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사랑한 ‘고층 기상학’의 선구자

2019-12-18 08:58:29

1778년 프랑스의 리모즈 지역의 근교에서 태여난 루이 조제프 게이 뤼삭. 기체의 열팽창과 기체 반응의 법칙 연구로 후대에게도 위대한 과학자로 알려진 그는 명성 만큼이나 영특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명석한 두뇌를 타고난 그는 어려서부터 과학 등의 학문에 두각을 나타냈다.

어린시절을 부유하게 지낸 그는 유복한 가정환경 덕에 가정교사로부터 다양한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늘 호기심이 많던 그는 가정교사가 알려주는 모든 학문을 빠르게 습득했고 화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되면서 결국 프랑스 엘리트 교육기관중 하나인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학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시의 유명한 화학자 베르톨레로부터 인정받으며 조수로 들어가게 된다.

게이 뤼삭과 베르톨레의 만남은 뤼삭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화학연구가로서 한발자국 나아가는 데 일조한 사람이 바로 베르톨레였던 것이다. 당시의 위대한 과학자의 연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게이 뤼삭은 그것을 자신의 연구 과정에 그대로 덧입혀 자신만의 연구를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자로서의 성실한 삶과 탁월한 능력, 이 두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인물이였다. 때문에 그가 졸업한 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닉에서는 그를 강사로 초빙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 교육자로서의 뛰여난 면모까지 보인 그에게 학생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러한 리유에서인지 게이 뤼삭을 언급하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화학자, 물리학자, 위대한 과학자이자 탁월한 교육자 등 연구자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자질을 타고 난 사람으로 알려지면서 지인들에게 그는 본받을 만한 연구자로 일컬어지군 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 연구성과는 바로 기체 열팽창에 관한 것이다. 24세의 나이에 열에 의한 ‘기체 팽창 법칙’을 발견했으며 약 3~5년 후에는 훔볼트와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에 얽힌 연구 일화는 매우 다양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탐색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당시 그는 열기구를 주로 리용해 높은 상공으로 올라갔다. 기구는 당시 과학기술계의 첨단기계였는바 열기구를 타는 그의 행위 자체는 매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헌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공 7000메터   이상의 고도에 최초로 도달했다. 과학에 대한 그의 열정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상공 7000메터에 도달한 그의 기록이 향후 5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뤼삭은 지자기의 관측, 대기의 물리 및 화학에 관한 측정을 진행하면서 항공 물리학, 고층 기상학의 개척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발견한 법칙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1802년에 발견한 기체 팽창의 법칙이며 다른 하나는 1805년에 발견한 기체 반응의 법칙이다. 기체 팽창의 법칙은 공기와 산소, 수소, 질소, 암모니아, 염화수소, 이산화황, 이산화탄소 등이 모두 9 ℃~100 ℃까지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본래 부피의 0.375(1/266.66)씩 팽창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발견한 법칙인 기체반응의 법칙은 온도와 압력이 일정할 때 반응하는 기체와 생성되는 부피 사이에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훔볼트와 함께 하던 시기에 해당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는 원자의 개념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리유로 돌턴의 원자설에 묻혀 빛을 못 보기도 했다. 하지만 후대에 아보가드로가 분자설을 제기하면서 뤼삭의 법칙은 빛을 보게 된다.

게이 뤼삭의 법칙을 원자설로 설명할 경우 원자가 쪼개지는 모형이 되기 때문에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자가 쪼개지지 않도록 설명하기 위해 기체 물질은 몇개의 원자가 결합된 분자로 존재한다는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제기됐다. 분자의 개념을 도입하면 돌턴의 원자설에도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체반응의 법칙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이 뤼삭은 위대한 화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그의 기체 연구에 대해 후대들은 ‘기체를 물리적으로 파악한 연구’라고 평가한다. 화학 그리고 물리학 분야에서 모두 교수직을 받은 그는 기체반응의 법칙 외에도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1808년에는 수산화칼륨을 금속철로 환원하는 순화학적 방법을 리용해 금속 칼륨을 얻는 데 성공했으며 1809년에는 옥시해산이라고 불린 염소가 원소라는 것을 증명했다. 2년 후인 1811년에는 요드에 대해 연구를 진행, 이것이 염소와 비슷한 신원소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백히 했다.

게이 뤼삭의 생애에 함께 연구를 진행한 사람은 여러명이다. 화학자로서의 인생에 첫 열쇠를 쥐여준 베르톨레 이후 그는 훔볼트와도 인연을 맺었다. 둘의 만남은 훔볼트가 대기 성분비를 측정한 1800년대 초기에 이뤄졌다. 게이 뤼삭이 유디오미터를 리용해 대기의 성분비례를 측정한 훔볼트의 연구에 착오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둘은 연구 인연도 함께 했다. 유디오미터란 물의 전기분해를 통해 생성되는 수소와 산소의 부피에서 전기량을 측정하는 분석기구중 하나인데 당시 게이 뤼삭은 훔볼트의 연구결과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둘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기보다 연구자로서 신뢰가 쌓이게 했다.

연구자로서 서로를 인정한 뤼삭과 훔볼트는 함께 열기구를 타고 대기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뤼삭이 기록한, 열기구를 타고 올라간 상공 7000메터라는 높이는 두 사람이 함께 이룬 내용이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1908년에 이딸리아로 려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전지 발명으로 유명한 볼타를 만나기도 했다.

평생을 화학연구에 몰두한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계속해서 밀고 나갔다. 그 결과 다양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고 후대에도 본받을 만한 연구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화학과 물리학의 경계에서 독특한 성과를 남긴 것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의 경지로 여겨진다. 비록 그가 현존했을 때는 지금과 같은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과학적 원리와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그에게 ‘고층 기상학의 선구자’ 라는 수식어는 결코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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