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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라촌의 억척녀촌장

—훈춘시 양포만족향 동아라촌 안춘희주임에 대한 이야기

  • 2010-09-13 21:38:53
<<안주임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오늘의 동아라촌이 있겠습니까? 그가 진날 마른날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한 덕분에 우리 마을이 크게 변했고 생활도 이렇게 꽃펴나고있답니다.>>

훈춘시 양포만족향동아라촌 촌민들의 촌주임 안춘희에 대한 칭찬이다.

촌민들이 그토록 자기네 촌주임을 칭찬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었다.

2007년 초봄, 그가 촌주임으로 선거될 때는 이미 50이 넘은 농촌부녀였다. 게다가 유선암과 자궁암으로 시달린지 이미 5~6년이 넘은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촌주임경선에 참가한 그의 용기와 신심에 감복하면서도 한켠으로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동아라촌의 당시 실정때문이였다.

동아라촌은 280여호에 900여명 인구 그리고 한족, 만족, 조선족이 함께 살고있는 민족련합촌이였다. 그러다보니 자연 문제거리도 많았고 모순충돌도 많았다. 촌민수입이 적고 촌건설이 뒤처져있었고 촌민들의 정신문화생활은 운운할 여지조차 없었다. 게다가 쩍하면 <<고발대오>>가 향정부와 시정부로 빈번하게 드나들다보니 그야말로 원근에 소문난 문제거리 촌이였다. 이런 촌에서 근 20년간 부녀주임사업을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온 안춘희씨 본인 역시 근심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내가 과연 정말 잘해나갈수 있을가? 아니다 난 꼭 잘해낼수 있어. 대공무사하고 매사에 공평하며 언제나 촌민리익부터 앞세우며 해나가노라면 그들도 나를 믿고 따를것이다.>>

결심은 확고했지만 정작 일을 할려고보니 막히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훈춘시내와 15킬로메터 떨어져있는 반산간지대에 위치해있는 이 촌은 전형적인 3대작물 즉 벼, 옥수수, 콩 재배지였다. 그러다보니 촌민들의 경제수입 역시 제한되여있었다.

<<그래 길부터 닦자. 우선 길이 통해야 희망이 보인다.>>

그는 시재정, 교통 등 부문과 조률하고 자체자금을 모아 길닦이에 나섰다. 145만원의 자금을 쟁취하여 6킬로메터에 달하는 콩크리트포장도로를 닦고 또 자체로 10만원을 모아 마을길에 전부 자갈을 펴 5개 자연마을을 무난히 다닐수 있도록 소통시켰다. 이어 그는 그 여세를 몰아 농토수리건설에 달라붙었다. 수원이 결핍하여 해마다 모내기가 처져 수확고에 영향주고 물길이 트이지 못하여 장마가 진다하면 농작물이 물에 잠겨 생장세가 환만하던 현상을 개변하려고 시도한것이다. 그는 동분서주하며 자금 27만원을 모아 두개의 우물을 파고 촌민들을 동원하여 거도와 배수구 3000여메터와 기계경작도로 1500여메터를 뺐다. 하여 그제날의 습지밭이 량전옥토로 변하고 촌민들의 얼굴엔 풍수의 희열이 꽃펴났다.

<<안주임이야말로 녀중장부라니까>> 촌민들은 저마다 안춘희의 일손씨에 감복하였다.

그러나 안춘희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갓 부임했을 때 촌에는 18만원의 묵은 빚이 있었다. 촌민들의 경제사정 역시 여의치 않았다. 전통적인 량곡생산으로는 치부하기 어려웠다.

여러모로 머리를 쓰며 촌민치부의 길을 모색하던 그는 남들이 불모의 땅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 황산황지에 눈을 돌렸다.

<<보배산을 끼고 돈걱정을 하다니. 그야말로 장님이 헛막대질하듯 이제껏 헛역사질만 하였구나..>>

그는 외지의 삼농들을 인입하여 황산을 도급주고 촌민들을 부추켜 황지를 개간하게 하였다. 동시에 주위의 탄광과 인삼장을 찾아다니며 동아라촌 농민들을 계절공으로 써달라고 사정했다. 또 촌의 풍부한 야산자원을 리용하여 소사양과 양사양을 적극 벌렸다. 하여 지난 3년 사이에 소사양호가 6~7호 생겨났는데 사양규모는 20~30마리에 달하였다.

올해부터는 촌에 남새재배기지를 앉히고 유리한 교통을 리용하여 시가지 아침시장에 남새를 내다팔았는데 그수입이 매우 짭짤하였다.

안춘희는 또 촌의 유휴로력 전이에도 공력을 들이였다. 그는 주동적으로 전문기술학교와 련계하여 촌민들에게 기술강습을 시켜 로무에 내보냈는데 지금 이 촌에는 130여명의 로력이 국내외로무송출에 나섰다. 그리고 집에 있는 로력 역시 계절공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 수입만도 1년에 100여만원에 달하고 있다.

촌민들의 호주머니가 불어나면서 생활에 대한 요구 또한 높아졌다. 안춘희는 촌민들의 생활수준을 제고하려면 마을청결도 중요하지만 그네들의 문명의식 수준부터 제고하여야 한다며 마을 회관을 새로 개조하고 농가책방을 꾸렸다. 시부련회에서는 해당 부문의 협조하에 수백권의 서적을 이 촌에 기증하였다.

촌면모개조에도 큰 힘을 넣었다. 그는 촌민들을 동원하여 촌도로 량켠에 4000여그루의 나무를 심고 쓰레기장을 만들어 오래동안 썩어오던 쓰레기무지를 정리했으며 위생청결, 록화수관리제도를 내오고 위생청결대와 쓰레기청리대를 설립하여 마을환경을 일신시켰다. 또 <<10성급문명가정평의활동"을 벌려 부녀도박금지회 등 군중자치조직을 설립하여 도박, 봉건미신 등 불량악습을 억제하고 정신문명건설을 촉진하였다.

<<그동안 애로가 많았지만 군중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그 어떤 난관도 무난히 넘기게 되였습니다. 앞으로는 새농촌건설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진행하여 우리 촌을 진정 살기 좋은 사회주의 새농촌으로 건설하는데 미력이 나마 이바지 하렵니다.>>

그의 굳은 결심이였다.

박득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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