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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자신의 두 손으로 인생 설계해나가다

훈춘시 귀향창업인 우민

  • 2018-07-10 08:27:54

설계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고향에 돌아와 분발하며 창업의 길을 개척한 청년 우민이 뭇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어려서부터 회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설계사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 2003년 초중을 졸업한 우민은 장춘에 가서  전문 설계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줄곧 자신이 뛰여나다고 생각해온 그였지만 뛰는 놈 우에 나는 놈이 있다고 그의 주변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았고 자신의 모자라는 점들 때문에 기를 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민은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열심히 배워 수회(手绘)pop와 평면설계를 익혀나갔다. 우민은 여가시간을 리용하여 장춘아태부원, 구아매장 핸드폰매대에 포스터를 팔면서 학비를 마련하고 꾸준히 기량을 닦았는데 그 사이 장춘 제1회 수회pop 설계 금상을 받아안아 최년소 금상 수상자로 되였고 20세 때에는 사무 자동화 교사자격증과 수회 pop교사자격을 따냈다.

집안의 막내딸인 우민은 매년 훈춘에 있는 집에 돌아올 적마다 외지로 다시 떠나기 아쉬워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미련은 그로 하여금 수파설계회사의 높은 대우도 마다하고 그동안 배웠던 기술을 바탕으로 결연히 귀향창업의 길에 올랐으며 2006년 훈춘작은물고기 pop 설계실을 설립했다.

창업초기 그는 20평방메터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때마침 금방 개장한 훈춘시 억객룽 슈퍼마켓에서 수회pop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는데 작은물고기 작업실에 찾아와 그가 만든 작품을 보고는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후 려인화장품, 옥산호호텔, 본초약방과 의류매장들에서도 장기협력을 제의해왔다. 하지만 우민은 난관에 봉착했는데 pop설계가 모두 수제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하여 주문을 다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사업이 한창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그녀는 영업을 잠시 중단하고 연길 광고회사에서 pop설계 소프트웨어 조작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학습초기 설계 소프트웨어 조작방법을 거의 잊고 있었던 그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워나가야 했다. 짧디짧은 1년 동안 우민은 여러가지 소프트웨어 조작을 능란하게 하고 풍부한 경영리념을 터득했다. 그동안 배운 지식과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그는 훈춘에 돌아가 또 한번 창업에 투신했다.

한번의 창업에서 경험을 쌓은 우민은 수회pop설계로부터 여러 류형의 평면광고 설계도 접수했다. 높은 수준을 앞세운 그의 설계 제작은 훈춘시에서 차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업무가 발전함에 따라 우민은 훈춘의 많은 료식기업들이 장춘, 연길에 가서 메뉴를 제작해온다는 정보를 장악하고 경영범위를 료식 광고업으로 넓혔다. 또한 해마다 설계와 새로운 개념의 촬영을 학습함으로써 실무수준을 부단히 끌어올렸다.

몇년 동안 우민은 사업의 발전 뿐만 아니라 공익사업과 빈곤지역돕기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왔다. 2016년에 농촌에서 온 견습공이 그의 작업실에 설계를 배우러 찾아 왔을 때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정을 료해한 우민은 그의 학비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성들여 가르쳐주어 그가 기술을 잘 장악하게 했다. 태풍 ‘라이언룩’의 영향으로 주변의 여러 농촌이 피해를 입고 농민들이 대피한 상황이 발생하자 그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곽밥, 광천수 등 물품들을 안치점에 보내주었다.

리송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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