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지?”

2018-10-10 16:02:44

“뭘 먹지?”

온 세상의 별의별 먹거리들로 현란한 오늘의 현실에서 자주 봉착하는 ‘행복한 고민’ 대명사이다. 요즘 와서 고민 끝에 선택한 메뉴가 값비싼 고급 료리가 아니라 고작 꽁보리밥에 시래기국 같은 시골밥상인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일전에 몇몇 지인들과 함께 훈춘 경신으로 소풍갔던 적이 있다. 그날 저녁 농가의 아늑한 온돌방에는 지인의 고향친구들이 마련한 풍성한 음식상이 차려졌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로 만들어낸 다양한 료리에 경신일품의 생선전골까지 가세한 저녁 밥상은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였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농가터밭에 탐스럽게 열린 가지와 고추, 갓 캐낸 토실토실한 감자가 더 매력적이여서 결국  량해를 구한 뒤 풍성한 저녁상을 뒤로 하고 된장찌개를 끓이게 되였다. 농가의 입맛 당기는 토장을 풀어넣고 감자, 가지, 풋고추를 썰어넣은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방안에 퍼질 즈음에는 풍성한 료리상을 마주했던 모든 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된장찌개에 달려들었다. 필자는 워낙 소식주의자라 그렇다치고 함께 있는 식객들이 모두 진수성찬을 외면하고 된장찌개에 돌입했다는 것은 문제를 설명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황홀한 진수성찬과 ‘초라’한 된장찌개를 두고 “뭘 먹지?”라는 고민도 할 겨를이 없이 모두는 그냥 시골 된장찌개에 올인한 것이다.

“입맛이 돌았어!” 뜨거운 된장찌개를 훌훌 불어 입에 퍼넣으며 하는 모두의 한결같은 속심의 말이였다. 서민음식인 꽁보리밥이나 시래기국, 된장찌개로 입맛이 돌아갔다는 말인즉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진수성찬에 질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건국 후 우리는 크게 두차례에 걸쳐 “뭘 먹지?”로 특징지어지는 음식물 비상사태를 맞지 않았나 생각한다. 첫번째 비상사태는 지난 세기 60년대 초반 우리 나라가 3년 련속의 자연재해로 전체 국민이 심한 기근에 시달리며 겪었던 ‘대식품(代食品)’시대라고 일컫던 그 세월이였다. 식량난과 모든 부식물의 판판 부족으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시절 쌀밥은 명절 때나 구경할 수 있었고 서민식탁에 보리쌀, 수수쌀, 좁쌀, 옥수수가루로 만든 음식이라도 오르면 그것은 사치한 식사로 여겨야 했다. 조선족세대들에서는 부족한 식량에 고구마, 감자, 무우 등속을 섞어 밥을 많이 부풀려지었고 수제비, 칼국수, 푸대죽과 같이 식재를 적게 들이고 량을 늘이는 메뉴를 많이 개발했다. 산과 들에서 독이 없는 거의 모든 야생식물이 식탁에서 중요한 ‘편제’로 자리매김하였다. 남녀로소 할 것 없이 영양실조에 허덕이던 악몽 같은 세월, 집집마다 “뭘 먹지?”로 고민하며 개탄하던 비상사태가 해체되는가 싶었는데 10년동란의 정치재난이 자연재해를 대체하여 국토 전반을 초토화한다. 나라경제가 파산변두리에 이른 상황에 시민들의 식량은 한정된 배급제로 철저히 통제되고 남새를 비롯한 육류, 어류 등 부식물들은 엄격히 배당된 식품권으로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먹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던 세월, 상점에서 과자 등속도 량권이 있어야 살 수 있었으니 배고픔은 달랠 방법이 없었다. 사사로이 자류지를 경작하거나 장터에서 팔고 사는 행위는 ‘자본주의 꼬리’로 징계를 받았다. 개별적 국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겪는 아픔이였다. 자연재해와 정치재난으로 점철된 나라 경제의 삭막함에서 초래된 국민 식생활의 궁핍은 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상황에서 벌어진 “뭘 먹지?”의  고민거리였다.

두번째 음식물 비상사태는 개혁개방 40년이 일궈낸 나라의 물질풍요에 따른 국민들의 윤택하고 부유한 삶에서 비롯된 영양 과잉시대라 할수 있는 오늘날의 상황이 아닐가 생각한다. 모든 먹거리는 시장에서 자유로이 교환되고 도시와 향진의 거리 곳곳에는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하게 들어선다. 코구멍만한 식품상점은 대형 슈퍼마켓으로 교체되면서 고객이 식품매장 안을 활개치며 마음껏 식료품을 선택한다.

연길시의 경우 개혁개방 전 시가지안에는 복무대루, 조양, 하남, 공원, 실습 등 다섯개의 국영식당이 유일한 음식업소였는데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거리와 골목 곳곳에 사영음식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가 싶더니 수차의 갱신과 개조, 포장을 거치며 서서히 명품 먹자거리들로 탈바꿈하면서 시민들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가지각색 희귀한 음식물이 썰물처럼 우리 식탁을 밀고들어오면서 오랜 세월 허기와 굶주림에 시달렸던 시민들은 수만가지 현란한 먹거리 메뉴를 두고 “뭘 먹지?”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연길시 안의 그 많은 각양각색의 음식료리점이 하나같이 썰렁한 공간이 없이 식객들로 붐비며 먹자시대를 즐기고 있다. 마치도 먹을 것이 없어 “뭘 먹지?”로 고민하던 지난 세월에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작정하고 식사를 즐긴다.

개혁개방 40년이 우리 국민을 허기진 삶에서 해방시키고 영양실조와의 결별과 더불어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풍요로운 음식문화의 새 기원을 열어주었다. 이제 풍요로운 식생활에서의 정확한 선택은 우리 국민들 자신에게 달렸다.

배불리 먹는 것을 최상의 락으로 동경하던 시대가 지나가면서 음식의 량으로 질을 대체하던 그 몸서리쳐지던 나날도 옛말로 된 지 꽤나 된다. 아이러니하게 지난 ‘대식품’시대 식량난 때문에 여러가지 야채를 섞어 밥을 부풀리거나 식재를 적게 들이고 물을 많이 부어 량을 늘였던 음식메뉴들이 눈살을 찌프리며 먹던 잡곡밥과 더불어 오늘날 건강식으로 륭숭한 대접을 받게 되였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그 같은 사례다.

병은 입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옛적에 별로 경험하지 못했던 지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병들이 많이는 음식물 과다섭취와 잘못된 음식문화에서 기인된 칼로리과잉 때문인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식사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기름진 식사가 아니라 입맛이라는 인식 단계에 오기까지 우리는 수험료를 꽤 많이 냈다. 풍성한 진수성찬에서 단백한 우리 민족 음식으로 돌아서는 과정은 어찌 보면 먹기 위하여 보다 살기 위하여 먹는다는 현명한 판단으로 일궈낸 상황이 아닐가 생각한다. 이 상황은 지금 진행형이다.

당의 개혁개방정책에 감사하면서 오늘과 같은 영양과잉 비상사태에서 다시한번 담백한 우리 민족 음식, 정갈한 우리 민족 주방을 떠올리며 우리의 음식문화를 고집하는 것만이 세계화의 음식물 대홍수 속에서 우리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우리 민족을 지키는 명지한 선택이 되리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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