사회의 그늘에서 편견과 랭대를 받으며 살고싶겠는가. 그들의 장애는 결코 극복이라는 말로 절대 해결되는것이 아니다.

불굴의 의지와 집념으로 장애를 극복한 이 사람을 보라는 식으로는 장애인의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극복해야 할것은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할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무시, 동정, 랭대라고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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