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있는 것을 위해□ 림현호

2020-11-06 08:49:32

나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은 아이였다. 그중 하나가 댄스였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는 연변에 불어닥친 첫번째 한류의 열풍으로 인해 댄스에 심취해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우상들처럼 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눈에 나는 단지 공부를 등한시하는 ‘불량소년’이였으니까. 그래서 긴 머리는 박박 잘렸고 통 너른 바지는 금지품목 1호였다.

참고 참았던 욕망이 뚝 터진 홍수마냥 밀려나온 것은 대학교시절이였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던 나는 비록 기초 뿐이긴 하였지만 발레도 경험해보았고 민족무용, 치어리딩 댄스, 스포츠 댄스, 힙합 댄스 등 학교에서 활동중인 모든 동아리에 가입하여 그야말로 미친 듯이 리듬에 몸을 실었다.

어느덧 까망 짧은 머리는 어깨까지 오는 노랑머리로 변하였고 통 너른 바지는 일상이 되였을 즈음, 나는 힙합에 미쳐있었다. 경기를 3일 앞두고 발목에 닭알 만큼이나 큰 혹이 부어올라 최소 한달은 쉬여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을 때도 나는 차라리 무대에서 쓰러지겠다고 호언했었다. 그때는 댄스가 나의 전부였다.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언 10여년, 노랑 긴 머리는 어느새 까망 짧은 머리로 되돌아왔고 귀에 뚫었던 귀걸이 구멍들중 2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였다.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배불뚝이 아저씨로 지내오던 어느 날, 지인의 요청으로 우연히 댄스 동아리 모임에 참여하게 되였다. 오래만에 찾은 무용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내가 한창 댄스에 미쳐있을 때는 올드스쿨 힙합이 대세였는데 녀성들이 주로 추던 재즈 힙합이 어느새 대세가 되여있다는  것 역시 낯설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매일같이 해왔던 기본동작이 어색하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어도 마냥 좋았다. 음악이 좋았고 비트에 맞춰 구석구석 살아나 웨쳐대는 근육들의 아우성이 좋았으며 점점 리듬에 익숙해지는 부실한 몸뚱이마저 좋았다.

이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란 말인가? 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어도 쿵쾅대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기처럼 사라진 줄 알았다. 그냥 청춘에 잠간 기대여 쉬다 멀리 날아가는 철새 같은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였다. 그것들은 그냥 내 안에 나와 함께 있었다. 숨도 못 쉬고 죽은 것처럼 그렇게 시들어버린 젊음의 끝자락을 잡고 어떻게든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러주기를 악착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정이라는 작은 이름으로 말이다.

문득 첫사랑이 떠올랐다. 물론 떠오른다고 뭐든 다할 수는 없겠지만 젊음이 모든 것을 불 살라 키워왔던 것중 하나 정도는 다시 해도 되지 않을가 싶다. 나이가 뭐? 축 처진 엉덩이는 엉덩이도 아니란 말인가?

집으로 돌아가면 어딘가 처박혀있을 귀걸이나 찾아봐야겠다. 기념으로 고이 모셔두었던 통 너른 힙합 바지도… 아직도 열정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그깟 부실해진 무릎이 문제겠는가?

나는 지금 ‘불량아저씨’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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