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퇴치사업, 단 한명도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

2019-04-15 09:25:33

지난 12일 기자가 찾은 돈화시 청구자향 쌍정자촌은 연길시에서 고속도로로 1시간 30분을 내처 달린 후 다시 아찔한 산길을 따라 1시간 30여분, 울퉁불퉁한 농촌도로를 10여분간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 ‘오지’에 촌제1서기로 부임된 연변림구중급법원 기관당위 전직 부서기 박파는 촌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촌면모를 개변시키고 촌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려주고 있었다. 부임 초기에 “촌민들에게 만족스런 빈곤해탈 답안지를 제출하련다.”던 그의 언약은 실제행동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문제해결로 촌민과의 거리 좁혀

지난 2016년 3월, 조직의 배치로 쌍정자향 제1촌 서기 겸 빈곤층 부축 사업소조 조장으로 파견된 박파는 뇌경색으로 받던 병치료를 서둘러 마치고 쾌적한 사업환경을 뒤로한 채 곧장 촌으로 향했다. 당시 쌍정자촌은 위치가 편벽하고 뚜렷한 산업우세가 없는 데다 대부분 중장년층이 외지로 로무를 떠난 상황으로 촌 집체경제 수입은 2만원에 불과한 반면 부채는 20여만원에 달했다.

"도시에서 온 서기가 어찌 촌의 상황을 헤아리겠소, 농촌 파견 경력에 '명분'만 얹고 돌아갈 게 뻔하지… " 부임 초기, 대부분 촌민들의 우려였다. “촌의 상황을 파악하고 촌민들의 사정을 료해하기 위해 촌지도부의 서면자료에 의거하는 대신 촌민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박파는 부임 첫날부터 촌민들의 어려움을 료해하고 거처가 춥다는 ‘핑계’로 촌민들의 집에 묵으면서 스스럼없는 관계를 맺었다.

한차례의 방문에서 박파는 32년전 촌에서 촌민 장모와 림지 도급 계약을 맺은 후 지난 2015년 도급 기간이 찼지만 촌에서 회수하지 못하고 촌 집체경제와 촌민들의 리익에 손해를 끼친 사실을 료해했다. 그는 상급에 이 사실을 회보하고 촌민들의 소송을 도와 149 헥타르에 달하는 촌 집체림지를 추징했는데 현재 매년 촌에서 받는 공익림지 보수비용만 2만 4800원에 이르고 있다. ‘림지징수’ 사건은 촌민들이 박파에 대한 신임이 두터워진 계기로 되였다.

전에 쌍정자촌의 도로는  ‘마른 날에는 흙먼지가 날리고 궂은날에는 흙탕물투성이’의 골치거리로 린근촌에서도 유명했다. 촌에 머무르면서 장화를 신지 않고는 집문을 나설수 없는 상황을 체험한 박파는 도로개선 공사를 기초시설 건설의 첫자리에 놓고 4.142 킬로메터의 농촌도로를 포장하고 교량 1개와  배수구 3개를 신축하여 촌민들의 출행난을 해결했다. 2016년까지 쌍정자촌 촌민들은 우물물을 길어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수리부문과 적극 조률해 촌에 수도물을 보급하고 식용수안전을 보장했다. 촌민들이 전기사용난을 겪고 있는 상황을 료해한 그는 전력부문과 소통하여 20킬로와트 규모의 변압기를 200킬로와트로 교체하여 생활용 전기 부족난을 해결해주었다.  이처럼 그의 촌 발전계획에는 항상 촌민들이 반영한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일순위로 매겨져있다. 현재 촌민들의 반영 차수가 가장 많았던 수세식 공동화장실과 목욕탕 건설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처음 쌍정자촌을 찾았을 때 박서기는 촌민들과 함께 밭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촌민과 서기를 분간할 수 없었지요.” 청구자향 부향장 왕위는 박파를 만날 때의 사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산업발전 빈곤퇴치의 원동력

부임 초기, 서류에 기록된 쌍정자촌의 빈곤호는 37호, 62명으로 빈곤 발생률이 12%에 달했다. 박파는 촌의 전통산업을 승격시켜 우세를 갖추고 다원화 발전을 도모해 촌민들을 치부의 길로 이끌어갈 구상을 무르익한 후 능력이 있는 적임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차례 돈화시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촌민 강전해를 설득하여 귀향시키고 ‘지농검정귀비섯기지’를 세우도록 부축했다. 이 기지는 매년 촌집체경제에 1만 5천원의 수익을 안겨준 동시에  60~70명의 촌민에게 일자리를 마련하여 촌민당  9천여원의 부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촌지도부의 도움으로 판로가 확보되니 올해 50만원을 투입하여 기지규모를 확장하고 설비를 새로 들여올 계획입니다. 촌민들의 수익증대에 일조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강전해가 산업발전에 신심을 보였다.

다년간 쌍정자촌에서 생활한  왕옥강, 고옥련 부부는 창업의욕은 있었지만 외지 호구이다 보니 창업에서 손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 정황을 료해한 박파는 그들의 호구이전을 도와주고 ‘옥련연변소사양합작사’를 세우도록 이끌었다. 현재 촌의 부분적 촌민들이 농한기에 연변소사양합작사에서 일하며 수익을 늘이고 있다.

빈곤호인 류현비는 촌의 소문난 ‘게으름뱅이’로 정부의 최저생활보장금으로 부녀가 근근득식해왔다. 박파는 촌민들이 꺼리던 류현비의 집을 스스럼없이 방문하면서 부녀의 생활난을 조사했다. 지난 해 류현비의 딸은 녕파 연변 동서부빈곤층부축 협력대상에 힘입어 녕파에서 취직하고 매달 4천여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류현비도 촌의 수세식 화장실과 목욕탕이 완공되면 매년 2천여원의 보수를 기약하고 청결공으로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생활하는 데 아무런 뒤걱정이 없습니다. 린근 촌에서도 저희 촌 촌민들을 부러워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듭니다.” 일전 위험주택 개조가 끝나 새 주택에 이사한 류현비가 말했다.

류현비를 마지막 사람으로 지난 해 말, 쌍정자 촌의 26명의 빈곤호가 모두 빈곤에서 벗어나고 촌집체경제수입은 40만원을 웃돌았다. 현재 빈곤호 모두가 중병의료보험과 신형농촌합작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최저생활보장을 받고 있다.

“빈곤 퇴치사업에서 단 한명도 대오에서 떨어지게 해선 안됩니다. 빈곤해탈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촌민들과 한마음 한뜻이 될 때에야 실현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 해 빈곤퇴치 성과를 공고히 하여 쌍정자촌 촌민들의 생활수준을 전 시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하렵니다. ” 그는  빈곤퇴치 난관공략에서 견결히 승리를 이루련다고 토로했다.

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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