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기념비, 스승 은공과 근대교육사 되새기다
지금으로부터 85년 전, 선생님들의 은공을 기리고 모교를 기념하기 위해 200여명의 졸업생들은 불타버린 모교가 존재했던 곳에 기념비를 세운다.

2020-09-11 09:03:44

연길시 서쪽교외 와룡동에 세워진 사은기념비.

우리 민족 근대교육사를 되짚어보려고 지난 4일 연길시 소영진 와룡동에 위치한 사은기념비 유적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은기념비와 창동학교

와룡로년락원 앞 비탈길을 따라 몇메터 올라가다 보면 무성한 잡초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그마한 기념비가 시야에 안겨온다.

흰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사은기념비’라 큼직하게 새겨진 이 기념비의 왼쪽 옆면에는 ‘서기 1935년 9월 12일’이라는 날자와 함께 오상인, 전성옥, 정원형 등 12명 와룡동 유지지사들의 이름이, 오른쪽 옆면에는 ‘창동학원 원학회원 일동근립’이라 씌여있다.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이 작은 기념비에는 창동학교 관련 많은 력사사실들이 깃들어있으며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해온 우리 민족특점을 나타낸다. 조선족 근대교육의 한페지를 엮은 창동학교는 명동학교와 더불어 연변조선족 근대교육의 요람으로도 일컬어진다.

오상근, 리병휘, 남성우가 교장을 맡은 창동학교는 1907년 즉 우리 민족이 연변지역으로 이주해온 지 약 40년이 경과된 해에 그 소학부가 설립됐으며 그로부터 3년 뒤인 1910년에 교사들이 힘을 합쳐 중학부를 증설해 우리 민족의 새 세대를 양성하는 데 갖은 심혈을 기울였다. 근대 과학지식의 전수와 반일 민족의식 양성에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 학교에서는 군사훈련 과목도 설치해 10여년간 200여명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냈다.

창동학교의 많은 교원과 학생들은 반일 무장단체인 철혈광복단에 참가해 희생적으로 싸웠고 1920년 1월 4일에 동량리 어구에서 일본조선은행권 15만원을 탈취한 소위 ‘15만원 탈취 사건’의 주축을 이룬 한상호, 최봉설, 림국정 등 반일지사들은 와룡동 출신이였다. 한때 번창하던 창동학교였으나 그해 10월 약 2만명에 달하는 일본침략군은 ‘경신년대토벌’을 벌려 반일 민족무장을 진압하고 화룡현 정동학교, 명동학교와 연길현 와룡동 창동학교를 포함한 도합 28개 조선족 사립학교를 불태워 현재 사은기념비만 남아있게 됐다.

조선족 근대교육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창동학교의 설립은 서전서숙과 맥이 닿아있었다.


◆서전서숙에서 뻗어나온 학교들

우리 나라 첫 조선족 근대 반일 사립학교로서 조선족 교육사에서의 질적 비약이자 처음으로 중학교과정을 가르쳐 초등교육으로부터 중학교육으로 교육수준을 제고시킨 새로운 기점이기도 한 서전서숙은 1906년에 이 서숙의 설립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은 리상설에 의해 룡정에 세워졌다. 당시 4명의 교사가 있은 서전서숙은 반일청년 22명을 모집해 중소학교 과목을 가르쳤다. 일본제국주의의 노예화 교육을 견결히 반대함과 아울러 봉건서당의 한학교육과 봉건륜리도덕도 반대한 리상설은 신흥 근대 자연과학을 제창하고 보급하며 반일 민족의식으로 후대를 교육하려고 했다.

1907년, 설립된 지 8개월 만에 서전서숙은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에 의해 문을 닫게 됐다. 서숙 교사들은 일부분의 학생들을 데리고 훈춘현 탑두구 근처로 옮겨가 다시 서숙을 세우고 학생을 모집해 1년간의 단기교육을 거쳐 3개 학급의 74명 학생들을 졸업시켰다.

그러고 나서 서전서숙은 해체됐으나 이 서숙을 중심으로 모였던 반일 민족지사들과 졸업생들은 모교의 혁명전통을 계승해 연변 각지에 흩어져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이를테면 연길현 와룡동의 창동서숙, 국자가 동쪽교외 소영자의 광성서숙, 화룡현 명동촌의 명동서숙과 화룡현 자동툰 후저동의 정동서숙 등이 있었다.

1910년 이후, 상기한 4개 서숙은 중학부를 설치해 중학교로 발전했다. 이윽고 화룡현 삼도구 청파호, 연길현 계림동, 국자가, 룡정촌과 동불사, 왕청현 춘경향 라자구와 훈춘현 숭례향 전선촌 등지에도 선후하여 사립학교가 설립됐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1911년에 연변에는 도합 19개 사립학교, 493명 학생이 있었고 1913년에는 88개 학교, 1859명 학생이 있었으며 1916년에 들어서서는 156개 학교, 3879명 학생으로 증가됐다고 한다.

2003년 7월 24일에 연길시문화재관리소와 연길시 소영진 민주촌민위원회에 의해 비석을 중심으로 10메터 이내를 중점 보호구역으로 삼고 있는 사은기념비 유적지를 떠나려던 참에 마침 눈부신 해빛이 기념비를 비추고 있었다. 련이은 비바람 뒤에 비춰지는 해살이라 유난히 훈훈하게 느껴졌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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