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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을 잃으면 재기의 기회마저 잃게 된다

—명태건어에서의 관지촌과 투도진의 판이한 결과로부터

  • 2007-11-06 16:31:00
지난 세기 90년대 초, 편벽한 산간지역에 위치한 연변지역의 농민들은 정보가 잘 통하지 않고 교통이 불편하고 경제구조가 단일해 땅에만 매달릴수밖에 없었다. 특히 기나긴 겨울철이 되면 농민들은 손에 일감이 없어 마작이나 화투치기로 소일했다.

이런 와중에 화룡시 룡성진 관지촌농민이 착안한 건어부업은 일거리가 없어 놀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에게 부업거리를 제공했다. 북방에 위치한 연변지역은 겨울철이 길고 일교차가 커 건어산업을 하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또한 말린 명태수요량이 커 시장잠재력도 아주 컸다. 1990년--1991년 겨울, 김창길농민은 한번에 백여킬로그람씩, 두차례나 명태를 말리웠는데 각종 비용을 제하고도 만여원의 수입을 올릴수 있었다.

원 관지촌 촌장이였던 박창헌씨에 따르면 김창길씨가 건어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자 이듬해 겨울에는 관지촌의 10여호에서 건어부업에 나섰는데 이들도 100% 이상의 리윤을 보게 되였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그 이듬해인 1992년--1993년 겨울철에는 관지촌의 80%에 달하는 170세대에서 건어부업에 뛰여들었다. 당시 말린 명태수요량은 아주 컸는데 거간군들은 말린 명태를 한자루 한자루씩 통채로 들어갔고 채 마르지도 않은 밖에 걸어놓은 명태도 벗겨서 가져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거대한 시장수요를 보며 일부 사람들은 눈앞의 리익에 눈이 멀게 되였다. 이 촌의 몇몇 사람들이 명태자루속에 벽돌장을 넣어 거간군에게 넘겨주었던것이다. 채 마르지 않은 명태를 거간군들에게 판것도 화근이 되였다. 점차 관지촌 사람들이 신용이 없다는 소문이 시중에 퍼지게 되였다. 한마리의 미꾸라지가 개울물을 흐리운다고 량심을 어긴 몇몇 사람들때문에 전 촌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것이다. 박창헌씨는 기자에게 당시 사태가 그 정도에까지 미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부업이기에 누구도 조직하고 인도하지 못했는데 이는 촌지도부를 비롯한 상급부문의 커다란 실책이였다고 했다.

신용을 잃은 대가는 너무도 처참했다. 거간군들이 찾아오지 않아 농민들이 직접 시장에 내다 팔거나 거간군들을 찾아나서야 했다. 1996년--1997년 겨울에 말린 명태를 2명의 농민이 거간군을 찾아 팔아주기로 했는데 이 거간군들은 말린 명태를 거두어가고는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이때 피해를 입은 가구가 수십여가구 되고 피해액은 40여만원에 달했다. 자금이 결핍해 동태 한톤씩 말리우던 박창헌씨도 그때 7000여원을 떼우고 건어부업을 그만두었다 한다. 그 거간군들과 거래했던 촌의 두 농민은 마을에 있을수가 없어 가족을 이끌고 한밤중에 가만히 촌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워낙 자금밑천이 튼실하지 못했던 농민들은 그와같은 타격을 이겨낼수가 없었다. 건어부업에 나섰던 170여세대 가구중 대부분 떨어져나갔다. 1997년 겨울부터 관지촌에서 1톤~2톤씩 동태를 말리는 가구는 30여세대밖에 되지 않고 한해 10톤좌우씩 동태를 말리는 가구는 15호밖에 되지 않았으며 한해 50톤~60톤씩 건어하는 가구가 5집에 달했다.

관지촌과는 달리 화룡시 투도진의 명태건어부업은 줄곧 활황세를 보였다. 룡원촌의 서기 겸 촌장인 김옥산에 따르면 투도진에서 지금까지 명태건어를 견지하고있는 농민은 560여세대에 달하는데 룡원촌의 경우 60% 이상에 달하는 210가구에서 건어부업을 계속하고있다고 한다. 전 진으로 건어부업에 내려오는 대부금도 해마다 400만원에 달했고 지난해 겨울에는 1억원에 달했다. 진에서는 투자유치로 2개의 랭동창고를 건설했고 투도진의 건어전망을 보아낸 여러 기업가들도 이 진에 찾아와 랭동창고를 건설했다. 현재 이 진에는 4개의 랭동창고가 있는데 이제 또 하나의 랭동창고가 들어서게 된다.

명태건어부업으로 투도진에서는 3000여명 잉여로력의 일자리를 해결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치부하게 했다. 투도진에서 맨처음으로 명태건어에 나섰던 룡원촌의 손금순녀성은 처음 민식을 판 돈 3000원으로 명태건어에 나섰는데 당해에 2만 1000원의 순수입을 올렸고 현재는 수십만원의 자산을 갖게 되였다. 손금순씨에 따르면 이 진에는 명태가공업으로 자가용을 갖춘 집이 13가구나 된다고 한다.

명태가공업도 하나의 엄연한 산업이다. 신용을 잘 지키면 투도진처럼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수 있지만 신용을 저버린다면 다시 재기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되는것이다.

글/사진 김명성기자

사진설명: 아직 초겨울이지만 투도진에서는 벌써 건어에 나서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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