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영탄곡
[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칼럼시리즈-농촌편 ]

2018-11-08 08:48:59

일전에 시교 농촌에 집을 짓고 살아온 지 여러해 되는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얼마 전부터 시골에 정착한 도시인들에 대해 소속 촌민위원회가 재심사를 거쳐 거취여부를 정한다고 하는데 도시인이 농촌발전에 도움이 되는지가 심사의 핵심포인트라고 한다.

지인의 말에서 필자는 우리 농촌의 전통적인 소박한 삶을 서서히 접고저 하는 농심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3농’의 지존이 번뜩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안겨온다. 말하자면 시골은 별 볼일 없는 한적한 손님이 아니라 ‘3농’충전에 절실한 도시인을 동반자로 받아들인다는 ‘인재유치’ 전략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40년 전 안휘성 소강촌의 18명 농민이 목숨 건 혈인(血印)으로 중국 농촌 개혁의 서막을 열 때의 초심은 평균분배체제를 타파하고 호도거리를 도입하여 먹고 입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있었다. 그러나 농촌개혁 출발선의 ‘우등생’인 소강촌은 ‘한해 사이에 먹고 입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 후의 긴 스무해 동안 부유촌 문턱을 넘지 못한’ 슬럼프에 빠졌었다. 사실 소강촌의 난국은 우리 나라 다수농촌이 겪고 있는 곤경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었다.

연변도 례외가 아니였다. 1998년 필자는 30년 전 하향했던 화룡의 시골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30년이 지난 시골의 산천과 전답은 변하지 않았으나 농가의 삶은 엄청난 리념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적 부름은 농촌이 전통의미에서의 역할에서 도약하여  공업화의 사유로 농업을 기획하고 농촌경제와 공업의 맞물림, 도시와 향촌의 일체화를 이끄는 원동력으로의  사유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10년 전 필자가 하향했던 시골에서 목격한 연변 농촌의 피페했던 풍경은 전통과 현대가 교체되는 변화의 갈림길에서 우리 나라 농촌이 겪고 있던 ‘성장의 고민’으로 특징지어지는 한 대목이라 할 수 있고 이제 새롭게 밝아올 21세기 농촌의 려명을 예고한 과도기라 할 수 있었다.

농촌 개혁개방 40년, 평균분배 ‘큰 솥밥’ 체제를 깨고 호도거리란 농촌개혁의 위대한 출발을 선언한 것은 농민의식 전환의 산물이고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한 후 스무해 오랜 세월 농촌발전이 슬럼프에 빠져있었던 것도 농민의식 전환이 멈춰지면서 형성된 난국이였으며 결국 멈춰섰던 농촌발전의 엔진이 재가동을 회복할 수 있은 것도 농민의식 전환의 재활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농민은 ‘3농’ 문제의 핵심이고 농촌변혁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의식전환을 토대로 한다는 이 같은 리념은 ‘성장의 고민’ 진통을 겪으며 류추해낸 도리였다. 따라서 농민의식 전환 과정에 당정의 명석한 인도와 도시사람의 농촌에 대한 반포(反哺)의식이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는 사유의 빗장 을 열기까지는 참으로 수험료를 많이 냈다고 생각한다.

소강촌이 20여년의 침체를 깨고 원기를 되찾을 수 있은 것은 2004년 안휘성이 제2패로 파견한 간부 심호를 선두주자로 한 리더들에 의한 사상해방이 불러온 ‘두번째 창업’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창업모드가 ‘밭만 뚜져서는 금덩이를 캐낼 수 없다.’는 소강촌 농민들의 인식전환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연변의 경우 몇년 전부터 우리 주가 시행하고 있는 ‘귀향창업 만인계획’ 프로젝트와 ‘우수대졸생 천인계획’ 프로젝트는 자치주 당정이 내놓은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대안으로서 새농촌건설의 핵심포인트는 사람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해외 로무인원과 국내에 산재해있는 연변적 인재, 우수대졸생들의 대거 귀향을 겨냥하여 펼치고 있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연변의 농촌개혁과 새농촌건설은 큰 탄력을 입을 것이며 연변농촌이 해외로무로 빚어진 ‘공동 (空洞)’화 현상도 메꿀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자치주 당정의 이 같은 ‘사람’ 중심의 새농촌건설 리념이 광활한 농촌에서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의 앞에서 언급한 촌민위원회가 시골정착 도시인들을 향해 빼든 ‘인재유치’를 위한 자격심사카드가 이 점을 반증하고 있다.

‘빈곤퇴치, 난관공략’ 또한 연변이 목전 농촌개혁에서 풀어나가고 있는 천자호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기관간부를 시골로 파견하여 촌 당지부서기를 맡게 한다거나 당정기관 각 부서가 빈곤촌 하나씩을 떠맡는 것 같은 실질적인 대안이 포진되여있어 무척 기대가 된다.

빈곤퇴치 자체가 농촌개혁의 난관인것은 분명하다. 실천이 증명하는바 돈이나 물건에 의한 구제는 자연재해나 지체장애자 같은 특정된 재난상황, 특정된 농민군체에만 해당한 특정된 구제가 돼야 하고 그외의 빈곤층 농민들에 대해서는 함께 근로치부의 길을 모색하는 차별화 대책을 명확히 하여 빈곤호나 빈곤촌의 빈곤해탈이 잠시적이 아닌 영구적인 결실로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빈곤퇴치의 량호한 공략환경 구축에서 지역사회 엘리트, 유지, 명인들의 선도역할이 중요한 변수로 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귀향지식청년 류창은, 귀향장령 김문원과 같은 리더들의 저력이 귀향창업자들의 열정과 끈끈한 조화를 이룰 때 연변의 ‘빈곤퇴치, 난관공략’ 전략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다. 밑굽빠진 항아리에 물 붓는 식으로는 가난구제가 불가능하다는 리치를 필자는 지난 80년대 자치주 당기관에서 근무할 때 어느 촌에 빈곤구제 조사를 내려갔다가 가난때를 벗고 잘살아보라고 촌에서 장만해준 부림소를 가차없이 잡아먹은 농부의 소행을 통해 느낀바 있다. 필자는 지금도 30년 전 헐망한 초가집 앞에 엉거주춤 서서 촌장의 분노한 질타를 받던 그 신수멀쩡한 농부를 떠올려본다. 아무리 개혁개방이 좋고 치부정책이 좋아도 제 자신이 분발하지 않는다면 가난의 수렁에서 영원히 헤여나올 수 없고 그냥 초라한 각설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도리는 영원하다. 따라서 경제 빈곤퇴치에 앞서 정신 빈곤퇴치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말이다.

40년 개혁개방 세례를 거친 연변 농촌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맞고 있다. 20 전 필자가 목격했던 그 피페했던 풍경은 ‘성장의 고민’을 거친 려명 전의 어둠으로 되여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원래의 초가삼간은 100년 전 이주초기 기와와 더불어 관광용 민속촌 대접을 받으며 잘 보완돼간다. 그 대신 가로세로 뻗은 아스팔트 길 옆에는 코스모스와 갖가지 꽃들이 만개하고 철제울타리 호위 속에 아릿다운 자태를 뽐내는 청기와, 홍기와 농가들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빈곤촌 모자를 벗은 마을들이 하나 둘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헬스장 문구장과 더불 환하게 웃고있다.  연변의 농심이 웃고 있다.

농촌개혁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만큼 농촌은 계속 도시의 반포를 바란다. 하지만 그 반포가 한두번의 화려한 ‘수혈’로 끝날 게 아니라 농촌개혁과 새농촌건설의 건강한 ‘조혈’기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충전혈맥으로 돼주기를 바란다. 연변의 농심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농촌은 광활한 천지로서 거기에는 할 일이 정말 많다. 이 천지에서 도시인들은 농촌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새농촌건설의 조력자, 견인자로 될 각오로 자기 지혜와 능력을 쏟아붓는다면 농심은 역시 이 글의 앞에서 서술한 그 같은 ‘복덩이’로 도시인들을 끌어안을 것이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