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의 의미

2020-01-15 14: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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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당중앙의 제2차 “초심을 잃지 말고 사명을 명기하자”는 주제교육활동이 전면적으로 가동된 이래 군중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 맞춰 사회각계의 애심기부활동들이 보물 터지듯 쏟아져나왔다.

개인적으로 ‘물방울모금(水滴筹)’ 등 앱을 통해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비를 기부한다든가 소속집단의 조직하에 로동기부, 재능기부, 물질기부 등 여러가지 기부를 함으로써 당중앙의 ‘여덟가지 하나’를 완수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여 주변의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료양원들은 매일이다싶이 각 기층조직에서 갖고 오는 ‘푸짐한 선물’을 받느라고 눈코 뜰새 없다고 한다.

사실 이번 활동이 아니라도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마을을 단위로 공동체생활을 해오면서 네것내것 따로 없이 서로가 나누면서 살아가는 미풍량속을 갖고 있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생방송프로그람 <<사랑의 길>>이 19년을 이어오면서 2000여명의 아이들을 도와주었다는 사실과 연변일보 <사랑의 한마당>란에 끊임없이 사랑의 기부뉴스가 올라오는 것을 봐도 우리 민족의 따뜻한 정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간의 미담들과 귀감들에 비할 때 요즘의 애심활동은 기부의 의미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의문을 갖게 된다.

얼마전 필자도 소속된 집단의 배치에 따라 두가지 기부활동에 참가하여 생생한 기부현장을 기록할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하나는 애심김치담그기활동이였다. 말 그대로 우리가 담근 김치를 얼마간은 고아원에 보내고 나머지는 팔아 그 수입을 고아원에 기부하는 활동이였다. 그 날 활동에 스무명정도의 아줌마들과 소학교 2,3학년쯤 돼보이는 아이들 몇십명이 참가하였다. 물론 그 아이들은 모두 어머니들이 대동한 상황이였지만 어머니들이 하는 일은 솔선수범하여 김치를 담그거나 아이에게 김치 담그는 조리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카메라 샤타를 누르는 것이였다.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단 한명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온 어머니들이였다. 어머니들의 요구에 따라 포즈를 취하며 한바탕 떠들어대던 아이들은 결국 배추 한포기씩 대충 주무르다가 어느순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 애들이 제대로 버무리지 못한 배추는 우리 몇몇이 다시 손을 봐서야 그나마 포장단계로 넘어갔다. 그 애들에게, 그 어머니들에게 그번의 로동기부활동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가?

또 하나는 장애인료양원에 물품을 기부하는 활동인데 기부한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기부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갸우뚱하게 되였다. 사전조사를 거쳐 룡정시의 모 장애인료양원에 옷과 이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옷과 이불들을 모으게 되였다. 스무명이서 10상자를 채울 만큼의 물품을 모았지만 그중에는 별의별것이 다 들어있었다. 한가지 례를 들면 우리가 옷을 기부한다고 할 때 그 옷은 입는 옷이여야지 못 입는 옷이여서는 안된다. 우리가 못 입는 옷인데 시설에서 지내는 분들이라고 좋아라 하고 받아 입을가? 깨끗하고 입을 수 있지만 작아지거나 입기 싫어진 옷이라야만 받는 사람들이 좀 보완을 거쳐 입을 수 있지 않을가 싶다. 속되게 말하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집쓰레기를 처리하는 식이여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그건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애심기부라고 말할 수 없다.

보여주기 위한 기부와 상대에게 결코 필요하지 않는 기부, 이것은 습근평주석이 말한 실질적인 좋은 일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갈 미담이 아니다.

기부는 곧 베품이다. 옛날 경이전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요단강 근처에 두개의 호수가 있는데 하나는 사해(죽은 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헤브라이어로 ‘살아있는 바다’라고 불리우는 호수이다. ‘죽은 바다’에는 밖에서 물이 들어오긴 하지만 다른 데로 나가지는 않는다. 한편 살아있는 바다에는 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사람은 ‘사해’이고 베풀며 사는 사람은 ‘살아있는 바다’라고 볼 수 있다.

결혼후 3년의 ‘보리고개’를 넘어 필자 또한 직장에서 정식편제를 갖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베푸는 삶, ‘살아있는 바다’로 살기로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베풀기만 한, 그 베품의 의미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베품이였다. 우리는 먼저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한 가난한 가정의 아이를 돕기로 하고 매달 생활비로 200원씩 보내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내주는 돈은 별로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애의 부모들로 하여금 항상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필자를 대하게 해야 했다.

후에 한 유치원 원장이 아이를 무료로 유치원에 다니게 하고 한 애심인사가 애어머니에게 일할 곳을 마련해주면서 필자의 후원도 종지부를 찍게 되였다. 어쩌다 아이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검사 받고 링게르 한두번 맞을 값도 안되는 돈을 기부한 필자와 아이에게 부담없이 유치원 다니게 하고 어머니에게 재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그 분들의 기부는 차원이 다르고 의미가 달랐다. 그 후 우리가 두번째로 한 일은 집에 장서가 많다는 리유로 아이들이 맘껏 와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였다. 무료로 점심까지 제공하면서 책에 흥미도 갖게 하고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도서들도 맘껏 볼 수 있게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1년이 거의 되는 지금,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이 집에 찾아오는 리유가 책이 아니라 필자의 아이와 함께 놀기 위해서가 돼버렸다. 한마디로 이젠 더 이상 베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베풀었다고 생각하나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즉 의미가 없다면 그건 기부가 아니다. 보여주기 위한 베품이나 상대의 상황을 고려치 않고 멋대로 하는 베품이나 상대에게 필요 없는 것을 ‘기부’라는 미명하에 강행하는 것은 모두 참된 베품이 아니다. 사랑 만큼이나 지혜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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