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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와 함께 보름달을 우러러

□ 김희관

  • 2015-03-04 15:36:04

청양의 해 정월대보름날이다. 해외동포들과 함께 보름달을 우러러 보고싶다. 일전에 필자는 한국 <련합뉴스>에서 재한 중국조선족동포 70만시대가 열렸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수많은 옛말이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1986년 4월초, 필자는 처음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남조선(그때는그렇게불렀다)을 방문하게 되였다. 어머님의 고향은 한국 경상북도 청송군 덕계동이다. 그때는 중국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지않았기에 직항로가 없어서 반드시 홍콩을 경유, 항공편을 바꾸어야 했다. 하기에 우선 연길에서 기차로 북경에 가서 투숙을 했다. 그리고 영어를 아는 친구의 안내하에 북경주재 영국대사관을 방문, 홍콩 여행비자를 받는데 3일이 걸렸다. 홍콩에 도착해서 지정된 호텔에 투숙했는데 국제려행사 직원은 우리에게 남조선 대한항공편을 리용하는데는 아직 며칠이 수요되기에 호텔에서 쉬면서 거리구경이나 하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어머님을 모시고 거리에 나가 산책을 하는데 출근하는 사람들이 유리창문에서 돈을 슬적슬적 뽑아간다. 어머님이 놀라신다. 다행히도 필자가 작년에 연변예술학교예술단을 이끌고 미국방문공연을 하면서 한달간 미국에 체류하는 기간 셀프서비스뱅크를 본적이 있어서 어머님에게 설명해 드렸더니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는가고 놀라하셨다. 며칠후 어머님을 모시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안내방송에서 필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해외동포의 고국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해서 마음속에서 야릇한 감정이 북받쳤다.

어머님은 48년만에 고향 덕계동을 찾았다. 1938년 겨울, 일제의 집단이민 바람에 휘말려 어머님은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흑룡강성 상지로 이민을 오신후 줄곧 고향을 찾을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고향에 도착하신 어머님은 친척과 친구들을 만날때마다 서로 부등켜안고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수없는 고성을 지르면서 고향말씨로 <잘 있었노?> <어디 살다 이재 왔노?>를 련발하신다. 할머니가 다 되신 옛친구들은 어머님을 이끌고 냇가에 나가 물장구를 치면서 함께 향수를 달랬다.

1990년봄, 한국 정부는 조선족동포들의 한국 방문을 독려하기 위해 무릇 한국에 살고있는 친척의 초청장이면 한국 방문비자를 내주었다. 그래서 조선족들의 한국 방문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특히 1993년여름, 한국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연변에서 400여명이 대전엑스포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해 엑스포를 견학했고 그중 대부분이 한국에 남아서 로무를 시작하면서 <한국불법체류>, <중약보따리장수>라는 사회현상이 뚜렸하게 나타났다. 그때부터 한국의 서울역과 구로구일대에서는 조선족들을 흔히 만날수 있었다.

1992년 여름, 중국과 한국이 수교하면서 중국 조선족의 한국 방문은 순풍을 타면서 점차 잘 진행되는듯 했다. 그러다가 1997년경, 한국의 IMF경제위기라는 사회적 배경하에 한국 방문을 원하는 조선족동포들에게는 커다란 위기가 들이닦쳤다. 그것은 바로 나뿐 심보를 가진 극소수 한국인과 조선족브로커들의 사기행각으로 하여 동북3성에서 적어도 몇만명이 기업퇴직금과 집을 판 돈까지 모두 사기당하고 거리에 나앉게된것이다. 당시 저희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하여 한국 정부에서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게 되였고 즉시 강력한 조치를 대여 피해받은 모든 조선족동포들이 순차적으로 한국에 입국하게 조치해 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서는 꾸준히 중국 조선족들의 한국 방문에 관한 정책을 개발하여 왔고 중국당국에서도 상응한 대책으로 지지해준 결과 오늘날에는 재한 조선족동포 70만시대를 맞이했다. 지금은 우리동포들이 영주권을 받는 시대가 되였다.

<재한조선족동포 70만시대>는 무었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중국에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이미 <해외동포>가 된것이다. 그래서 말이 난김에 <해외동포>를 더 찾아보았다. 지금 중국 조선족은 한국뿐아니라 일본, 미국, 영국, 유럽, 호주와 멀리는 남아프리카까지 적어도 80여나라와 지역에서 살고있다고 하는데 그들을 합계하면 또 30만명이 족히 된다고한다. 그야말로 우리의 <해외동포>는 100만대군 시대를 맞이한것이다. 그러면 200만 중국조선족의 절반은 <해외동포>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것도 한참 일을 잘할수있는 <유생력량>이 <해외동포>로 살아간다는것이며 거의 집집마다 <해외동포>와 혈연이 있다는것이다.

지난 25년간 <해외동포>들은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대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고향의 번영발전에 커다란 경제력이 되였다. 그대들은 해외의 문명을 고향에 전파하여 락후했던 고향이 살기좋게 변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대들이 해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였다. 하여 이제는 국제급의 박사, 연구원,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대들의 자녀와 친인척들도 많은 진보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난관이 있다는것도 현실이다.

희망하건대 <해외동포>로 살아가시는 그대들은 다같은 중국사람이라는것을 잊지말고 서로 우애하고 서로 도우면서 상류사회를 꿈꾸고 더 풍족한 생활을 꾸려나가기 바란다. 고향을 지키는 우리의 바램은 여러분들이 늘상 고향의 번영과 발전에 관심을 주시기바라는바이다. 자, 우리함께 정월대보름달을 우러러 동요를 부릅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살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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