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녀류 과학자들

2020-03-11 08:33:57

3월 8일, 세계 녀성의 날을 기념하여 력사 속에서 자기의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여난 재능을 보이고 헌신적인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심지어 공로를 빼앗긴 녀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국의 로잘린드 프랭클린(1920년-1958년)은 물질의 결정구조를 분석하는 결정학자였다. 모든 유기세포 안에 들어있는  DNA의 내부 분자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기법은 단 한가지, 바로 X선 회절 방식 뿐이다. 어떤 구조에서 어떤 문양이 나올 것인지 알아보는 이 일은 학자의 직관과 계산능력을 요구하는 꽤 까다로운 작업인데 서른두살의 로잘린드는 투과된 그림자로부터 물질의 구조를 판별해내는 능력이 매우 뛰여났다.

특히 로잘린드가 찍어낸 건판 가운데 하나는 일종의 몰타 십자가모양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분자가 라선형 계단처럼 꼬여있는 특징을 보였다. 로잘린드는 서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여유를 부렸던 걸가, 다른 가능성들을 연구한 뒤 다시 맨처음 생각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제임스 왓슨이라는 미국인 학자가 어느 학회에서 로잘린드의 DNA 회절 사진을 본 후 친구인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로잘린드보다 먼저 DNA의 ‘이중라선구조’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DNA의 구조에 관해 밝힌 그 유명한 1953년의 론문에서 두 사람은 로잘린드 연구팀의 ‘비공식 연구 결과’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긴 했지만 로잘린드의 이름을 따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 둘은 또 프랭클린이 연구비 지원기관에 비공개로 제출한 보고서도 입수하였다. 왓슨과 크릭은 1962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로잘린드는 이보다 4년 앞서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죽은 이후에는 노벨상이 수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순수 과학 분야에서는 녀성들이 충분히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비운의 운명에 처한 경우가 의외로 상당히 많다. 물론 또 다른 X선 결정학의 대가 도로시 호시킨이 2년 후인 1964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이는 소수에 적용된 례외 상황일 뿐이다.

독일의 퀴리 부인으로 불리는 리제 마이트너(1878년-1968년)는 핵분렬을 발견했지만 자기가 고용한 남성 연구원 오토 한에게 1944년에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빼앗겼고 중국계 미국인 녀류물리학자 오건웅(吴建雄, 1912년-1997년) 또한 1957년에 같은 슬픈 운명에 처한다. 노벨상을 받은 대가로 퀴리 부인이 감내해야 했던 야비한 공격들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나마 제대로 평가됐다. 실제 과학사를 살펴보면 금녀(禁女)의 령역을 침범한 것인 양, 이 녀성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그나마 병원이나 생물학 연구실에서는 녀성들이 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지만 알려진 유명한 녀성 화학자는 별로 없고 녀성 수학자는 이보다 더 적은 게 사실이다. 녀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몇명 없지만 수학 분야의 노벨상인 필즈 메달을 받은 녀성 수학자는 한명도 없다. 일부 신경학자들은 대뇌 우반구와 테스토스테론의 지대한 영향을 들먹이며 남자아이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고 녀자아이들이 인형을 갖고 논다면서 남자아이들이 공과대학에 가고 녀자아이들이 유치원 선생님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신경생물학적 구조 배치의 차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녀성 수학자 히파티아는 어떤가? 이집트 출신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히파티아는 412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살해되였다. 프랑스 수학자 소피 제르맹(1776년-1831년)과 물리학자 마리 퀴리(1867년-1934년)는 어떤가? 성차별이 평생 그녀들을 억압했다.

녀성 과학자들의 수난은 때로 희화화되여 표현되기도 했다. 과학계 스스로가 핵심 인재를 외면하는 참극을 빚었으며 지금도 이 비극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녀성 과학자들의 인명사전을 만드는 정도이고 그것도 누군가의 안해, 애인, 심지어 정부라는 수식어를 붙여 더욱 어이없는 목록을 작성한다. 이로써 녀성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남성에게 부속된 존재로서 정의되고 녀성들의 공을 가로챈 남성들에 대한 비난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만 하더라도 첫번째 부인인 밀레바에게서 상대성 리론을 보고 베끼지 않았던가.

지적인 녀성들은 조금 지나치긴 해도 대부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철학자들이나 혁명가들은 남성의 우월함과 리성을 앞세워 이들 녀성을 그들의 세계에서 내쫓았다. 19세기엔 녀성을 부엌으로 내몰아 집안에만 가두었고 20세기엔 녀성을 타자기 앞에만 묶어둠으로써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무조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연을 쥐여짜며 지배해온 해묵은 관념들은 이제 공생과 조화를 추구하는 보다 ‘녀성적인’ 사고로 대체되고 있다. 과격하지 않고 한층 더 조심스러운 리론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인간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주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녀성들의 모습이 점차 눈에 띄게 많아지고 이들이 책임자 자리로 오르는 상황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렇다면 녀성은 과연 프로스페르 앙팡탱이 바라던 대로 ‘세상을 향해 입을 열게 될’ 것인가? 그리고 세상은 녀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여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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