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세계를 돌아보다-49
오늘날의 로마와 력사 속의 로마제국

2019-11-14 08:45:37


이딸리아 로마의 노예격투장.


로마는 이딸리아 중부에 있다. 전하는 데 의하면 고대이딸리아에는 알바롱가국이 있었다고 한다. 국왕 누미토르의 형 아물리우스는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고 국왕의 딸 레아 실비아를 죽이고 그녀의 쌍둥이 영아를 강에 버렸단다.

강에 버려진 영아에게로 암승냥이 한마리가 찾아왔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암승냥이는 영아를 잡아먹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쌍둥이에게 자기의 젖을 먹였다. 후에 한 방목공이 쌍둥이를 데려다 키웠다. 방목공은 쌍둥이에게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인이 된 형제는 혐오스러운 아물리우스를 죽여버리고 어머니를 위해 복수하였을뿐더러 외할아버지 누미토르가 다시 왕좌에 오르도록 도와주었다. 후에 그들은 자기들이 방목공에게 발견되였던 그곳에 그들 자신의 도시를 세웠다. 이 도시가 바로 기원전 8세기 이딸리아반도의 테베레강변에 건설한 로마성이다. 권력은 형제를 가리지 않는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혈육도 무참히 살해한다.  로물루스가 그러하였다. 그는 레무스를 죽이고 새 도시의 국왕이 되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자를 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로마’라 하였다 한다.

우리는 로마에 도착한 후 먼저 고성(古城)구역으로 찾아갔다. 고성구역은 고대로마제국시대와 그 후기에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이였다. 고성구역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원형으로 된 노예격투장이다. 이 노예격투장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일부는 허물어졌지만 아직도 보수를 잘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

노예격투장을 보면 고대로마제국 통치자들의 잔혹성과 노예들의 비참한 운명을 알 수 있다. 통치자들은 전쟁포로들을 노예로 삼았는데 사람취급을 하지 않고 짐승처럼 가두어놓고 이 격투장에서 서로 칼을 들고 싸우도록 핍박하였다. 많은 노예들이 피 흘리며 목숨을 잃었건만 잔인한 통치자들은 재미로 보며 즐거움을 느끼였다고 한다.

우리는 노예격투장을 돌아본 후 기원 315년에 건설하였다는 개선문과 로마시의 발원지인 시중심광장을 돌아보았다.

로마를 돌아보았으니 이딸리아 력사에 대하여 잠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로마부흥시대가 지나자 로마제국은 동, 서 로마제국으로 나뉘였다. 486년, 게르만족중에서 실력이 강대한 프랑크인들은 로마인들을 철저히 패배시키고 서로마제국의 령토에 프랑크왕국을 건립하였다.

800년, 프랑크왕국 국왕 샤를마뉴는 유럽 절반을 정복하고 샤를마뉴제국을 건립하였다. 샤를마뉴 대제와 아들 루이 1세가 죽은 후 840년, 샤를마뉴제국은 세개 국가로 분렬되였다. 샤를마뉴 대제의 세 손자가 각각 다스리게 되였는데 그 세 국가는 중프랑크왕국, 동프랑크왕국, 서프랑크왕국이였다.

그 세 나라가 지금의 이딸리아, 독일, 프랑스로 되였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이딸리아, 독일, 프랑스의 제일대왕은 한 형제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권력과 욕망은 그들로 하여금 상호간에 끈임없이 전쟁을 치르게 하였다. 서로 앙숙이 되여 싸웠지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지금은 유럽동맹을 무어 화애롭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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