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데국과 수제비

2020-06-04 08: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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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이 넉넉지 않던 시절 안방 가득 오손도손 앉아 뜨끈뜨끈한 뜨데국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가던 그 시절 뜨데국이야말로 솔직해서 살림살이 속내까지 훤히 비치는 과거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음식이였다. 몰론 요즘 와서 간편한 라면이 뜨데국 자리를 빼앗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감자와 파 따위를 넣고 끓인 뜨데국의 맛은 라면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뜨데국을 수제비라고 부르고 그 어원을 학자들에 따라 손을 뜻하는 한자 수(手)와 접는다는 의미의 ‘접(接)’이 합쳐져 ‘수접(手接)’이라는 설과 수저비(水低飛)로 풀이하는 설로 나뉜다. 조선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뚝뚝 뜯어 넣는다는 말에서 뜨데국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풀이한다.

허나 뜨데국과 수제비는 지난 세기에 들어와서 밀가루로 반죽하였지만 력사를 거슬러올라가 따지고 보면 메밀가루로 만들어진 것이다. 메밀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북방 대륙계의 한해살이 작물이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으므로 가물어서 일반 작물의 재배가 어려울 때나 척박한 땅에 파종하여왔다. 잡초억제기능 타감작용이 강해서 메밀은 화전농사에 많이 재배되였다. 서늘하고 높은 지대에서 자란 메밀 질과 맛이 좋아 예로부터 함경도산 메밀은 이름이 있었다. 곡식의 저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대부분 가루를 만들어 보관하였는데 대체로 북방에서는 메밀 속껍질을 섞어 가루가 검은색을 띠는 데 반해 남부에서는 채로 속껍질을 제거하여 가루가 하얀색을 띤다. 1934년 7월 13일자 《매일신보》 기사에는 검정 메밀가루(黑麵)로 된 국수를 먹고 8명이 중독된 사건이라고 나온다. 이 기사를 보면 평양에서는 메밀 속껍질이 붙은 채 빻은 가루로 만든 면발을 시꺼멓다는 뜻의 ‘흑면(黑麵)’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언어연구는 오늘날까지도 거대한 빙산처럼 수면에 드러난 부분은 극히 적고 거개가 수면 아래 잠긴 상황에 놓여있다. 뜨데국과 수제비라는 말도 빙산과 마찬가지로 수면 우에서 보면 두개의 각이한 빙산처럼 분리되여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있다.

만주어사전에서는 ‘sacu’는 메밀의 하얀 가루를 말하고 ‘deide’는 메밀의 속껍질이 섞인 까만 가루를 뜻한다. 여기에서 ‘sacu’는 우리 말 수제비와 대응되고 ‘deide’는 우리 말 뜨데국으로 대응된다. 다시말하면 메밀이란 큰 의미의 덩어리가 언어 밑층에 잠겨있고 뜨데국과 수제비라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치 빙산조각처럼 수면 우에 나뉘여 로출된 것이다.

메밀은 조선반도 모든 밭작물중에 가장 짧은 생육기간을 필요로 하므로 반도 북부 특히 함경도에서 가장 오래 재배되여온 대표적인 화전작물이다. 화전으로 일군 밭에는 나무와 풀들이 탄 재가 좋은 양분으로 제공되여있어 여름작물을 수확한 뒤에도 그루갈이 작물로 재배되여왔다. 조선반도 그 어느 지역보다도 경작의 일반적인 위도한계가 훨씬 높이 올라와 있는 함경도와 연변 일대 거친 산악지대에서 폭설과 같은 각종 혹독한 기후를 견뎌내면서 화전민들은 메밀과 함께 악착같이 살아남아 마침내 화전밭을 영구경작지로 탈바꿈하여 가면서 연변 촌락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뜨데국의 음식력사에는 연변땅에서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 선인들의 눈물겨운 이민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오늘날 와서 열콩은 강낭콩으로, 천지꽃은 진달래로, 비술나무는 느릅나무로 말끔히 얼굴을 바꿔버리고 등장하는 연변 언어풍토의 이상기후로 하여 뜨데국이란 고유의 말도 사투리 딱지가 붙어져 표준어로 고상하게 포장된 수제비란 말에 밀려 그 설자리를 차츰 잃어가고 있어 그 옛날 뜨데국에서 느끼던 정취는 날이 갈수록 희석되여가는 기분이다.

일찍 1961년 쏘련의 가가린은 지구라는 큰 우물 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광활한 우주선에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지구는 푸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언어연구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자신이 처한 시간과 공간적 제한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자의 언어가치를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로 고정된 틀 안에 얽매여있다. 수제비와 뜨데국이란 말은 단순히 표준어와 사투리라는 그릇된 자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두쪽으로 갈라진 구리거울이 하나로 이어지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옛 전설이야기처럼 두 단어를 포용하여 하나로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 언어의 간격을 좁히고 언어통일에로 나아가는 길로 한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주어라는 명칭은 17세기에 들어와서야 불리워지기 시작한 이름으로서 결코 만족만 독차지하고 썼던 타자의 언어가 아니다. 만주어 력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우리 민족을 포함한 수많은 북방 소수민족들이 함께 공유하였던 언어로서 우리 모두의 귀중한 언어유산이다. 지금 수많은 북방 소수민족언어는 치렬한 언어전쟁에서 이미 그 자취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연변과 함경도 방언은 거세찬 력사의 파도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복잡하게 얽힌 우리 언어의 비밀들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관건적인 실머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 언어연구 시야를 폭넓게 펼쳐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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