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과 고래

2020-05-21 08: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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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히 가로막힌 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두만강연안 화룡일대 산골짜기는 과거 선인들 삶의 주된 활동무대였다. 1860년대 함경도지역에 들이닥친 끔찍한 재해와 역병은 마침내 수많은 함경도사람들이 국경을 박차고 두만강을 넘어 눈 덮인 산악지대로 스며들어왔다. 이들은 접근이 힘든 산골짜기와 데걱지에 숨어살면서 따뜻한 벌판으로 내려오지 못하였다. 산악민족 대부분 그러하듯이 타자를 적대적으로 여겨 골짜기 입구까지 막아가며 철저하게 페쇄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이들의 력사는 오늘날까지도 어둠 속에 묻혀있다. 거기에 도로 발달이 더디고 왕래가 많지 않았던 그 시기 두만강류역 화전민의 거주지와 수치는 애당초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옛날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군데군데 화전 밭을 일구며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만 했던 선인들의 그 고단한 삶의 흔적은 화룡땅 산골짜기마다 고스란히 묻혀있다. 함경도 방언에는 산골짜기를 뜻하여 고래라는 말이 있다. 파밭고래, 불붙이고래, 삼밭고래, 싸리밭고래, 봇밭고래, 감자고래, 누베고래, 빼래밭고래 등이다. 이런 고래에는 어구지, 여불대기, 막치기, 진고래, 독고래와 같은 다양한 낱말들을 흔하게 써왔다. 해와 달을 거듭하면서 이런 크고 작은 고래에서 얼기설기 실피줄처럼 뻗어나와 혈관처럼 화룡땅 곳곳에 스며들며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였다. 광복이 되면서 조, 보리, 메밀, 감자가 자라는 산골짜기로부터 벼가 자라는 수전 벌판으로 그리고 다시 농촌에서 시가지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세월 동안 화룡땅 골짜기마다에 숨겨진 피눈물로 얼룩진 땅 이름들은 서서히 력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오늘날에 와서 두만강류역 옛 화룡지역 중국어 지명들을 살펴보면 이도구, 삼도구, 육도구 등 수자 라렬식으로 두리뭉실하게 지명을 명명한 데 반해 조선어 지명들은 큰 나무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처럼 하나의 골짜기에서 펼쳐나간 곁 고래들조차 빠짐없이 고유어지명으로 명명하여왔다. 홀몸으로 화룡일대를 들어왔던 타민족들과 달리 온 가족을 거느리고 들어선 조선인들은 지팡살이를 하면서 보리밭데기, 석마돌어귀, 개치기 등 토박이 땅이름으로 지칭하였는데 나중에 이런 지명이 한자를 음차해서 표기된다. 이를테면 골짜기, 막치기 뜻을 지닌 개치기를 개척리(開拓里)로 적은 것들이다.

오늘날 세간에 알려진 것은 화룡 지명이 달라자 화룡욕에서 기원되였고 만주어 호로(holo)에서 유래되였다는 게 통설로 되였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만큼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지만 사실 이런 해석은 정확한 풀이가 될 수 없다. 만주어 호로(holo)를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함경도 방언 고래와 일맥상통된다. 하나의 언어밑층에서 파생되여 고래와 호로(holo)로 나뉘였지만 산골짜기라는 뜻에서 그 맥락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두만강지역이 다양한 문화의 용광로라는 점을 감안하여보면 화룡지명은 력사가 깊은 지명이다.

만주어 호로는 골짜기와 거짓말, 밭고랑이라는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여있다. 거짓말은 표준어 홀리다로 나타나고 함경도 방언에서 후랄친다, 홀리붓기로 파생되여있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구라친다로 변이되여있다. 함경도 방언 고래는 구들고래, 술고래와 같은 낱말을 낳았다.

화룡(和龍) 지명은 함경도 방언 고래와 만주어 호로(holo) 소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언뜻 보면 화(和)와 룡(龍) 두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문화 냄새가 진하게 풍겨 꺼림직하다. 시초에 한자지명 ‘火狐狸 火龍’으로 새겨왔지만 19세기말 20세기초에 들어와서 화룡(和龍)으로 표기가 굳어졌다. 여기에서 화(和)자는 단순히 야마토시대를 지칭하는 차원을 넘어 일본을 가리키는 말로서 와후쿠(和服), 와시(和紙)처럼 와(和)자는 일본 고유전통이라는 의미가 숨겨져있다.

우리 선인들이 살다간 흔적으로서 화룡 지명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만 오랜 세월 속에서 이처럼 타자에 의하여 제멋대로 찢어지고 구겨지고 비틀어지여 오늘까지도 반듯하게 정리되지 못한 채 옳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고향이 떠남의 장소로 되고 대도시가 정착지로 바뀌여지는 오늘날에 와서 선인들의 삶이 묻혀있는 시골 지명들은 이제 아득히 먼 땅 끝, 작은 모서리에 매달려 가물가물 깜빡인다. 그 암울한 시대 화룡땅 이름 없는 골짜기에 엄동설한 밤하늘 아래 서러운 별찌로 사라진 선인들의 혼은 아직도 길손들 손을 붙잡고 여기 어딘가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누워있다고 말을 건네오고 있다.

봄이 오면 선인들의 피눈물이 방울방울 맺힌 화룡땅 골짜기마다에는 연분홍 천지꽃이 어김없이 떨기떨기 피여난다. 골짜기마다에 극한으로 연소되여 살다간 함경도사람들의 뜨거운 삶을 닮아 천지꽃이 피빛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오늘도 산골짜기를 가득 메우는 산새들의 피타는 울음소리는 천지꽃을 붙들고 화룡 지명에 맺힌 한 많은 이야기를 애타게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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