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잊지 못해 옛 우물 여전하여라

2021-07-23 09:19:31

지난 6월 23일, 중공동만특위, 왕청현위 기관 및 소속기구 유적이 집중된 동림촌 동쪽의 리수구일대를 찾았다. 첩첩산중, 밀림 속인 데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르지 않은 우물터와 맑은 개울까지 끼고 있는 리수구일대, 선인들의 안목이 돋보이는 위치 선정이였다.

동행한 왕청현당위 당사연구실 리동문 주임 덕에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를 둘러싼 혁명력사를 조금 더 쉽게 들어볼 수 있었다.

중공동만특위 병원유적.

항일유격근거지 조성과 소왕청쏘베트정부 수립까지

20세기 30년대에 왕청현은 배초구에 소재지를 두고 있었다. 배초구와 백여리 떨어진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는 사면이 산에 둘러싸여있고 골짜기가 깊어 안에서는 방어하기 쉽고 밖에서는 공격하기 어려운 곳이였다. 근거지 안에는 조선족, 한족 농민 60여가구가 정착한 마촌이란 작은 마을이 있었다.

1931년 1월 왕청현위에서는 여기에 중공소왕청구위(제2구위)를 내오고 구위 산하에 동일촌, 덕원리 2개 지부를 두었는데 후에 많은 혁명자들이 소왕청지구에 집결하고 혁명력량이 갈수록 발전장대해져 마촌, 십리평, 추송, 백암 등 4개 지부가 련이어 설립됐다.

복원된 중공동만특위 인쇄공장 내부.

1932년 4월, 왕청현위는 요영구 룡반구로부터 마촌으로 전이했다. 그해 11월 중공동만특위 서기 동장영은 특위기관을 연길현 왕우구로부터 소왕청 마촌으로 옮기고 왕청현위와 공동으로 사무를 보았다. 이로부터 마촌은 동만항일투쟁의 지휘중심으로 됐다. 당지의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반일회, 부녀회, 자위대, 소선대 등 반일조직에 참가해 유격대작전에 협력했기에 소왕청지구는 점차 항일유격근거지로 부상했다.

근거지를 공고화하고 인민대중들을 항일투쟁에로 불러들이기 위해 1932년 12월 왕청현위는 동만특위의 지시에 좇아 마촌에 소왕청쏘베트정부를 건립했다. 쏘베트정부는 토지, 경제, 량식, 교육, 군사부 등 사무기구를 설립하고 중화쏘베트공화국 헌법과 법령에 비추어 시정강령을 제정하고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면에서 일련의 혁명조치를 취했다. 이를테면 등급에 따라 토지를 획분하고 농업생산에 종사하도록 농민들을 동원, 조직하며 병기공장, 인쇄공장, 피복공장, 병원, 학교를 설치한 등등이다.

복원된 중공동만특위 병기공장 내부.

3차례 대 ‘토벌’과 전략적 이전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의 발전과 장대는 일본침략자들의 불안을 자아냈다.

1933년 3월 30일 일제는 연길, 훈춘, 화룡, 왕청의 일본군과 위만군을 긁어모아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덮쳐들었다. 살기등등한 적들을 앞에 두고 동만특위 서기 동장영은 즉시 군사회의를 소집해 현 유격대, 별동대와 구국군의 합동작전방안을 제정했다. 그날 새벽 네개 산어구에 매복해있던 항일부대는 적들과 련속적인 격전을 벌렸다. 이 전투에서 적 300여명을 살상하고 총기 250여자루, 박격포 4문과 대량의 군용물자를 로획했다.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왕청주둔 일본수비대 약 1000여명이 비행기와 대포의 엄호하에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대한 대규모의 ‘토벌’을 감행했다. 근거지의 전연진지인 뾰족산에서 유격대원들은 유리한 지세를 리용해 자기들보다 몇배나 더 많은 적군과 격전을 벌렸다. 사흘간의 전투를 거쳐 적 400여명을 살상하고 대량의 군수품을 로획했다.

같은 해 11월 17일 1500여명의 일본군이 또다시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대해 50일에 가까운 대 ‘토벌’을 시작했다. 근거지의 군민 1500여명이 떨쳐나서 반격했지만 이듬해 1월말에 이르러 근거지에는 생존자가 40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 항일력량을 보존하기 위해 중공동만특위는 소왕청근거지를 떠나 전략전 이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3년 남짓이 유지된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는 많은 혁명유적을 남겼다. 지금까지 중공동만특위와 왕청현위 기관유적, 제2구 쏘베트정부유적과 병원, 병기공장, 인쇄공장, 피복공장 유적 그리고 우물터 등이 남아있다. 최근 몇년간 왕청현에서는 자금을 투입해 왕청항일유격대대 밀영과 왕청현 제2구 쏘베트정부의 당년 전투 및 생활 정경을 복원했다.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유적은 길림성인민정부로부터 성급문물보호대상으로 주당위와 정부로부터 주급애국주의교양시범기지로 확정됐다.

글·사진 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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