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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딤, 혹은 누림

  • 2015-08-04 11:14:25

서커스단이 마을에 왔다. 서커스단 책임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아이들을 불러놓고 반나절을 일하면 뒤에서 구경할수 있는 입장권을 보수로 주고 하루종일 일하면 가장 앞자리에 앉을수 있는 입장권을 보수로 주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반나절을 일하고 오후에 뒤자리에서나마 즐겁게 구경했다. 유독 한 형제만은 앞자리를 가지려고 하루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다.

결국 저녁이 되여 형제는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지만 서커스공연이 시작되기도전에 기진맥진한 형제는 곯아떨어지고말았다. 하루를 견뎠지만 누리지 못했다.

우리 부모세대들도 그랬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 뒤바라지를 하면서 “나중에 자식이 출세하면”만 외우다가 결국 몸도 마음도 늙어버리지 않았던가.

“즐기면서 살자”는 말은 많이 들어도 실천은 쉽지 않다. 려행을 계획할 때 한껏 들떠있던 기분은 늘 려행을 준비하는 과정에 하나, 둘씩 터지는 짜증으로 인해 엉망으로 돼버리기 일쑤였다. 이것저것 준비하는 과정도 려행의 묘미이거늘 머리속에는 단지 목적지에 도착하는것만이 전부였다.

인생은 하루 한페지다. 그것들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을 때 그것의 진가는 과연 성공여부를 밝힌 결말에 있을가. 우리는 명작 추리소설의 결말을 알고있을지라도 그것을 읽으려 한다. 치밀한 구성과 스릴있는 스토리의 전개, 장절마다 숨어있는 반전을 느끼면서 한페지 한페지 번지는것이 추리소설의 묘미이기때문이다.

똘스또이가 했던 말처럼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앞에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이며 가장 소중한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삶의 경주에서 달리는 내내 주변의 풍경은 다 놓쳐버렸다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세상의 등쌀에 떠밀리워 가는 길은 견딤이다. 달리는 내내 짊어진 짐 한귀퉁이로 시간이 질질 새는것도 모른채…

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목표만 바라고 달린다면 현재는 누리는것이 아니고 견디는것이 된다. 목표를 실현하는것보다 더욱 중요한것은 달리는 도중의 희로애락을 놓치지 않는것이다.

이제 맘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짐을 풀고 하루쯤 머물것이다. 지난 과거를 애석해하지도 않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생의 마지막날, 메마른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도록 꿈을 이루는 과정 자체를 즐길것이다. 좀 어긋나면 어떻고 좀 늦어지면 어떠랴. 나를 재촉하는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내 자신이 나를 다그쳤을뿐이다. 발걸음을 늦추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스치고 살았던 행복들이 내 품 가득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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