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과 쓰리랑

2020-05-07 08: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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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손들 가운데 간혹 가다가 우리 말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있어도 아리랑만은 대부분 흥얼거린다. 아마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슬픈 일이 있어도 아리랑을 부르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도 아리랑을 부른다. 이 세상 넓은 땅 그 어느 곳에 흩어져 살아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누가 지었고 언제부터 불러온 노래인지 분명치 않다. 오늘날에 와서 세계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로 되였으나 아리랑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는 질문에 명확히 답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줄 안다.

아리랑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면서 아득히 흘러온 세월과 더불어 아리랑 멜로디는 어느덧 우리의 살과 피줄에 파고들어 맥박치며 우리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우리 가슴 안에 들어온 소리, 아리랑은 우리 선인들의 삶의 희로애락과 파란만장한 력사를 오롯이 담아온 삶의 가락임은 틀림없다.

오늘 굳이 아리랑 어원을 꺼내놓는 것은 우리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 뜻조차 우리는 지금 모르고 살고 있다는 점과 이로 하여 간혹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까닭에서이다.

청청하늘의 잔별처럼 각이한 아리랑 어원설을 펼치는 학자들의 주장이 저마다 달라 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오늘날 우리 문화의 현주소다. 이런저런 버전들을 다 제쳐두고 다만 우리 생각을 이 글에 적어 미래 세대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고 싶다.

금사(金史)문헌에는 ‘坡陀曰(阿懶), 大而峻曰(斜魯)’라는 기록이 있다. 산언덕은 아랄이라 적고 험한 비탈을 쎄루라 적고 있다. 만주어에서 ‘ala’는 언덕을 말하고 ‘sehehun’는 우뚝 솟은 산을 말한다.

몽골어에서는 산을 올이라고 하고 산 정상을 덱이라고 부른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덱과 올을 혼용하여 적어왔다. 몽골의 최초의 불경에서는 수미산을 수미덱 혹은 수미올로도 전해오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 덱은 데기로 함경도 방언에만 남겨있지만 조선반도 지명에는 달동네 토산(兔山) 등 다양한 지명이 변이되여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 산들은 지형학적으로 단성화산의 한 유형으로서 산세가 부드러운 언덕들로 이루어졌는데 사람들은 이런 산을 오름이라고 부른다. 제주도 오름과 몽골어 올, 만주어 알라는 모두 아리랑이라는 소리 뜻과 일맥상통한다.

중국 훈춘시에는 동아라(東阿拉村)라는 조선족마을 지명이 있는데 동네가 동쪽 산자락을 따라 듬성듬성 앉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19세기말, 20세기초에 아래깡동(연해주)으로 오가는 길목에 자리잡아 한때는 길손들로 북적거렸다.

중국 길림시 알라디(阿拉底村)마을은 력사가 깊은 동네이다. 최초에는 함경도 탈출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화전을 일구다가 청나라 관리들에게 붙잡혀 영고탑에 갇혀있다가 길림으로 강제 이주시키며 생긴 마을인데 산을 업고 동네가 앉았다고 알라디란 지명이 붙여졌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서 경상도 사람들이 집단이주하여 와서 다시 마을이름이 이어진다. 쓰리랑이라는 말과 뜻이 하나로 이어지는 수리봉 혹은 시리봉이란 지명은 연변과 조선반도에서 흔히 듣게 되는 지명인데 독수리 혹은 부엉이가 산다고 그 명칭이 붙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거개가 지세가 험준하게 솟은 산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만주어 ‘sehehun’, 몽골어 ‘sunder’와 뜻과 소리가 근접되여있다.

아리랑과 쓰리랑의 어원을 따지고 보면 결국 북방언어 계통에서 산이라는 큰 맥락과 하나로 이어졌다. 오늘날 아리랑 노래의 이러저러한 버전들은 그 옛날 산간지대의 세태와 정서를 촘촘히 엮어놓은 노래가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산천 곳곳마다 수많은 리별의 전설이 깃들어있고 그런 전설은 하나같이 비극적 사연들로 이어지고 있다. 1926년 나은규가 연출한 아리랑 영화는 비극미(悲劇美)가 관중들의 정서를 압도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산고개를 오르는 장면에서 아리랑 노래가 울려나오는데 아리랑이 의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속턴넬이 뚫린 오늘날에 와서 차들이 산 아래 땅속을 질주할 뿐 아리랑 고개에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선과 속도 자본 능율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개마루의 구불구불한 오솔길과 마을 취락문화들은 이미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로 전락되고 있다. 하지만 고개길에 얽히고 깃든 력사를 펼쳐보면 선인들의 굴곡진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거창한 우리 력사의 흐름에서 한줄기 작은 가닥을 더듬어보고 아리랑과 쓰리랑에 대한 서뿌른 단정은 경거망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리랑의 진실한 뜻에 한걸음 다가서려고 덤빈 시도는 유익한 일이다. 이는 아리랑 노래에 내려앉은 세월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무겁게 쌓이고 쌓여 이제는 그 뿌리를 알려고 또 그 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 나름 대로의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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