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말하는 법 배운다□ 신연희

2019-12-13 09:01:15

할머니는 재밌었지만 또 호랑이같이 무서웠다. 할머니에게 혼날 때면 무서워서 입을 닫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말한다.

“꽁해있지 마. 할말이 있으면 해.”

그러면 나는 말을 해도 되나보다 하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또 말했다.

“말대답 하지 마.”

‘역시 말을 하면 안되는 거였구나’ 하고 다시 풀이 죽어 가만히 있으면 할머니가 말했다.

“또 꽁해있네. 꽁해있지 마.”

‘꽁해있지 마’와 ‘말대답 하지마’ 사이에서 무한 반복 널을 뛴다. 나는 널을 뛰면서 생각했다.

‘그럼 나는 언제 말해요?’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보낸 나는 그렇게 말문을 닫은 채 살아왔다. 기분 나쁜 것은, 서운한 것은, 억울한 것은, 불편한 것은, 힘든 것은, 슬픈 것은 말하지 않는 게 나았다. 괜히 더 혼나니까, 할머니가 슬프니까, 그게 싫어서 꾸역꾸역 더 깊은 곳으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사회생활도 어려웠고, 사랑도 힘들었고, 부부싸움도 너무 버거웠다. 내 아픔과 불편함과 슬픔을 말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신기했다. 기분 나쁜 것을 그때그때 잘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나는 기분 나쁜 말은 꼭 집에 와서 세수하고 누우면 생각이 난다. 그 순간에는 기분이 상했음을 표현하지 않고 꼭 잠자리에 들어서야 ‘기분 나쁘다’ 하고 혼자말을 한다.

기분 나빴는데 상대는 기분이 나빴다는 걸 절대 모른다.

왜냐, 내가 웃었으니까. 나조차도 내 감정을 재빨리 눌러 없애버렸으니까. 나처럼 자신의 감정을 타이밍 맞게 상대에게 전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우린 왜 그럴가? 아마도 말해본 적이 없어서? 말은 하지만 진짜 말을 하지 않고 살아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 다고 서운한 말도 해본 사람이 한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서운한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쌓아둔 만큼 서러움은 격하다. 화산폭발이다. 작은 씨앗만 했던 서운한 이야기가 산을 동강내는 화산폭발의 스케일로 끝을 맺는다.

“별일 아닌 건 좀 별일 아니게 이야기를 꺼내.”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자기 안의 부정적 감정을 언어화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슬프고, 수치스럽고, 민망하고, 섭섭하고, 화나고, 어색한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일도 어려운데 그 감정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괜찮아’, ‘됐어’, ‘아니야’라는 말을 달고 산다.

하지만 슬프고 힘든 마음일 수록 말로 드러내야 한다. 담아두기만 하면 결국 어디에선가 터진다.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상황에 부딪치면 바로바로 말로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기분이 나쁘다고, 슬프다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더 늦기 전에 내 마음을 바로바로 말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온다.

“와, 너 정말 왜 이렇게도 사람을 갈궈대는 거니? 제발 좀 그러지 마!”

아니,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역시 말을 하면 안되는 걸가. 아니면 내가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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