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등재한 ‘두가원’ 탄생비화를 말하다
연변산보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 창업 스토리 200년 전승 이어 두가 형제에서 빛을 발하다

2020-07-09 10:48:29

민족무역·민족제품으로 변경도시를 빝내다


민족무역·민족제품 기업들은 그동안 도문시의 민족단결진보와 번영발전 사업에서 ‘추진기’ 역할을 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사태로 인해 도문시 민족무역 기업 및 민족 특수수요품 지정 생산기업들이 처한 판매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문시민족종교사무국은 일전 민족무역·민족제품 기업을 조직해 좌담회를 열고 현재 기업들의 생산현황, 경험 및 성과, 판매난 등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본지는 오늘부터 <민족무역·민족제품으로 변경도시를 빛내다> 전문란을 개설하여 도문시 민족무역, 민족제품 기업들의 창업스토리, 민족제품 소개, 민족기업 풍채, 민족제품 브랜드창출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기업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편집자


오늘날 중의학은 현대의학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200여년의 중의약 맥을 이어온 연변산보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의 중의약 제작 독특한 기예는 이미 도문시와 주정부로부터 ‘무형문화재’에 등재되여 명성을 알리고 있다.

지난달 12일에 연변산보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에서 만난 회사 창업자 두병경, 두병권 두 형제는 장백산지역의 중초약 자원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고스란히 내려온 선조들의 비방책을 끊임없이 연구한 토대에서 다양한 민간 고전처방으로 보건품을 지속적으로 제조해내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가원의 200여년 전승을 이어받다

‘두가원’은 사실 인명이다. 두가원은 현재 두병경, 두병권 두 형제의 조상으로 1805년에 태여나 지금의 두만강 상류에 위치한 장백산맥 아래 대룡령 림산작업소 근처에서 생활한 인물이다.

예로부터 장백산지역에서 생활한 백성들은 령하 수십도에 달하는 랭기후의 영향으로 인해 동상에 걸리기 십상이였다. 두가원은 고향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어릴 때부터 초의약 의술에 관심을 갖고 심지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향 사람들에게 동상으로 인한 궤양 등 손상 질병을 고쳐주는 데 마다하지 않고 나서 마을사람들은 두가원을 보고 만족어로 ‘안바바더리(은인)’이라 칭송했다.

그 뒤, 두가원은 만족군을 따라 지금의 산동성으로 주거지를 옮겼고 그의 후손들은 그때부터 지금의 북경, 천진 등 일대에서 관직을 얻어 안정적인 생활을 했으며 두가원의 4대손인 두방운이 료녕에 돌아와 생활하기 시작했다.

두가의 날나(捏拿)안마 기술법과 초약의술 비방이 두방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두방운의 차남이 바로 두병경, 두병권의 부친인 두귀지이다. 두귀지는 동북이 광복을 맞이한 후 연변에 와 사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두씨 가문의 초약의술 비방은 200여년을 거쳐 현재 두씨 형제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왔고 이 진귀한 풍습 골과병 치료법, 비방 초약들은 유일무이한 두씨 가문의 제약기술 기예로 거듭났다.

두병경(오른쪽)과 두병권 형제.

◆물과 고약가루로 만들어진 중의약 처방 탄생

두병경은 어릴 적부터 부친인 두귀지의 옆에서 중의학 기술의 안마법을 터득했고 의학에 흥미를 갖게 되였다. 그 뒤 두병경은 훈춘시 권하에 하향해 지내는 동안 조의학으로 유명한 의사 한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의술을 배우면서 약재를 채집하기도 하고 촌민들의 병을 봐주면서 점차 중약재 제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5년, 부친 두귀지는 한차례의 뇌관류 검사에서 출혈이 발견돼 수술했지만 효험을 보지 못하고 돌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남으로서 어깨에 짊어진 짐은 무거웠고 급기야 우울한 상태에 빠지기까지 했다.

1991년 즈음 두병경의 건강악화는 극에 도달했다. 병원의 합동진찰을 거쳐 고괴골강고류(골수종양의 일종)에 걸렸다는 사실이 확인돼 당장 수술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두병경은 어느 날 갑자기 부친이 남겨놓은 의서를 우연하게 펼쳐보게 되였다. 책 안에는 두씨 가문의 조상들이 수집한 비방과 의술체험들이 낱낱이 기록되여있었으며 그때부터 두병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의서와 노트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달 넘어 책더미 속에 파묻혀있던 두병경은 놀랍게도 자기 병증세와 비슷한 상황에 쓰이는 혈기활성생기거독장골의 비방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두병경은 그때부터 처방 대로 약재를 구해 손수 달여먹기 시작했다.

두병경은 처음에는 온몸의 열기가 우로 솟구쳐오르는 감각이 선명했고 두세첩 먹은 후부터 몸에 따스한 기운이 돌면서 오싹해나던 증상이 사라지고 힘이 생기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고 했다.

그는 병리와 치료 원리, 약재 특성을 연구하는 한편 매일 약을 열심히 달여 규정시간, 지정량 대로 복용했다. 그렇게 한 계절이 바뀌니 몸을 괴롭히던 통증이 점차 가라앉고 체내의 열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본초강목》에서 ‘내복약 외부용’ 리론을 터득하고 나서 바로 실천에 돌입했다.

1998년 봄, 두병경은 정식으로 순환통락근골지통정제를 제조했다. 자기 몸에 손수 써서 직접 체험해본 결과 효과가 탕약과 같다는 것이 증명되였으며 사용법에서도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쓰디쓴 약을 억지로 마실 필요 없이 환부에 분사하여 골고루 문지른 후 싸매니 사용법 또한 더없이 간편했다. 철따라 산에서 약재를 캐고 조합하여 달이고 제조해 바르는 동시에 아픈 부위를 주무르는 안마시술도 곁들였다.

두병경은 7년 동안 의서, 약재와 씨름하며 악착같이 달려들어 약을 끓여먹고 몸에 바르고 안마를 하는 등 피타는 노력을 기울인 덕에 끝끝내 병마를 몰아냈다. 그를 죽음의 변두리에서 건져낸 의사는 다름아닌 그 자신이였다. 그의 이러한 약제조 탄생과정은 운남 백약의 창시자인 구환장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길림성 민간중의발전포럼에 참석.

◆브랜드 창출, 산업화 모식으로 발전

두씨 가문의 의약기술 문화를 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동생 두병권은 형님 두병경에게 자신이 그동안 간직했던 속내를 내비쳤다. “가족의 건강 뿐만 아니라 공장을 세워 이 비방약을 제품화, 브랜드화로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건강을 되찾아줍시다!”

워낙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올곧은 두병경에 비해 두병권은 일찍 북경 등 대도시에서 상업에 종사했던 터라 사업수완이 좋았다. 그들은 새로운 목표를 정한 후 2010년에 ‘두가원’ 중약 브랜드를 내세운 연변산보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도문시 북쪽 외곽의 도곡로(고속철역)쪽에 공장부지를 세워 모든 심사 수속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생산을 가동했다.

도문시민족종교사무국, 도문시위생국 등 정부 부문은 일찍부터 두씨 가문의 전승을 알고 나서 회사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안을 고안했다. 적극적으로 상급 부문, 해당 책임자에게 두가원의 연구성과를 보고했고 기업의 성장을 선두하여 이끌었다.

성 및 주 위생부문의 중(조)의약관리처에서는 수차 기업에 와 조사연구를 펼쳤고 산보회사를 도와 브랜드 등록을 심사 및 비준하도록 도움을 줌으로써 규범화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두팔 걷고 나섰다.

2010년 8월, 길림성위생청은 연변산보과학기술발전유한회사에서 연구개발한 장백산 조약 추출액-산보 두가원 브랜드인 ‘두가원순환통락근골지통정제’ 및 ‘순환통락근골지통파스’를 정식으로 보건약품으로 비준하고 위생허가증 등 관련 증서를 발급했다. 두병권은 또 소자호 위생허가증, I류 의료기기허가증 등을 신청해 발급받았다.

2013년, 또 하나의 희소식이 북경으로부터 날아왔다. 두병경이 연구해낸 순환통락근골지통제가 국가중약관리국의 비준을 얻어 국가중약보호 민간처방 보건품종목에 편입된 것이다. 이 해에 이 회사는 연변로교수협회와 본격 손잡고 연변산보두가원풍습골병연구소를 설립했고 두씨 조상으로부터 전해져내려온 비방과 연변조선족 민간 고전처방, 고전치료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연변대학 의학원과 공동으로 두가원거독생기고약 등 조의약을 연구,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정부 과학기술관리 부문의 전문 자금을 획득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길림성위생계획생육위원회에서는 두가원순환통락근골지통정제를 보건용품으로 재차 비준하고 통증완화의 보건기능을 갖췄다고 인정했다. 특히 경추병, 요추간판탈출, 관절염, 류풍습성관절염, 정맥곡장, 맥관염, 통풍, 운동손상 등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적용된다고 인정한 동시에 보건제품 생산기업 위생허가증을 내주었다.

2014년 12월, 도문시 관련 부문에서는 고찰을 거쳐 ‘산보두가원 순환통락근골 지통제’의 제작기예를 정식으로 도문시 ‘무형문화재’에 등재시켰다…

200여년의 맥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예상치 못했던 처방전 하나로 무형문화재에 등재한 두씨 형제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1)

  


글·사진 최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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