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특수 상대성리론 해설서 쓴 신동

2019-04-24 08:21:47

위대한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천재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파울리처럼 일찍부터 물리학계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찍부터 파울리를 눈여겨보고 파울리가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조수로 채용했던 괴팅겐대학의 교수 막스 보른은 후날 파울리를 이렇게 평했다.

“괴팅겐에서 내 조수로 있을 때부터 나는 파울리가 오직 아인슈타인에나 비견할 만한 천재임을 알았다. 사실 그는 아인슈타인과는 완전히 다른 류형의 사람이라서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하게는 결코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순전히 과학의 관점에서라면 파울리가 아인슈타인보다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

1900년 4월 25일, 볼프강 파울리는 오스트리아 윈의 유명한 유태인 과학자 집안에서 태여났다. 그의 아버지는 윈대학 화학교수로 국제적 명망이 있었고 그의 대부 마흐는 유명한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였다.

파울리는 매우 총명해 어느 날 숙모가 파울리와 산책하며 “우린 다뉴브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우에 있어.”라고 말하자 네살인 파울리는 “아니야. 이곳은 다뉴브 운하로 흐르는 비엔나 운하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리론을 발표했다.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조차 난해한 수학과 광범위한 개념으로 인해 완전히 이 리론을 리해하지 못했는 데도 불구하고 19세인 파울리는 237 페지 특수 상대성 리론에 관한 해설서를 썼다. 아인슈타인조차 이 해설서에 감탄을 했고 아직까지도 최고 특수 상대성 리론 교과서로 인정된다. 파울리는 수학과 과학에서는 뛰여났지만 그외 과목에서는 소홀히 해 중간 정도였다고 한다.

1918년, 파울리는 양자력학의 선구자이며 리론 물리학자인 아놀드 조머펠트 교수가 있는 뮨헨대학에 입학했다. 조머펠트는 파울리와 짧은 대화를 한 후 파울리에게 가르칠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머펠트는 상대성 리론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는데 파울리의 상대성 리론 지식에 깊은 인상을 받고 처음엔 공동저자로 글을 기재하다 후에 원자 물리학으로 바빠지게 되자 그 프로젝트를 파울리에게 넘겼다.

파울리는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고 필요한 강의외에는 듣지 않았다. 밤에는 까페와 술집에서 커피와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치며 예술이며 다양하게 즐겼다.

1920년, 조머펠트의 조수가 되여 신입생인 배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여났지만 성격은 반대였다. 하이젠베르크는 파란 눈을 가졌고 조용하고 친절하며 스포츠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 반면 파울리는 얼굴이 둥글어 사람들이 부처라고 불렀지만 성격은 공격적이고 말에도 거침이 없었으며 밤이면 유흥가에서 머물렀다. 둘은 처음 만나자마자 죽이 잘 맞아 평생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떨어져있는 동안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편지로 교환했는데 편지내용들이 마치 과학기사와 같았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조머펠트가 아버지라면 파울리는 형이였다. 이온화 수소 리론에 대한 론문으로 파울리는 21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원자가 자기장에 로출되면 원자 스펙트럼 선들이 둘이나 세개로 쪼개지는데 이것이 정상 제만 효과이다. 하지만 어떤 스펙트럼 선들은 네개 혹은 그 이상으로 쪼개졌다. 이것은 이상 제만 효과인데 정상 제만 효과보다 훨씬 더 일반적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1923년 파울리는 함부르크에서 조머펠트 원자리론과 이상 제만 효과에 대해 연구한 끝에 스핀리론을 만들어내 이상 제만 효과를 설명해냈다.

1928년, 파울리는 쮸리히공대 리론 물리학 교수로 임명됐다. 그해 11월 파울리 아버지가 녀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떠나자 상심한 어머니는 자살을 했고 파울리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1929년 12월 파울리는 뜬금없이 카바레의 녀자와 결혼을 한다고 알려 동료들을 놀라게 했지만 일년도 되기 전에 리혼했다.

1930년, 파울리는 베타 붕괴 연구중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인해 중성미자 존재를 예측했다. 1931년 여름 중성미자에 관한 강의를 위해 미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조머펠트와 오펜하이머와 같이 려행을 즐겼다. 파울리는 독설로 유명한데 오직 스승인 조머펠트에게만 늘 공손하게 대했다.

1933년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제7차 솔베이 회의에 핵 물리학에 관해 론의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모였다. 이 회의에 아인슈타인, 러더퍼드, 보어, 마리 퀴리, 파울리, 페르미 등이 참석했다. 마리 퀴리의 딸과 사위는 인공 방사능의 례로 베타 붕괴는 중성자보다 양성자가 많을 경우 양성자가 중성자가 되면서 음극인 전자 대신 양극인 양전자를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고 파울리는 중성미자에 대한 생각을 발표했다. 그리고 26년 뒤인 1956년 실험실에서 중성미자가 감지되였다.

그 후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나치의 학대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강의를 하였고 중간자 리론에 대해 연구했다. 파울리는 미국 시민권을 받았지만 전쟁 후인 1946년 다시 취리히공대로 돌아와 량자 전기 력학에 대해 연구했다.

파울리는 배타 원리 발견에 대한 업적으로 1945년 노벨상을 수여받았다. 파울리는 1958년에 취장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초기 량자력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19세에 쓴 특수 상대성 리론에 관한 해설서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교과서로 인정된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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