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호천개와 국자개

2019-12-05 09: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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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위돌문을 열고 나서면 연분홍 살구꽃 잎이 보슬비처럼 흩날리는 살구평 마을이 나타난다. 그 건너편에 그 옛날 화전 불길처럼 천지꽃이 붉게 타오르는 산언저리 아래 호천개 마을이 마주앉아 기억 속에서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옛 이야기를 하나 둘 흐르는 내물에 띄워보낸다.

상소골 늪데기에서 흘러내리는 강물 끼고 마을이 자리 잡았다고 늪 호자와 내물 천자를 붙여 호천개(湖川街)라는 땅이름이 붙여진다.

19세기 80년대부터 조선과 접경지에 위치한 호천개에 청나라는 선후하여 초간국 무간국을 설치하면서 이주한 조선인 수가 배로 늘어난다. 이곳은 종성 통로에 해당하며 거주하는 조선인은 상인이고 쾌관(음식점), 려인숙, 잡화점 등 시가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연변 유일의 만병통치약 금계랍(金鷄蠟)도 이곳에서만 판매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와서 구매하였다.

관아에서 발급되는 땅문서는 이곳에서 구입할 수가 있었던 금계랍 명약 만큼 희귀하였다. 커다란 보짐을 지고 장터를 오가며 펼쳤던 베천지락은 꼬리를 길게 무는 행렬에 묻히고 쾌관 시라지장국 그릇엔 고단한 삶의 거친 숨소리가 땀과 눈물로 얼룩지고 섞여 시끌벅적한 력사를 엮어갔다.

허나 사람이 사는 집이 세월이 지나면 무너지고 자취를 감추듯 오랜 시간의 퇴적은 땅과 하늘을 바꾸어놓았다. 광서 25년(1899년), 훈춘부도통아문에서는 공문을 보내 호천개에 있는 장터를 국자개(局子街)로 이전하여 옮긴다. 그 후 20세기 20년대에 철길이 부설되고 거살이역(간이역)이 서면서 회경가(怀庆街)라고 지명을 개칭하고 호천개 이름은 력사속으로 깊숙이 사라진다.

국자개는 광서년간에 남강초간국을 설치되면서 명칭이 붙여진다. 여기에서 국자개는 관청사무를 보는 곳을 말하는데 최초에는 토지문서를 취급했던 관가가 자리한 장소를 뜻하였다. 오늘날에 와서 국자개를 국자가 혹은 국자거리라고 부르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길거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사실 국자개는 옛 관가가 있었던 곳과 그 둘레를 아우르는 땅이름이다. 한자 <街>의 표준음은로 발음되나 중국 허다한 방언에서는로 발음한다. 특히 중국 동북지방에서 <上街>는로 말하는데 여기에서 길에 나선다는 뜻보다 장터, 백화점이나 상점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는 장소의 의미가 담겨있다. 함경도 방언에는 구렁깨(우물 자리한 곳), 사무깨 (샘물 나는 곳),절당깨 (절이 있는 곳), 땅낭껄(당나무가 자리한 곳), 부스깨(부뚜막)라는 토배기 사투리가 있는데 여기에서 깨 혹은 껄은 거리라는 의미보다 한 지점을 둘러싸고 있는 장소라는 의미에 그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국자개는 최초에 부르하통하와 연집강 합수목 아래쪽에 자리한 작은 고장이였지만 호천개 장터가 옮겨오면서 갖가지 상품과 농산물이 집중되고 장보러 오는 사람들로 차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천개와 국자개 지명은 호적, 토지문서, 장터로 이름난 땅이름만이 아니다. 1880-1990년대 폭력이 란무하는 혹독한 세월속에 힘없이 사는 백성들이 토지문서를 가진 땅임자의 지울군(노비)으로 지팡살이군으로 살다가 빚으로 처자를 팔아가며 혈혈단신 떠돌다 황야에 주검으로 내몰리는 한 많은 삶들이 호천개와 국자개 땅 곳곳에 묻혀있다.

재난과 가난이 먹장구름처럼 드리워 캄캄했던 밤길에 가진 것 하나 없이 빈주먹으로 꿈 하나를 보따리에 넣고 별빛처럼 깜빡이는 삶의 섬광(閃光)을 따라 두만강을 넘어 호천개와 국자개 땅으로 퍼져들어와 피와 땀과 눈물로 투박한 함경도사람들의 그 특유의 끈질긴 노력으로 황량한 연변땅을 기름진 옥토로 가꾸어왔다. 오늘날 다시 되돌아보면 그때 선인들이 진창 같은 과거를 딛고 최악의 실패를 박차고 다시 일어섰던 그 시점이 바로 호천개와 국자개 땅이름이 불리여졌던 그 암흑기다.

호천개와 국자개 땅 이름은 우리 력사에 있어서 더는 이방인이 만든 낮선 외래어 지명이 아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미래를 향해 안고 가야 할 소중한 지명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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