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 좀 하면 어때요

2019-10-31 13:53:22

요즘 따라 딸애의 ‘잘난 척’이 부쩍 늘었다. 그림 한장 그리고나서도 시뚝한 표정으로 어른들 앞에 내밀며 성과물을 과시하기에 바쁘다. 단조로운 선과 알록달록한 색감을 입힌 그림들이 동년배들과 비겨도 그리 월등한 수준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도 온갖 리액션을 섞어가며 칭찬을 해준다. 그런 나의 칭찬을 딸애는 매우 즐기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잘난 척’은 어느 정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똑같은 경우를 어른한테로 옮겨왔을 때, 내가 딸애에게 했던 것처럼 그리 정성스러운 리액션이 따라줄 것 같지 못하다. 어쩌면 입으로는 ‘정말 훌륭해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쳇, 그까짓게 뭐라고!’ 하면서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어른들은, 세상물정을 다 알아버린 그들은 더이상 아이들처럼 마음 놓고 잘난척을 하고 싶은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참을성이 없는 어른들은 좀더 고차원적인 방법을 대 기어이 잘난척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한편의 글을 읽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전형에 대해 론한 글이였다. 작가는 글에서 문화권력의 수행자로 된 일부 지식인들을 사회의 암 같은 존재라고 지적하면서 인류문화발전에 궁극적인 기여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 지식인으로 남을 바엔 차라리 모든 서책들을 불살라버리고 농사나 짓는 편이 낫겠다고 성토했다.

이 무슨 경우 없는 잘난 척이란 말인가! 스스로 (학술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량심있는 지식인으로 살아가겠노라고 선언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아무렇지도 않게 지식인과 농민의 차이를 일종의 신분등급으로 나눠버렸으며 그런 작가의 가치관에 결코 동조를 할 수 없었다!

사실, 어른들의 이와 같은 허무맹랑한 잘난 척을 나는 수도 없이 봐왔다. ‘아니예요, 저는 겸손한 사람이예요.’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지만 실은 ‘나 만큼 잘나 보세요.’라고 하는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오만함은 잇달아 타인에 대한 조언을 빙자한 무례한 가르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대다수 일들에는 ‘절대적’이라는 리치가 그닥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삶의 기준이 똑같을 수 없다는 얘기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을 맞는 것으로 판단해버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할 때, 그것은 곧 ‘무례한 가르침’이 되고 이어 허무맹랑한 ‘잘난 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아이들처럼 ‘순수한 잘난 척’을 해보자.

-난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나로서는 스스로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구요. 그렇다면 나 좀 잘난 척 해볼 게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이러한 당당한 고백이 좀더 사랑스러울 것 같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이라면 누군가로부터 ‘쟤 너무 잘난 척 하는 것 아니야’라는 평가를 듣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스스로의 삶에 올인하는 사람이라고 다독여주고 싶다. 어쩌면 그만큼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데도 어른들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난 척’을 좀 해보면 어떤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겸손의 탈을 쓴 채 타자의 시선 속에 갇히는 것 보다야 훨씬 더 인생이 즐거울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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