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서유럽 려행기 (16) - 주청룡

2019-12-02 09:13:26

스위스(瑞士)


17일 아침 7시 50분에 우리는 스위스의 루체른(卢塞恩)으로 향했다. 루체른으로 가는 도중 가이드는 스위스와 루체른의 개황을 소개하였다.


스위스는 중앙유럽에 있는 련방 공화국이고 내륙국이며 정식 명칭은 헬베티아 련방이지만 스위스 련방이라 부르기도 한다.  


1848년에 스위스련방정부가 수립되였으며 면적은41,284km2이고 인구는 2018년도 통계로 850.89만 명이며 수도는 법률상으로 없으나 베른(伯尔尼)이 사실상 수도 기능을 하고 있으며 베른은 스위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며 최대 도시는 취리히(苏黎世)이다. 스위스는  1815년 빈 회의(维也纳会议)를 통해 영구 중립국으로 인정받았고 이에 따라 유럽 연합(EU)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스위스의 중립 정책에 따라서 많은 국제 기구가 본부를 스위스에 두고 있다. 종족구성으로는 게르만족(65%), 프랑스인(18%), 이탈리아인(10%) 등이며 공용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딸리아어, 로만슈어(罗曼什语)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알프스산맥의 릉선에 걸쳐있어 높은 산과 얼음으로 덮여 있으며 고원과 깊은 계곡, 호수도 많다. 이때문에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발달되였으며 세계 최고의 관광산업국가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으로 시계, 공구 등 정밀기계 산업이 발달되였으며 락농업(乳品农业, 젖소나 염소 따위를 길러  그 젖을 가공하는 일을 기본으로 하는 농업)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스위스 시계 력사의 시초


스위스 시계 력사의 시초 시발점으로는 바로 종교개혁을 이끈 칼뱅 (加尔文, 1509~1564프랑스 태생의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이다.

 15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칼뱅은 종교 박해를 피해 망명 중1536년 제네바에에 입성하여 불과 2년 후인 1538년 기존 교회와의 마찰로 제네바에서 추방당하게 되였다. 하지만 다시 제네바 시 의회의 합의로 1542년돌아와 1564사망까지 제네바의 목사로 살아갔다. 칼뱅교리는 목사로 있으면서 금욕(禁欲主义)를 주장하여 “사치품 금지법”을 내놓아 칼뱅의 금욕주의 여파로 제네바 성 피에르 대성당의 화려했던 벽화와 치장품 모두 없어지고 현재 수수한 모습으로 남게 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과 례배시간 엄수를 위해 "시계"는 사치품에서 제외되였다. 이 소식이 종교박해를 받던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신교도 시계제작공들에게 알려지면서 일자리를 잃어가던 제네바의 보석상들과 결합하여 대량으로 시계생산에 들어가게 되였다. 


모든 산업 발전에 전쟁을 빼놓을 수가 없듯이 1,2 차 세계 대전으로 그나마 정밀시계를 생산하던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의 시계 산업은 항공 등 정밀도를 요구하는 군수산업 체계로 흡수되면서 그 력사가 끊어지고 중립국으로서의 스위스만 (소수의 독일과 이탈리아를 제외) 번창하게 되였으며 그후 스위스 시계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 현재 스위스 시계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1970년대까지 전 세계의 시계 과반수를 스위스에서 생산했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루체른(卢塞恩)


루체른은 스위스중부 루체른주에 있는 도시이며 루체른 주의 주도(州都)이다. 면적은24.2 km2이고 인구는 2017년의 통계로7.8만 명 이다. 루체른 호의 서안에 면하며 로이스강(罗伊斯河)이 시내를 흐른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교통로의 요지로 발달하였다. 알프스 산맥(阿尔卑斯山脉)의 유명한 필라투스 산(皮拉图斯山) 기슭에 위치하여, 알프스 산맥과 루체른 호(卢塞恩湖)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성당과 박물관을 비롯한 옛 건물도 많이 남아 있다.


독일과 스위스는 린접된 나라지만 독일의 퓌센(福森)에서 스위스로 가려면 오스트리아의 서북부경내를 경과하여 가는 것이 많이 가까운 거리로 된다. 하여 우리는 다시 오스트리아의 경내에 들어섰는데 가는 길에 지형을 보면 전부 구릉지대였으며 전부 잔디밭으로 되여 있었으며 드문드문 10여마리, 20여마리씩 되는 소무리들이 보일 뿐 사람은 한명도 못 봤다. 


차가 2시간 20분 달려 10시 10분에 스위스경내에 들어서게 되였는데 스위스는 중립국이므로 유럽련합에 속하지 않기에 다른 나라와 달리 세관이 앉아 있었다. 세관이라 하여도 자그만한 2층짜리 농촌집 같은 것이 한채 달랑 있었는데 고속도로 수금소 보다도 통행이 엄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수금소에는 모두 통행차단대가 있어 금액이 지불되여야 통행차단대가 올라가면서 통차가 허락 될 수 있었지만 이곳은 세관이라 하여도  통행차단대도 없이 모든 차량들이 아무런 거침도 없이 나가고 들어 오고 있었다. 아마 이런 차들은 이미전에 다 출입경수속을 밟은 것 같았다. 

사진(35) 스위스의 세관


우리 뻐스는 처음으로 스위스로 들어 오는 것만큼 입경수속을 밟아야 했다. 하여 우리의 인솔자가 입경수속을 하려고 차에서 내리니 세관공작인원이 한사람도 없었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이 토요일이여서 휴식이라는 것이였다. 그러자 내가 “그러면 입경수속이 없이 들어가면 안되는가?”고 하니 인솔자가 말하는 것이 “그래도 되는데 그러다가 만약의 경우에 스위스경찰의 검사에 걸리면 엄청난 벌금”이라는 것이였다. 하여 우리는 스위스 국경의 변두리를 따라 이보다 좀 큰 세관에 가서 입경수속을 하였다. 스위스는 비록 세관이 있다지만 통관검사는 없었다. 


매개 사람에 대한 려권검사도 안전검사도 없었고 물건검사도 없었으며 우리는 뻐스에서 내리지도 않았고 공작인원이 뻐스에 올라와서 사람인수도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인솔자가 매개 사람의 려권복사본을 가지고 세관에 들어가 입경수속을 하면 되는것이였다. 인솔자가 입경허가증을 받아가지고 나오자 우리는 시름놓고 스위스 경내로 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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