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붙이와 천불지산
□허성운

2018-07-04 17:02:03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낯선 연변땅에 들어와 식민자로서 저들의 터전을 만들며 정착하는 과정에 일본과 류사한 풍경을 찾아 일본식 지명을 표기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향수를 달래였다. 삼합진 북쪽에 자리잡은 ‘증봉산’을 ‘덴노후지산’(天皇富士山)이라고 명명하고 ‘천불붙이’를 ‘천불지산’(天佛致山 그 후 天佛旨山)이라고 표기한 것이 그 례이다. 여기에서 후지산은 일본을 상징하는 산 이름이고 덴노는 천황을 의미하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천불지산 지명은  일본 제국시기에 천황의 시조는 하늘에서 강림하였다는 설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결국 천불지산 지명은 천불붙이라는 원래의 지명소리를 교묘하게 바꾸어 자기들 구미에 맞게 표기한 지명으로 된다.

조선쪽에서 바라보는 삼합진 증봉산 그 너머에 천불붙이 산이 바라보인다.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화했을 때 흔히 상전벽해라는 비유를 쓴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바뀌였다는 말이다. 아득히 먼 세월을 거슬러올라가면 천불붙이는 원시림으로 빼곡히 들어선 망망한 림해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원인 불명의 천불을 계기로 농토를 빼앗긴 함경도 이주민들이 서래골 마래골로 밀려들어와 화전 밭을 일구면서 천불붙이의 력사가 시작되였다. 최초에 두터운 봉금지대 장벽을 뚫고 나온 풀처럼 화전민은 천불붙이 산속에 움터나온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초들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이런 화전민의 진출은 끊임없이 해를 이어 거듭되여 마침내 봉금장벽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연변에로 이주할 수 있는 위대한 터널로 천불붙이는 자리매김하게 되였다.

최초에 일제가 천불지산 지명으로 외곡할 때만 하여도 천불붙이 옛 지명은 계속 그대로 전해질 수가 있었다. 그 당시에 한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의 비률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설사 한자의 소리로 읽는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순 우리 말 지명의 소리를 바꿀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자의 소리로 읽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원래 부르던 이름이 전해지지 않거나 전해지더라도 일상생활에서는 불리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해방 후 교육보급 수준이 제고되고 행정단위의 한자표기 지명이 공식적으로 사용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천불지산이라는 한자지명이 서서히 우리 말 천불붙이 지명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개혁개방시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한 인구의 이동으로 한자지명의 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여 우리 말 지명은 점점 죽은 이름으로 변해갔다.

오늘날에 와서 삼합, 명동, 대소 등 지역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20대와 30대 젊은 사람들은 천불지산 이름에 대해서는 낯익으나 천불붙이라는 원래의 이름은 생소한 지명으로 알고 있고 40대-60대 사이 사람들은 예전에 어릴 때 가끔 들어본 적이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70대 넘은 토박이 어르신들만이 “옛날에야 다 그렇게 불렸지 뭐.” 하면서 산간지대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산불로 불살라진 밭을 뜻한다고 천불붙이 지명을 정확히 해석할 수가 있다.

천불붙이 지명이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별 불편함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해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천불붙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써본 기억도 없고 들어본 기억도 없는 생소한 단어로서 아무리 사전을 뒤지여 봐도 찾기 힘든 사어(死語)로 되여있다.

천불붙이와 천불지산 지명은 지리 공간적 좌표계에서 동일한 장소를 의미하고 있지만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우리 력사와 문화 좌표계에서 바라보면 너무나도 판이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연변에는 천불붙이라고 불리는 지명이 훈춘시 춘화진에도 있다. 훈춘 천불붙이도 삼합 천불붙이와 마찬가지로 화전민들이 최초에 연변에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에 나타난 지명흔적으로서 이주민들이 이주경로를 파악하는 데 관건적인 실마리를 제공하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먼 후날 이주민들이 연변에로 본격적으로 이주하기를 앞서 절체절명 시기에 접어들어 화전민들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첫 리정표이다. 천불붙이는 화전민의 파란만장한 력사를 환기시킬 수 있는 연변 이주 력사의 풍토를 정착시키는 주요한 문화 아이콘으로서 천불붙이를 떠올리면 화전민이 으레 따라오고 화전민을 말하면 최초의 이주민을 거론하게 된다.

오늘날 분명 시대는 변하고 사라져가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떠나보내야 하였다. 경제발전을 다그치고저 송이버섯 자원우세를 내세우며 천불지산자연보호구라는 이름은 가져왔으나 최초의 이주민의 력사가 아로새겨진 천불붙이란 쟁쟁한 땅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즉 사슴을 가리키며 저것은 말(馬)이다 하니까 정말 말이 되여버리는 고사처럼 천불지산이라는 잘못된 지명이 한세기 동안 그대로 작동되여 내려오면서 천불붙이 지명은 일제식민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지고 있는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외곡된 지명을 그냥 그대로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치 주머니 속에 넣어둔 사향(麝香) 같아서 언젠가 향기를 풍기여가기 마련이다.

경관 십년 풍경 백년 풍토 천년이라는 말이 있다. 산천초목의 경관은 선인들의 발자취가 새기여 풍경의 한계를 뛰여넘고 대대손손 이어진 풍토는 천년 세월을 버텨나간다는 도리이다.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선인들이 쌓은 력사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거대한 자본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일어서고 있다.

진실한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문화의 유전자를 찾는 관건적인 첫걸음이며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미래를 여는 비밀의 열쇠로도 될 수 있다. 마치 그 옛날 천불붙이 화전밭에 심었던 콩, 조, 메밀 보리의 토종 씨앗처럼 우리 살과 뼈에 녹아들어 우리 삶 속에 새로운 희망으로 움터 자라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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