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두산촌의 변화에서 느낀다

2019-10-24 08: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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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내두산촌에 다녀왔다.

30여년 만의 내두산행이 필자에게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30여세대의 오붓한 기와집들, 가로세로 뻗은 정갈한 마을 포장도로, 흥겨운 노래소리가 터져나오는 덩실한 마을 문화실, 마을 안팎에 정중하게 모셔진 내두산항일유격근거지기념관과 항일기념비, 항일밀영 표지비 조형물들, 산비탈 시원한 공간에 여유있게 자리 잡은 멋진 목조정자와 그네터, 마을 입구에 꾸며져있는 아담한 작가공원…, 문화 새 농촌 재건의 활력이 도처에서 꿈틀거리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메마르고 지친 듯한 촌민들 삶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저마다 여유롭고 밝은 표정들이다.

무엇이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을가?

30여년 전 내두산촌 빈곤부축의 골자는 ‘산을 끼고 산을 파먹는(靠山吃山)’ 내두산생태개발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참여하여 집필한 <내두산촌 탈빈치부(脱贫致富)에 관한 조사보고>의 테마이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내두산 화산재(浮石)채굴권한을 내두산촌에 주어 촌민들이 능력껏 개발하여 치부하도록 하는 것이였다. 화산재는 좋은 건축재여서 건설부문의 선호도가 높았다.

물론 오늘의 시각에서 볼 때 이 같은 치부대안은 생태자원훼손을 그 대가로 하였지만 농민들의 ‘온포(温饱)’문제 가압권으로 다뤄졌던 그런 시점이라 림업관리부문도 푸른 등을 켜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30여년 전 생태훼손을 대가로 한 내두산 촌민들의 근로치부사는 전통과 현대가 교체되는 변화의 갈림길에서 우리나라 다반 농촌이 겪고 있던 ‘성장의 고민’ 축소판이 아니였던가 생각한다.

내두산촌이 20여년간의 침체를 깨고 생태훼손의 슬럼프에서 헤여나와 오늘의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은 것은 강력한 도시반포의 힘으로 이끌어낸 내두산촌 관념전환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이 관념전환의 핵심은 ‘부석만 뚜져서는 금덩이를 캐낼 수 없다’는 것이였다.

연길의 어느 문화단체와 촌의 공동합작에 의해 기획된 이번 내두산촌 이벤트 현장에서 필자는 내두산촌 변화의 답을 어느 정도 류추해낼 수 있었다.

시골 냄새가 다분한 감자축제 제막식 현장, 도시인과 촌민들이 함께 하는 흥겨운 합동공연 무대, 농가 온돌에서 격식없이 펼쳐낸 문학세미나와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상여민속문화표현은 솔직히 말해 연변 주내의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특이한 축제 문화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30여세대에 불과한 작은 조선족 마을 공간에서 이 같은 축제문화이벤트를 펼쳐낸 데 대해 경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도시인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감자축제가 한낱 마을의 감자추렴 정도로 흘러버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축제 이벤트를 주도한 김춘택 작가에게 머리가 숙여진다.

소박한 축제 이벤트의 면면과 더불어 마을 안팎에서 반짝이는 문화원소들을 일별하면서 필자는 도시인들의 도움으로 내두산촌을 세계인이 찾는 장백산 아래 첫 조선족전통문화 관광촌으로 부상시킨다는 촌의 야심찬 발상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발상과 현실은 거리가 있다. 그러나 30여년 전의 ‘산을 끼고 산을 파먹는’ 진부한 사유에서 내두산촌 특점을 살린 새로운 관광문화리념으로의 전환은 굉장히 획기적인 새 농촌 재건 혁명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도시반포를 동력으로 전통문화 관광마을 형체를 서서히 갖춰가는 내두산촌의 변화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미숙한 몇가지 느낌을 떠올려본다.

내두산촌에서 벌리는 축제문화 이벤트나 마을 안팎의 문화원소 기획물들은 장백산 아래 ‘조선족 전통문화관광 첫동네’에 좌표를 맞춘다. 감자축제의 핵심포인트는 ‘내두산 감자’이다. 농업과학연구부문을 통해 화산재에 의한 감자의 영양원소를 더 확실하게 론증하고 크게 부풀릴 필요가 있다. 감자 뿐만 아니라 고구마, 강냉이 같은 농작물과 타지방 동일류 농작물과의 구별점을 밝혀내여 감자축제의 본연확대를 노릴 수 있다. 내두산 감자를 비롯한 농작물은 말 그대로 ‘장백산의 정기’를 함유했다는 점을 감자축제에서 크게 업그레이드시켜 관광문화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내두산 감자축제를 지금의 촌의 행사가 아닌 이도백하진 또는 안도현의 축제로 격상시켜 축제의 수준을 한차원 높이며 안도현 관광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발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제의 핵은 문화이다. 축제에 배합하여 소집한 문학단체나 예술단체의 세미나와 예술공연은 내두산 항일유격근거지, 내두산촌 전통마을, 장백산 아래 첫 조선족동네 등 부호들을 조준하여 내두산 촌민과 관광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인상을 줄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돼야 한다. 특히 문학행사에서 당지 촌민들의 정서와 관심사에 눈을 더 돌리고 촌민들이 많이 참석하여 문학적 계발을 받게 하며 세미나에 상정된 문학작품도 농민들의 삶과 관계되는 쪽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 내두산촌에서 문학 세미나를 개최하는 출발점을 분명히 하여 우리 작가와 내두산 촌민들의 문화적 융합을 도모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두산촌작가공원 개원 초심은 우리 작가와 농민들의 문화적 거리감을 좁히고 우리 문학이 인민들 속에서 자양분을 섭취하여 인민대중이 즐기는 문학작품의 량산을 이끌어내는데 있는 줄 안다. 작가공원이 작가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당지 농민들도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문학향수의 공간이 되게 하자면 공원에 세워진 문학비 조형물에 대한 점검과 보완, 제고가 절실하다. 역시 내두산촌의 좌표를 념두에 둔 작가와 촌민들이 함께 하는 문학공원으로 작가비보다 작품비에 더 편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좋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내두산촌작가공원은 우리 작가와 농민들의 ‘물과 고기’관계의 징표로 돼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내두산촌은 안도현 이도백하진 8개 행정촌에서 유일한 조선족 전통마을이다. 30여세대 50여명 촌민들은 청일색 조선족이다. 그런데 마을 집집의 바람벽에 유표하게 쓴 홍보내용물들, 내두산항일기념비, 표지비 조형물의 글들이 대부분 한어문으로 되여있어 아쉬웠다.  누구에게 보이기보다 우선 촌민들이 그 뜻을 알고 향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두산촌,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도시반포의 따사로움이 장백산 아래 첫동네를 서서히 달궈간다. 장백산 정기를 품은 이 마을의 문화적 도약은 이제 시작이다. 내두산촌의 변화, 어쩌면 변화를 꿈꾸는 연변의 편벽한 산간마을들에 던진 값진 메시지가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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