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이 뿌리박은 내금강

2019-05-17 15:45:29

산 좋고 물 맑아 금수강산으로 불리우는 조선땅 동부해안 중부에는 다양하고 웅장하며 수려하고도 기이한 천태만상의 자연경관을 이룬 천하절승 금강산이 우뚝 솟아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명승지를 류재학(중국촬영가협회 회원, 중국민속사진협회 리사, 선후로 화룡시박물관 관장 화룡시문련 주석 력임) 선생님이 이끄는 촬영팀에 다시 끼여 봄의 향기가 그윽한 금강산에서 카메라셔터를 누르게 되였다. 


주봉 비로봉을 비롯한 일만이천봉을 자랑하는 금강산은 기골이 장대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외금강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유정한 자태를 뽑내는 여성미의 내금강도 있고 또한 바다우에 우뚝솟은 기암들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해금강도 있다.


행운스럽게도 이번 금강산려행에 많은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내금강을 볼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강원도 금강군에 자리잡은 내금강은 고성군의 외금강구역에서 약43키로 떨어진 곳에 있는데 두시간의 시간에 다섯초소를 경과하여 도착하였다. 대외로는 아직 개방이 잘 안된 곳으로서 오늘 이곳 유람객으론 우리팀 20여명뿐이다. 온 내금강관광구역을 독차지하고 걷노라니 저도 모르게 흥이 났다.


내금강은 금강산 주분수령의 서부에 놓인 지역으로서 은유하고 수려한 계곡미를 뽐내서 예로부터 아릿다운 미녀로 형상화하였다. 해설원의 말대로 내금강에 들어서면 처음엔 수림이 가려졌는데 마치 녀인의 넓은 치마자락에 감춰진 다리부분과 같았서 숲을 헤치고 한발한발 걸어가는 것이 녀인의 옷자락을 한겁한겁 뻗기는것같은 느낌이라며 걸으면 걸을수록 그 아릿다운 자태를 만낏할수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곳은 내금강에서 이름있는 표훈사였다.내금강의 절경인 만폭동의 입구에 해당된다.670년에 처음 세운 절간으로서 그때는 <<신림사>>라 불렀다한다.표훈사는 장안사 유점사 신계사와 함께 금강산에서 손꼽히는 4대절간의 하나로서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덮이고 기암괴석을 머리에 인 청학대 금강대 돈도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름다운곳에 자리잡고있었다.력대 왕실과 인연이 있어 많은 유물들이 있었는데 왜적과 조국해방전쟁시기(항미원조) 미군의 포격을 당해 파괴 류실되였다한다.워낙 이곳에 100여개 절간이 있었는데 거의 훼선되고 현재 몇개밖에 남지않았다.



표훈사는 중심건물인 반야보전을 비롯하여 령산전 명부전응진전 어실각 릉파루등으로 이루어졌다.후에 회손되여 보수 재건하면서 리조시기 건축의 특징으로 형성되였다한다. 이 절엔 늙으신 스님한분과 젊은 스님 한분 이렇게 두분만 계신다.(이 절 외쪽편에 장수샘이 있는데 이 물 마이고 다섯시간내로 남녀생활을 운운하면 힘솟는다는 전설도 있다.)



내금강은 또 만천구역 만폭구역 백운대구역 비로봉구역 명경대구역 만군대구역 태상구역 구성구역의 8개 명승구역으로 나뉘였는데 우린 시간상관계로 만천 만폭 백운대구역밖에 돌지못했다.


이어 금강문(원화문)을 걸쳐  청룡담  백룡담 영아지 흑룡담등 많고많은담과 계곡을 보게되는데 그중 백룡담엔 물속에선 룡으로 밖에 나오면 흰안개로 나타나다가도 해마다 음력7월30일 낮정오에 맑은날씨면면 제 모습을 들여내고있다고한다. 


계속 올라 이른곳이 보덕암이다 금강산 암자가운데서 가장 온전하게 보전된 건물이 바로 보덕암이다.  분석담의 오른쪽 아득히 높은 벼랑의 낭떠러지에 매달려있는 모습 참으로 희한해 보였다.



보덕암은 고구려때(627년)에 처음으로 지었는데 1675년에 고쳐졌다고한다.20메터가 넘는 아슬아슬한 절벽중턱에 7.3메터의 구리기둥하나로 받쳐지은 건물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있다. 건물의 크기는 앞면이 3.35메터 옆면이 85센치메더이고 보덕암안에 들어가면 깊이 5.3메터 너비 2-1.6메터높이 2-1메터되는 굴이 뚫어져있다. 이 보덕굴이 유명한 <<보덕각시>>전설이 깃든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회정이라는 중이 10년기약으로 금강산에서 도를 닦게되였는데 경을 읽다가 싫증나 잠 들었는데 꿈속에서 한 미녀를 만났다. 그녀의 모습에 홀딱 반한 회정은 계률도 잊고 그녀에게 다가가 이름도 물어보고 사랑도 고백했다한다.그러나 보덕이란 그녀는 후날 만폭동에서 만나게 될테니 그리 알라고 하고는 사라졌는데 꿈에서 깨여나서도 자꾸만 눈앞에 삼삼거려 참지못하고 만폭동으로 향해 떠났다. 


골안을 헤매던 그는 한 녀인이 머리를 감고있는걸보고 다가가니 그가 바로 꿈에 보았던 보덕각시였다.회정이 반색하며 다가가자 그 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져버리였다.그날밤 회정은 다시 꿈을 꾸었는데 보덕각시가 또 나타나서 글짓기내기를 하자는것이였다.먼저 보덕각시가 <<그대를 내가 모시면>>이라고 글 한귀를 짓고 회정더러 이어붙이라고 하는것이였다.회정은 기뻐서 <<반드시 부귀영화하리라>>고 지어붙였다.글을 받아본 보덕각시는 말없이 밖에 나가 회초리를 한단을 들고 들어오더니 그게 어디 불문의 글인가 마땅히 <<10년 공부는 허사로 되리라>>고 해야옳지 않은가,지금까지 헛공부를 했다면서 사정없이 종아리를 치는것이였다.꿈에서 깨여난 회정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튿날 아침 녀인의 모습이 비꼈던 못(영아지)기슭에 나가 다시 보덕각시를 찾았다.이때 갑자기 파랑새 한마리가 너울너울 골짜기를 날아지나 법기봉중턱에서 사라져버리는것이였다.



회정은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파랑새 한마리를 뒤쫓아 법기봉중턱에 올랐는데 과연 그곳에 보덕각시가 살던 굴이 있었고 굴바닥에는 작은 부처 하나와 불경책들이 가득 쌓여있었다.그제서야 회정은 보덕각시가 다름아닌 관세음보살이며 지기에게 불도를 깨치기 위하여 이곳으로 데러왔다는것을 깨닫고 온갖 잡념을 버리고 굴안에서 살면서 불경을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이름난 중으로 되였다고 한다.


이런 전설은 많고많지만 야설(野说)도 적지않다. 


옛날 난리시국이라 남정네가 없는 과부들이 많았다한다.이 녀인들은 못(池子)이있는 보덕암에 찾아와 아기를 갖게해달라고 신선께 빌었다한다.보덕암에 있는 스님은 이곳에서 백날 기도하면 아기를 만들어준다하여 과부들은 정성들여 빌고빌었다.그 기간 스님은 녀자들의 생리주기를 장악하고 거기에 맞춰 못에 가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뒤에 작은 방에 들어오게하였다.그리하여 백날 지나면 대부분의 과부들이 아기를 갖게되였는데 스님은 이 얘들이 신께서 내려준 아이라면서 돌아갈때 몇가지 색갈을 섞인 천쪼각을 주면서 이것을 아이팔에  달고 다녀야 아이가 무사이 자랄수있다고하였다.또한 스님은 마을로 내려갈때마다 색동천을 드리운 아이만 보면 그저 스쳐지나지않고 먹을것을 주고 갔는가하면 그들 지간의 통혼도 못하게 했다고한다. 물론 자기의 아이기 때문이였다.그 후로 이 못옆에 젖나무가 자랐고 이때로부터 <<색동저고리>>가 생겼났다한다. 


전설많은 보덕암을 떠나 계속 올라가느라면 진주담 거북소 사자바위등을 지나 백운대구역에 이르게된다.백운동엔 옛 절터인 마하연터가 있다.




마하란 불교에서 나온말로 넓고 크다는 뜻이라한다. 절터에는 <<마하연증건비>>와<<공덕비>>세개가 있다.



마하연은 본래 방 53간의 큰 건물이였다고한다.661년에 처음 세워진후 수차례 개건하여 1831년까지 고쳐지었는데 남북전쟁(항미원조전쟁)으로 재더미되고말았다고한다.이곳은 금강산 한복판에 차지하고있어 내외금강을 유람하는 탐승객의 숙박지로도 되였느데 방랑시인 김삿갓이 이절간의 대사와 이곳에서 시짓기를 하였다한다.해설원의 소개에 따르면 이곳은 또한 불교학교로 유명한데 많은 중들을 배양했다고한다.남측에서 이곳에서 공부하던 스님이 제자의 부축을 받으면서 찾아왔다고한다.



마하연터를 지나 만폭동의 개울을 따라 오르면 중이 땅을 파다가 부처를 얻고 절을 지었다는 불지암(佛地巌)있다.앞면 6칸 옆면3칸이라하는데 텅 비여있어 스산해보였다.



불지암에서 내려와서 다시 개울따라 올라가면 평평한 터전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묘길상암터이다.큰 바위벽에 높이 40메터의 커다란 부처님이 앉은 모습이 새겨져있다.이것이 조선에서 가장 큰 마애불(큰 바위에 새긴 부처)인 묘길상이다.



고려시기 라옹조사가 새겼다는 묘길상은 앉은 키가 15메터 너비 9.4메터 얼굴높이3.1메터 너비 2.6메터 눈의 길이 1메터 귀의 길이 1.5메터 손의 길이 3메터 발의 길이 3.2메터이다.량무릎을 포갠 높이와 그밑에 쌓아올린 기단의 높이만도 각각 사람 한길이상이다.이는 조선 불상가운데서 손꼽히는 조각품으로서 선조들의 훌륭한 조각솜씨를 잘 보여준다.



태연히 앉아있는 부처의 웃는 얼굴 길다란 눈섭 쭉 째진 실눈 이마의 백호 넙적한 어깨와 가슴 굵직한 팔과 손은 다 부드럽고 섬세하며 균형이 잘 잡히여 전체적으로 풍부한 량감과 립체감이 뚜렷하게 살아나고있다.   


우리의 려행코스는 이곳으로 끝마쳤다.


외금강은 기세를 뽐내면서 세인을 감탄케한다면 내금강은 그 넋을 고이 간직하고있다.조선의 력사와 문화의 뿌리를 알수있는곳이다.그러니 내금강을 보지못하고 금강산을 보았다고 말할수없다고 애기하고싶다.


여느 명승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옛인들이 자기의 글 재주를 뽐내면서 새겨진 글귀나 이름자가 많이 남아 력사의 견본으로 되고있다.  현대의 정치적 구호들도 적지않게 새겨져있다...







2019년 5월 홍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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