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혁명의 도래

2018-12-06 09:11:10

일전에 지식청년 상산하향 50돐을 맞아 함께 하향했던 중학교 동창생들과 더불어 만남의 자리를 가졌던 적이 있다. 당지의 몇몇 농민들도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화제는 자연히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시골마을 로인장들에게 돌아가게 되였다. 그 당시 십팔세 청춘들의 눈에 비쳤던 촌로인들이 사실은 사오십대에 불과했다는 농민들의 증언에 칠십을 바라보는 동창생들 모두가 무엇에 홀리운 듯 입을 딱 벌리였다.

오륙십 나이에 명을 다하여 세상 뜬 시골농민들 삶의 질 화제가 위생건강 쪽으로 가닥을 잡더니 인간의 배설물처리와 ‘변소간’, ‘화장실’이 그 중심에 놓이게 되였다.

‘변소간’, 오랜 세월 우리 농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비위생환경의 대표적인 존재였지만 가난과 고된 로동에 찌들린 농민들에게 위생환경개선은 쉽지 않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이 또한 어찌 농촌에만 국한된 문제였겠는가?

인간의 배설물로 인한 각종 전염병의 유발로 인간들의 대량 사망이 가시화되는 것을 볼 수만 없어 조지프 브라마가 1778년 밸브장치가 달린 수세식 변기를 발명하고 토머스 티포드가 1885년 배설물 냄새를 없애는 배수관을 발명하면서 만든 도자기 변기의 탄생으로 비위생 배설환경에 대한 인류의 전쟁이 공식화되였지만 광범한 서민층에까지 확산되기까지는 상당한 력사가 흘렀다.

우리 나라의 경우 배설물냄새 제거를 위한 수세식 변기가 호텔, 기관의 전용물로부터 국민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한 시간은 개혁개방 이후라 할 수 있다. 오래동안 국민거주공간에서 화장시설은 거세된 존재였다. 시민들은 공공변소를 리용해야 했고 시골농민들은 살림집 뒤켠 으슥한 뒤간에서 치러야 했는데 그 배설물 처리구조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시골의 배설물 처리공간은 원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화장실은 구린내나고 루추한 상징물로서 살림집과 멀리 떨어진 은밀한 곳에 숨겨져있어야 한다는 게 화장실에 대한 우리 나라 국민들의 전통적 관념이였는데 거기에다 10년동란과 같은 전대미문의 재난으로 엄청난 쇼크를 당하여 공중도덕 의식과 공중생활질이 형편없이 추락하면서 화장실문화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를 잃고 있었다.

상수도를 오염시키지 않고 배설물을 흘러보내는 건 문명의 기초이고 ‘변소’나 ‘화장실’은 우리의 얼굴임에도 줄곧 외면당하는 존재로 수십년간 내려온 게 우리의 현실이였다. 연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들이 제한받지 않고 활보하는 주내의 도시와 농촌의 구석구석에서 이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변소간’이라는 이 ‘더러운 얼굴’ 때문에 망신을 거듭해왔다.

필자는 지금도 80년대 후반 외국의 한 지성인 부부를 안내하여 어느 변경도시 외곽의 음식점에서 겪었던 그 부끄럽던 장면을 떠올리면 소름이 오싹 끼친다. 식사 끝에 외국인이 화장실을 찾는 순간 화장실 실태를 미리 점검 못한 실수를 뉘우쳤으나 때는 이미 늦었고 방법없이 한쪽켠에 초라하게 방치돼있는 변소로 안내했는데 얼핏 보니 언제 쓰러질지 모를 삐꺽거리는 널판자변소는 문짝도 있으나마나 하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변소 앞에서 필자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국인이 변소 안에서 받았을 충격을 떠올리며 필자는 자신의 치부를 속속들이 드러내보인 그 같은 수치심으로 련 며칠간 비애와 자책에 모대겨야 했다.

국민들의 거주환경이 아직 가난의 때를 채 벗지 못한 상황과 걸맞게 배설물처리 시설에 대한 관념이 더없이 진부했던 세월이였다. 거기다 오래동안 내려온 비위생적인 전통유습의 페제와 추락된 공중도덕 의식의 재건이 물질문명 창출과 동시에 판박이로 이뤄질 수 없는 점, 따라서 고루한 ‘변소간’인식을 현대적 ‘화장실’ 문화관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일조일석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개혁개방이래 국민들 인식전환의 흐름이 분명히 시사하고 있다.

개혁개방은 화장실혁명의 도래를 견인한 거대한 동력이다. 필자의 경우 초라하지만 도자기 수세식 변기가 딸린 실내화장실을 향유하는 ‘사치’를 누리게 된 것도 개혁개방 후인 80년대 중반이였다. 개혁개방에 힘입어 80년대 초, 중반부터 가동된 연길시 아빠트건설 붐이 수세식 변기가 달린 실내화장실의 시민안방 진입에 푸른등을 켜주면서 거주문화의 새 기원이 열린 것이다.  초라한 공공변소로부터 편안한 실내화장실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대신 공원, 광장, 공중장소마다 수세식 변기로 무장한 화장실들이 선을 보인다. ‘새농촌건설’의 동음이 우렁찬 가운데 초가삼간집이 산뜻한 철기와집으로 변신하고 이에 걸맞게 ‘으슥한 곳’에 숨겨져있던 재래의 화장실이 철거되고 수세식 변기로 탈바꿈한 실내화장실이 안방에서 관광객들을 반긴다.

80년대 초반까지 필자는 가두 50여가구의 단층살림집 주민들과 더불어 동네 유일한 공공변소의 리용자였다. 80년대 중반부터 아빠트생활권에 진입하면서 재래의 초라한 수세식 변기로부터 90년대 중반의 수세식 좌변기,  2000년대의 비데좌변기의 갱신교체를 골고루 몸으로 실천하면서 필자는 나름 대로 ‘변소간’으로부터 ‘화장실’로의 호칭변화가 내포한 위생건강혁명시대를 체험해왔다.

몇년 전 방문온 외국인 친척부부를 안내하여 다시 20여년 전 다녀왔던 그 변경도시로 답사 루트를 잡게 되였다. 역시 시골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였고 식사 끝에는 친척분이 의례히 화장실을 찾게 되였는데 외국인 친척분 나중의 평가는 ‘매력적인 음식상, 정갈한 화장실’이 인상깊었단다.

물론 연변을 찾는 외국인들의 눈치, 체면 때문에 겉치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쾌적하고 편안한 화장실문화를 정착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우리의 화장실이 마땅한 대접을 받게 될 때만이 연변의 화장실문화는 력사적인 대전환의 궤도에 오를 것이다. 필자가 본문 앞에서 언급한 농민형제들의 수명연장이라는 명제도 이 같은 관념변화에서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화장실혁명은 진행형이다. 산적한 많은 문제가 우리의 정답을 기다리고있다. 우리의 낡아빠진 ‘변소간’, ‘뒤간’관념의 타파, 투명한 공중도덕의식에 힘입은 사회문명관은 국민 모두의 문화 자각에 의해서만이 똑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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