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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정미소

□ 신연희

  • 2014-12-16 15:44:24

가을걷이가 끝난 시골마을에서는 벼나 밀 수확을 하면 의례 정미소로 모두 모였던 시절이 있다. 어린 시절을 쭉 시골에서 보낸 필자에게 정미소는 그야말로 “별세상”이였다. 쿵쿵쿵 힘차게 울리는 기계음으로 발밑이 저려옴에 신기해 했고 펑펑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하얀 햇쌀을 받으며 덩실덩실 춤추던 마을 할아버지 춤사위가 우습다 까르르 넘어가고, 코털까지 뽀얀 쌀겨먼지를 덮어쓴 우습깡스러운 방아간 아저씨의 모습에 또 한번 놀라고…

옛말에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만큼 방아간에는 먹을것이 많았나 보다.

마을마다 꼭 하나씩은 있었던 동네 정미소는 농부들의 사랑방이고 동네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소였다.

정미소 앞마당에 곡식을 가득 싫은 소수레들이 들어서고 검게 그을린 농부들이 담배 한대 물고 푸념하는 모습에서부터 좋은 가격에 환하게 웃는 모습… 이제는 추억으로 기억하고있을뿐이다.

그때 그시절 이야기지만 시골에서 정미소를 운영한다고 하면 마을 부자라고 할 정도로 잘 나갔다. 지금은 가동을 중단한 정미소들이 대부분이고 어느 사이엔가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풍경이 됐다. 그토록 귀한 쌀이 하얀 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방아간은 이미 추억속에서나마 겨우 자리잡고있다.

지금은 대형 도정공장이 들어서고 집집마다 자그마한 도정기계가 갖춰지면서 마을의 가장 큰 공장이였던 옛날 정미소는 립지가 없어지게 됐다. 특히 찧은지 오래된 쌀은 수분이 날아가 밥맛이 떨어지기때문에 대부분 시골집에서는 이제 집에서 먹을만큼의 쌀만 찧는다.

며칠전, 오래만에 찾은 고향 시골마을의 정미소는 바람구멍만 쑹쑹 난 페허로 남아있었다. 변화의 물결이 정미소만은 비켜가길 바랐는데 길게 늘어진 거미줄에서 세월의 흔적만 알수 있을뿐이다. 멍하니 쓰러져가는 정미소를 바라보노라니 뽀얀 쌀겨 먼지가 흩날리고 나무 송판에 통나무로 엮어 만든 방아틀에서 하얀 쌀이 쏟아지던 그시절의 모습이 너무도 또렷이 기억나 마음 한구석이 짠해옴을 금할수가 없다.

시골 남녀의 사랑을 키우는 물레방아간부터 두명의 장정이 손잡이를 잡고 돌려 시동을 거는 괴물처럼 생긴 발동기 방아간, 엔진으로 돌리던 엔진 방아간 그리고 지금의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현대식 방아간, 그러고 보니 방아간도 시대에 따라 많은 변천을 해왔다.

정미소는 그 시대의 고단했던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기때문에 추억의 실타래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 모든 시골마을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 이른바 마을 공동체문화의 출발점이였던 정미소, 모두의 기억속에 고스란히 담겨져있을 그 추억만은 세월이 흘러도 색바래지지 않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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